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사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장으로 복지가 해결되는 것은 말해왔는데요, 요즘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복지확대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할까요?
Q: 사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장으로 복지가 해결되는 것은 말해왔는데요, 요즘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복지확대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할까요?
A: 자본주의를 하자 말자가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복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지는 당연히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지를 놓고 정치권과 전문가들이 고민해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서 세금을 내고 어떤 복지를 받을 것인지 국민들이 따져봐야 합니다.
사실 복지는 함께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이죠. 해방 이후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감당이 됐습니다. 하지만 산업화가 끝나고 지식경제 단계로 넘어가면서 그게 불가능해졌어요. 1997년 외환위기 전후로 그런 경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당시에는 경제 위기 때문에 힘드니까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결국 지금 와서 복지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게 된 것이죠. 특히 노동시장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시장이 분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들이 고스란히 복지로 떠밀려 내려오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복지는 시대정신이고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며, 좋은 복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기존에 보고된 관련 연구결과들을 보면, 우리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확실하게 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첨예한 사회 갈등이라고들 합니다. 인류역사를 보면 사회 갈등 해소에 가장 효과적인 처방전이 복지였습니다. 복지가 아니더라도 사회갈등 비용은 어떻게든 치러야 하는데, 복지를 안 할 이유가 없겠죠. 과거처럼 고도성장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몸에 가장 잘 맞는 좋은 복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Q: 흔히 복지병을 우려하는 보수주의자들은 복지 확대가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보다 현대적인 합리적 보수의 입장에서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A: 복지에 성장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단, 어떤 복지냐에 따라서 매우 달라지는데,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경우는 근로 동기 침해 요소가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강조하는 사회서비스는 전혀 문제가 다릅니다. 이는 많은 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00만~200만 원을 현금으로 지원해주면 대부분 지금처럼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하지만 보육이나 재취업을 위한 직업 훈련, 보건의료 서비스들이 높은 질로 제공된다면 일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겠죠. 서비스 가격이 원가보다 싸더라도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도 벌어야 합니다. 우리도 복지를 확대하더라도 사회서비스 분야에 대한 투자에 우선순위를 둬야한다는 게 올바른 판단입니다.
Q: 교수님은 한국형 복지국가 전략으로 현금급여에서 벗어나 사회서비스를 강화하는 전략을 강조하시는데요, 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복지국가의 태생부터 좀 살펴보도록 할까요? 애초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자본주의가 낫다는 게 대세였는데 너무 시장만 강조되다 보니 시장 실패 등 여러 문제가 생긴 겁니다. 이런 자본주의를 수정하기 위해 나온 게 복지입니다. 하지만 시장 실패를 해결하려 정부의 역할이 확대되다 보니 정부의 실패가 다시 문제로 떠오르게 됐습니다.
성장이 있어야 자원이 창출되고 사회 욕구들을 풀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 그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복지국가는 생산 지향적이지 않으면 그 자체로 굴러갈 수 없습니다. 복지에서 비생산적인 부분을 쳐내고 성장과 선순환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의 실패를 보정해 나가는 게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입니다. 요컨대,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은 지속가능한 모든 복지전략의 기본입니다.
사회서비스를 우선 확대해야 하는 이유는 성장친화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지병이라는 게 모든 나라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미국은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15% 정도고 대부분 유럽 국가들은 30%에 육박합니다. 그 형태를 보면 미국은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 제공이 낮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고 프랑스와 같은 대륙유럽 국가들은 사회보험 등 현금 지원이 많은 편입니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가 높은 수준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지병이 있다면 복지 지출이 많은 유럽 국가들이 무조건 경제 성적이 좋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의 경우 실질GDP 성장률을 보면 미국과 스웨덴 간에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현금을 직접 지원하는 대신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고 이를 이용하려면 현금이 필요하다보니 근로의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또 사회서비스는 사람이 전달할 수밖에 없어 사회서비스를 늘리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양질의 일자리도 늘어나게 됩니다. 돌봄서비스가 확대되면, 교육받은 여성들이 취업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총생산성이 올라갑니다. 사회서비스 확대가 성장친화적인 이유이죠. 반면 복지에서 연금이나 실업 급여 등 현금 지원 비중이 큰 대륙유럽 국가들은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사회서비스 강화전략은 정부가 모든 걸 다 해줄 테니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라는 게 아닙니다. 필요한 현금은 스스로 벌고 필요한데 부족한 부분은 사회서비스로 해결해 주자는 게 기본 개념입니다. 육아나 간병 등 돌봄, 교육, 주거, 직업교육 등 고용, 보건의료 등 사회서비스 분야는 여러 가지입니다. 국가는 이런 사회서비스를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급에 나서야 합니다. 특히 사회서비스 중에서도 생애주기에 따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제공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 목록에 어떤 사회서비스가 들어갈지는 우선순위를 따져볼 필요는 있겠죠.
Q: 현재 우리사회는 현금 복지도 취약한 편이고 사회서비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확대해 나가면서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할 것 같은데, 사회서비스만 강조하는 것 아닌가요? 또한, 새로운 전략에서는 근로와 일자리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상 복지 축소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처방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물론 복지를 늘린다면 현금 지원과 사회서비스 모두 늘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균형점을 찾는 것은 도식적으로 풀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감당할 수준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다만 지금처럼 현금(돈)만 가지고 복지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취약계층에 대해서만 생계비 지원 등에 더하여 약간의 사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는 중산층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을 제외하고는 연금 등의 현금 지원에 치중돼 있습니다. 향후 연금이 본격적으로 풀릴 미래 시점을 계산해 보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현금지원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는 게 한국 복지국가입니다. 그래서 개혁이 필요하고, 앞으로 복지확대를 하더라도 사회서비스 투자를 우선 늘리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사회서비스의 경우에는 공공 부문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자는 것인데 왜 복지 축소일까요? 특히 우리 사회와 같이 사회서비스 투자가 초기인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맞춤 서비스를 공공이 주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숙아에게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것처럼 아직은 공공부문이 사회서비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즘 일자리 없는 성장 얘기를 많이들 하는데, 사회서비스를 늘리면 일자리가 늘어나기도 하겠죠.
또 하나 기억할 것은, 복지를 얘기하면서 근로의 가치나 노동시장문제를 말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 이 순간, 복지라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결국 비정규직 문제로 대변되는 노동시장 양극화 때문입니다.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 문제를 그대로 두고 복지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습니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노동시장 양극화 해결이 먼저겠죠. 근로를 강조한다고 해서 시장주의나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시장과 복지는 당연히 같이 고민할 문제입니다. 덴마크의 '골든트라이앵글'의 경우처럼, 즉 노동시장 유연화-복지-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제대로 된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장 없이 복지 없고, 일자리 없는 성장이 무의미하기 때문에, 성장-복지-일자리는 항상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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