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다솜 기자 = "500피트(약 150m)에서 넘버원 엔진 쪽으로 새떼가 옵니다."
이륙한 항공기가 500피트에 다다르자 왼쪽으로 수십마리의 새떼가 지나갔다. 이후 새떼는 좌측 엔진과 충돌하며 '쿵'하는 소리가 났다. 기체가 기우뚱하며 급기야 짧은 사이렌 소리가 반복된다.
1번 엔진 손상으로 운항 승무원들은 남은 단 하나의 엔진으로 긴급 회항에 나선다. 다행히 이 비행기는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이날 교관을 맡은 장익세 제주항공 기장은 운항을 맡은 허성민 기장, 유현인 부기장에게 조류 충돌로 알려진 '버드 스트라이크' 상황을 부여했다.
버드 스트라이크는 항공기가 이·착륙 및 순항 중 조류와 부딪히는 현상으로 실제로 빈번히 일어나는 비행 사고 중 하나다. 엔진 손상, 동체 파손 등 기체 안전에 위협을 가해 항공기 운항 위험 요인으로 손꼽힌다.
이날 허 기장, 유 부기장은 시뮬레이터를 통해 버드 스트라이크 최악의 시나리오인 '엔진 손상'을 체험했다. 이들은 손상된 엔진을 끄고 가장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수습했다.
제주항공의 시뮬레이터는 항공기 B737-8 조종석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기계로 기체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시나리오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실제 전 세계 공항 활주로는 물론, 타사 항공기까지 그대로 볼 수 있어 생동감을 더한다.
제주항공은 현재 김포공항에 2대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중 시뮬레이터를 운영하는 곳은 제주항공이 유일하다.
시뮬레이터가 없는 항공사들은 해외에서 교육을 수료하거나, 제주항공 등에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대여해 이용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 이다솜 기자=제주항공 운항승무원들이 시뮬레이터(SIM)을 통해 착륙 훈련을 받고 있다. 2023.8.18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훈련에서 교관은 시뮬레이터에 시정거리로 단 25m를 입력했다. 곧 조종석 전방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꼈다.
착륙 시도를 한 지 얼마 후 안개가 순간적으로 걷히자 눈 앞에 바로 활주로 바닥이 보였다. 자동 착륙 시스템의 오작동을 가정한 상황에서 허 기장과 유 부기장은 오직 계기판에 의존해 수동 착륙에 성공했다.
일교차가 큰 계절이나 공항 지역에는 안개·해무의 문제로 시정 제한이 자주 발생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착륙하기 위해 운항 승무원들은 저시정 운항 훈련을 꼭 받아야 한다. 훈련 후에는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시정거리 '0m'에서도 항공기를 무사히 착륙시킬 수 있다.
이외에도 항공기가 뒤집히는 등 이상자세 발생 시 대응하는 'UPRT(Upset Prevention and Recovery Training)', 주변 항공기가 충돌 경로로 접근하는 상황을 대비하는 'TCAS 기동 훈련'도 진행했다.
장 기장은 "시뮬레이터를 통해 재현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고 말했다.
3번의 심사 중 단 1번이라도 대응에 실패할 경우 '운항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 이후 재기회에서도 같은 결과를 받으면 위원회에 회부되며, 비행 이력을 고려해 최악의 경우 해고된다.
이러한 케이스는 1년에 1~2% 발생할 정도로 소수지만 운항의 안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장 기장은 "법적 필수 훈련 횟수는 1년에 2번이지만 제주항공은 직접 시뮬레이터를 갖고 있어 얼마든지 추가 훈련을 할 수 있다"며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어떤 상황이라도 부여해 위기 상황에 대응해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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