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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VS '경제 대통령' 세기의 재판 열린다

판사,검사, 사법개혁절실하다

by 석천선생 2017. 3. 1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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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식 기자 입력 2017.03.19 16:17

[경향신문]
·재판대에 선 두 사람, 뇌물죄에서는 ‘공생관계’ 강요죄에서는 ‘대립관계’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기의 재판’이 열린다. 재판 당사자 중 한 명은 지지자들로부터 ‘여왕’, ‘공주’, ‘마마’로 불리며 대통령 자리까지 거머쥐었던 전직 대통령이다. 다른 한 명은 글로벌 기업 삼성의 총수이자 ‘재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기업인이다.

삶의 궤적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공통된 점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날 때부터 정치권력의 정점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금권의 정점에 서 있었다. 부침을 겪긴 했지만 개인 능력보다는 아버지의 후광을 얻어 각자의 분야에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점도 같고, 불과 몇 달 새 한순간에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점도 같다. 두 사람이 별건으로 따로 재판을 받아도 놀라운 일인데, 이번 재판에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동일한 사안으로 동시에 법정에 선다. 두 사람의 진술에 따라 상대방의 사법처리 수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재판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소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진실과 그 결과에 따라 대선, 개헌, 정경유착 철폐, 사법개혁 등 한국 사회를 뒤흔들 주요 사안들도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3월 12일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재용 “경영권 승계 무관” 입증에 ‘올인’ 먼저 재판을 받고 있는 쪽은 이 부회장이다. 2월 28일 특검에 의해 뇌물공여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3월 9일 진행된 첫 공판준비기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재판 일정에 들어갔다. 특검법에서는 기소일을 기준으로 3개월 이내에 1심 선고를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기한을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가 해당 규정을 거론하며 ‘시간 절약’을 강조한 것을 보면 5월 말까지는 1심 공판이 완료될 가능성이 높다.

재판에서 이 부회장이 방어를 위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무관함을 우선 밝히는 일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한 차례 기각된 점을 파고든 전략이다. 법원은 1월 19일 특검이 청구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뇌물죄 관련 소명이 부족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2월 17일 재청구된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법원은 “새롭게 구성된 범죄혐의 사실과 추가로 수집된 증거자료 등을 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구속영장 기각 후 특검은 사건의 배경에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문제가 깊숙이 연관돼 있다는 논리를 통해 범죄혐의를 ‘새롭게’ 구성했다. 이를 위해 삼성 지배구조 문제의 국내 최고 전문가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로부터 삼성 경영권 승계 논란의 시발점부터 최근 현황까지 장시간에 걸친 ‘특강’을 듣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혹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SDI 주식 처분 배려 의혹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이 됐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발부했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특검이 새로 구성한 논리만 무력화시키면 재판의 흐름을 영장이 기각됐을 당시로 되돌릴 수 있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는 동시에 “(특검에서 수사를 이관받은)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고 주장한 이유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공판기일에 앞서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못하도록 공소장 외 다른 서류나 증거물을 제출하지 못하도록 한 원칙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공소장에 이 사건과 무관하고 무죄로 판결도 끝난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등을 거론하며 재판부가 삼성이 조직적으로 불법승계를 지원해온 것처럼 예단하도록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소장에 최근 해체된 삼성 미래전략실이 거론된 점도 지적하며 “검찰이 마치 미전실이 범죄집단인 것처럼 묘사했다”고도 주장했다. 종합하면 이 부회장을 둘러싼 각종 편법 승계 의혹 등 세간의 부정적인 여론과 시각으로 인해 재판이 본격 시작되기도 전에 이 부회장이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게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청탁을 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점도 이 부회장 측이 집중 공략하는 부분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공소장에 나온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대화 내용 중 어떤 것도 이 부회장이 인정한 바가 없다”며 검찰이 제시한 증거 대부분이 관련인의 진술이나 기록 등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필요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수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이 부회장에 대한 첫 영장청구가 기각됐을 당시 주요 기각 사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받고 있는 5개 혐의 중 핵심인 뇌물죄 및 특가법상 횡령 등 4개 혐의는 경영권 승계 특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특혜 의혹을 해소하면 이들 혐의를 한꺼번에 벗는 것도 가능하다. 남은 1개 혐의인 청문회 위증죄의 경우 이 부회장이나 최순실씨가 “2016년 이전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고 자백하지 않는 이상 입증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이런 시나리오라면 이 부회장은 기존부터 취해온 강요죄의 ‘피해자’ 입장에서 미르재단 출연금 문제나 최순실 지원 문제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재판을 통해 소명하는 것 외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월 18일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 이준헌 기자

■‘민간인 박근혜’의 입 열리나 21일 검찰에 출두하는 박 전 대통령이 어떤 진술을 내놓느냐에 따라 본인 재판이나 이 부회장 재판 등 모든 게 바뀔 수도, 그대로일 수도 있다. 탄핵으로 일반인 신분이 된 박 전 대통령은 일단 변호인단을 통해 “적극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게이트 관련 수사가 시작된 이후 검찰도, 특검도 수사의 최종 목적지는 박 전 대통령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재용 부회장-최순실’로 이어지는 삼각고리에서 이 부회장과 최씨가 구속된 마당에 박 전 대통령이 더 이상 수사를 피하거나 거부할 명분이나 이유가 없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일단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도 60%가 넘는다.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핵심인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13개에 달한다. 법조계에서는 사건이 처음 불거진 이후 최근까지 일관되게 주장해온 대로 박 전 대통령 역시 혐의를 ‘전면 부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법조인은 “박 전 대통령이 전략적으로 일부 혐의만 ‘골라서’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 경우 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다른 피의자들의 증언과 박 전 대통령 본인 진술 간 모순이나 허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측은 수사나 재판에 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 중 한 명인 손범규 변호사는 3월 16일 “수사는 전체 과정이 비밀에 속하는 것이지 재판처럼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언론이 변호인 일부와의 대화내용 일부를 편집·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가감·단정하면서 이를 박 전 대통령 본인의 의지인 것처럼 확대 보도할 때는 민·형사상 소송 등 법적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박 전 대통령이 내놓은 대국민 담화나 연초에 벌인 기자간담회, 모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종합하면 박 전 대통령은 무죄를 주장하면서 국가와 경제발전을 위한 선의의 의도였다는 점,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점, 최순실씨와 참모진의 비위를 알지 못했다는 점 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탄핵심판 말미에 등장한 ‘고영태씨 녹음파일 의혹’을 집중 제기하며 본인이 억울하게 ‘엮였음’을 호소할 가능성이 높다.

최대 관건은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과의 두 차례 ‘독대’에서 오간 대화 내용의 진술 여부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뇌물죄에 있어서는 ‘공생관계’, 강요죄에 있어서는 일종의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이 부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뇌물죄는 부인하면서도 “강압에 의해 최순실을 지원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본인에게 불리한 독대 내용은 감추고 유리한 내용만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뇌물죄도 방어하면서 강요죄도 혐의가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이 진술하지 않은 독대 내용까지 진술할 가능성이 있다. 독대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관련 청탁이 실제 있었다고 가정할 경우 박 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불리한 진술을 이 부회장이 못하도록 하는 카드로 이를 활용할 수도 있다. 재판이 불리해질 경우 극단적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청탁 사실을 폭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사안에 따라선 협조냐 폭로냐를 놓고 양측 변호인단 간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대질신문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 결정 누구한테 유리할까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일관적으로 뇌물죄를 부인할 경우 검찰은 그간 확보한 관련자들의 진술이나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 등 자료를 통해 재판에서 혐의를 입증해야 한다. 검찰이 16일 SK그룹 고위 관계자 3명을 소환해 19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인 이유도 뇌물죄를 입증할 다른 진술을 보강하기 위함이다.

진술이나 수첩 등의 자료로 뇌물죄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 상태다. 헌법재판소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안 전 수석의 수첩을 모두 증거로 채택했고, 결정문을 통해 해당 증거들로 박 전 대통령의 파면사유를 구성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형사재판은 헌재 판결과 달라 유죄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증거에 대한 각 재판부의 판단이 다시 필요하지만 적어도 박 전 대통령이나 이 부회장이 제기해온 해당 자료들의 ‘증거 무능력’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진 셈이다.

헌재 판결이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건이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헌재 판결과 실제 판결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경우 해석이 엇갈린다. 재계 일각에선 헌재가 결정문에서 박 전 대통령의 기업 재산권 침해를 지적한 점을 들어 ‘피해자’임을 자처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정작 논란이 되는 경영권 승계 청탁 의혹 등은 헌재가 언급하지 않은 점을 들어 헌재의 지적이 이 부회장 재판과는 무관한 판단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최순실씨 재판이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재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재판,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재판 등 다른 피의자들의 재판 경과나 결과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재판의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검찰은 최씨 재판이나 문 전 장관 재판 등의 경우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인 뇌물죄 의혹과 연관돼 있다는 점을 들어 재판부에 사건 병합이 가능한지 여부를 문의한 상태다. 일부 재판이 병합돼 핵심 관계자들이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될 경우 증인 및 참고인 심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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