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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른 세월호와 침몰한 박근혜호의 '굴곡진 3년

판사,검사, 사법개혁절실하다

by 석천선생 2017. 3. 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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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훈 입력 2017.03.25 13:29 수정 2017.03.25 16:08

국정농단으로 파면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음 주초에 구속될 위기에 직면했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법과 원칙’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신병을 처리하겠다고 밝힌 데다 그에 대한 구속 찬성여론이 70%에 달하고 있어 구속이 불가피한 상황이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의 최대 오점이자 트라우마로 자리잡았던 세월호마저 침몰 3년 만에 떠올라 세월호 사고 수습에 실패한 국민적 공분이 다시 들끓고 있고 범보수 진영조차 박 전 대통령의 헌재 불복에 냉소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구속에 직면한 박 전 대통령이 사면초가로 내몰린 형국이다.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의 길은 3년 전 세월호가 침몰할 때부터 시작됐다. 박근혜호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기 전까지 순항했다. 정권 출범 초기 국무총리와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도덕성과 자질 문제로 잇따라 낙마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전교조를 14년만에 법외 노조화로 만드는 등 이념 논쟁을 촉발시키며 보수진영 결집에 성공해 국정운영의 안정을 되찾았다.

 
자신감을 얻은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6일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며 국정추진 동력을 한층 더 강화했다. 나아가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제안을 발표하며 절정기를 누렸다.

하지만 20여 일만에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를 맞게 되고 국정위기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는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사태 수습에 국가 원수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김이수, 이진성 헌법재판관은 지난 10일 헌재 탄핵심판 보충의견에서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 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해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 의무를 탄핵 사유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두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에도 집무실에 정상 출근하지 않고 관저에 머문 것은 그 자체만으로 대통령의 불성실함을 드러낸 징표였다”며 “심각성을 인식한 시점부터 약 7시간이 경과할 때까지 별다른 이유없이 관저에 머물며 원론적인 지시만 내렸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의 불안한 심기를 경호한 조력자들도 있었다.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를 방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방송통제를 시도한 의혹을 받았던 이정현 전 홍보수석 등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해 11월11일 정부에 세월호 인양을 공식 요청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같은해 11월28일 ‘정윤회 비선실세’ 문건이 터졌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문건 유출이 국기문란”이란 검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정권을 눈치를 보던 검찰도 문건 유출에짜맞춘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박 전 대통령은 정윤회가 아닌 최순실이 비선실세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도 문건 의혹을 덮는데 급급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최순실은 자신의 태블릿 PC에서 그해 3월 이미 드레스덴 연설문을 읽고 수정 작업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에 정윤회 문건까지 겹치면서 정권이 최대 위기를 맞자 역시 이념 카드를 뽑아들었다.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을 추진해 결국 12월19일 해산시켰다.

이를 통해 국정 위기를 넘긴 박 전 대통령에겐 2015년 성완종 리스트와 메르스 유행사태로 또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이 와중에 세월호 유가족의 인양 압박이 거세지자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인 4월16일 인양을 처음으로 공식 약속했다.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인 이날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나 비난 여론이 높았다.

위기감이 높아지자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통해 또다시 편가르기를 시도해 국면을 탈출했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위기를 반복하는 그 순간에 최순실은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을 만들어 국정을 농단했다.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에 대한 반성도 없이 비선실세에 대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능멸한 것이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지난 10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에서 “대통령의 행위는 최씨의 이익을 위해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결론냈다. 박 전 대통령이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을 통해 최씨에게 공무상 비밀문서를 전달하고, 최씨가 추천한 공직 후보자를 등용해 이권 추구를 도왔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시켜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대기업으로부터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을 출연케 했지만 재단 운영 의사결정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주도한 사실도 문제로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가 은폐하려고 했던 국정농단 사태는 2016년 9월20일 최순실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개입했다는 보도로 드러났다. 결국 최순실은 11월20일 구속됐고 박 전 대통령은 12월9일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고 올해 3월10일 파면을 당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국정농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수백명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7시간을 허비했던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으며 자신의 죄를 피하기 위해 무려 7시간이나 조서를 꼼꼼히 읽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이젠 3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못했던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부실 대응과 국정농단 책임, 그에 대한 진상 규명 방해·은폐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세월호와 함께 참사 당시에 묻혔던 진실도 떠올랐다. 그 진실이 국가기관에 의해 파헤쳐지기 전에 박 전 대통령이 진실 앞에 항복하고 진솔하게 사과해 굴곡진 역사를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남상훈 기자 nsh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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