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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탄핵심판·특검 이끈 두 사람

韓國歷史와 人物

by 석천선생 2017. 3. 1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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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정 입력 2017.03.11 09:02 수정 2017.03.11 09:16

강일원 헌법재판관과 박영수 특별검사

10일 오전 11시21분31초.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시간이다. 비선실세 최순실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난 지 약 170일, 지난해 12월9일 국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 92일만이다.

탄핵의 1등 공신은 민주주의를 염원해온 국민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라 탄핵의 정당성을 따진 헌법재판소와 법률에 따라 국정농단의 진실을 수사한 특별검사팀이 없었다면 대통령 파면도 어려웠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석 달간 밤낮없이 고민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해 온 수많은 사람들. 그 중심에는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58) 헌법재판관, 박영수(65) 특별검사가 있다.

강일원(왼쪽) 헌법재판관, 박영수 특별검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부드러운 촌철살인, 탄핵심판 주심 강일원 재판관

강 재판관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탄핵심판 주심으로 선정됐다. 일반적인 헌법소원에서 주심 재판관은 가장 먼저 사건 쟁점을 정리하고 재판관들 사이에서 논의를 주도한다. 하지만 탄핵심판의 경우 국가 중대사로서 모든 재판관들이 매일 평의를 열어 서로 논의하는 점, 이정미(55)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중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강 재판관의 상대적인 주목도는 낮았다. 하지만 주심이자 수명재판관(재판절차 진행을 담당하는 재판관), 그리고 법과 원칙을 수호하는 헌법재판관으로서 그의 역할은 중요했다.

1월 17일 오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6차 변론기일에 참석한 강일원 헌법재판관. 연합뉴스

강 재판관은 지난 2012년 여ㆍ야 합의로 추천돼 헌재에 입성했다. 30년간 사법부에 몸담으며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합리적이면서 공정한 재판 능력을 가졌다는 게 강 재판관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2006년 대전고법 부장판사 재직 시절엔 전국 고법 형사재판부 가운데 가장 낮은 상고율도 기록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 강 재판관은 이념 지향성이 없는 중도적 인사로 알려졌다. 2014년12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선 ‘찬성’(인용) 의견을 낸 데 이어, 2015년5월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에도 ‘합헌’ 뜻을 밝혔다. 반면 그는 지난해 3월 대통령 비하 시 상관모욕죄 적용여부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으로 소수 의견을 냈고, 지난해 4월 자발적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성매매특별법 21조 1항 헌법소원 당시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처벌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강일원(오른쪽) 재판관은 지난 2014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 101차 정기총회에서 아시아계 최초로 헌법재판공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강 재판관이 위원장 선출 직후 크리스토프 그래벤바르터(Christoph Grabenwarter) 전임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강 재판관은 특히 지난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증인들의 모르쇠나 일부 대리인들의 선동성 발언에 촌철살인의 진행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2월27일 탄핵심판 제 3차 준비기일에 대통령 법률 대리인단이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국회의 탄핵소추를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 재판관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에도 같은 이의제기에 대해 각하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선례를 들며 “절차적 판단은 제쳐두고 본안 판단을 통해 ‘진검 승부’를 해보자”고 맞불을 놨다.

지난달 9일 열린 제 12차 변론기일에서는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경위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화제를 모았다. 대통령 대리인 측이 “재단 설립은 국정과제 일환이자 좋은 취지였다고 말하자” 강 재판관이“그런데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왜 관련된 사람에게 ‘증거를 다 없애라’거나 ‘국회에서 위증하라’고 했냐”고 지적하면서다. 대리인단은 이 질문에 결국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그는 또 탄핵심판 과정에서 ‘막말’을 듣기도 했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김평우(72) 변호사는 지난달 22일 제16차 변론에서 강 재판관에게 “국회 측 수석대리인이 되는 것이다. 법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재판관이 대통령 측 증인을 상대로 적극적으로 질문을 했다는 이유다.

지난 석 달간 강 재판관에게 주어진 짐은 무거웠다. 그를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심판을 끝내기 위해 주 2~3회 변론을 강행해왔고, 변론이 없는 날이나 주말에도 쉬지 않고 수만 쪽에 달하는 기록을 검토해왔다. 하지만 강 재판관은 선고일인 10일에도 오전 7시 33분에 가장 먼저 출근하면서 끝까지 주심의 품격을 보여줬다.

‘성역 없는 수사’ 몸소 보여준 박영수 특검

박 특검 역시 이번 박 전 대통령의 탄핵 드라마에서 또 다른 주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특검으로 임명된 지난해 11월30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수사영역을 한정하거나 대상자의 지위고하를 고려하지 않겠다”며 “결코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철저히 수사하겠다”며 철저한 수사 의지도 천명했다. 특검은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이자, 국난 극복의 최전선이라는 문제의식에서다.

국민들은 특검에서 수사결과를 발표한 지난 7일, 박 특검의 다짐이 진심이었음을 확인했다. 특검은 ▦삼성그룹의 뇌물공여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적용 ▦이화여대 입시ㆍ학사비리 ▦대통령 비선진료 등 최순실게이트와 관련한 범죄 대부분에 ‘대통령의 공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관련자 13명을 구속 기소, 1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특히 김기춘(78ㆍ구속기소)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51)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 박근혜정부 실세에 대한 거침없는 수사도 진행했다. 아울러 두 차례에 걸친 구속영장 청구 끝에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을 삼성 오너일가 중 처음으로 구속 기소시키면서 박 특검팀은 ‘성역 없는 수사’를 몸소 실천한 ‘역대 최고 특검’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박영수 특검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부장관 등 최순실게이트의 주요인물 13명을 구속 기소하고 1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 특검의 강직한 성품은 검사시절에도 유명했다. 지난 1983년9월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0년대 후반 대검찰청 강력부 강력과장,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부장검사로 재직하는 등 강력ㆍ특수통 검사로서 활약했다. 특히 그는 조직폭력 수사에 능해 ‘강력통’ 검사란 신조어를 만들어낸 주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재계의 저승사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SK와 현대 등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대형 수사에서도 박 특검은 원리원칙을 고집했다. 지난 2003년 서울지검 2차장 으로서 ‘SK그룹 글로벌 분식회계 사태’수사를 지휘하던 당시에는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켰다. 2006년에는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비자금 수사를 맡았고 정몽구 회장도 구속기소했다. 그는 이로 인해 현직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게도 법 앞에 성역은 없다는 선례도 남겼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처럼 화려한 법조계 경력을 보유한 그였지만 이번에 주어졌던 특검 자리는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박 특검은 지난해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처음 후보제안을 받은 뒤 “사건 자체가 너무 막중해 처음부터 자신있게 그런 소임을 다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26년간의 검사생활을 마치고 2009년부터 변호사 활동에 들어간 그가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2012년) 수행 등 주로 민생 행보를 이어갔던 이력도 특검 임무 수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결국 “불의에 대한 수사를 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검사도가 아니다”라는 신념 아래 특검의 중책을 끝까지 수행해 냈다.

박 특검은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정된 기간과 중 수사대상의 비협조로 (국정농단 및 정경유착 진상규명을)다 이루지 못했고, 특검 수사도 절반에 그쳤다”고 아쉬워했다. 수사를 시작하며 약속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가 불발됐고 또 다른 핵심 조사 인물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혐의입증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특검이 끝맺지 못한 14건의 범죄혐의를 받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검찰의 몫으로 넘어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윤석열(왼쪽부터) 수사팀장, 이규철 특검보, 박영수 특검, 이용복 특검보가 6일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서 90일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홍인기기자

박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밤낮없이 고심한 헌법재판관은 강 주심 외에도 이정미 권한대행, 중도 퇴임한 박한철 전 헌재소장 등 총 9명이다. 최순실게이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주말을 잊고 고군분투한 특검팀에는 박 특검외에도 이규철 특별검사보 등 특검보 4명, 윤석열 수사팀장 등 파견검사 20명 등 총 65명이 있었다. 비록 특검의 임무가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고생하셨습니다.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란 찬사와 함께.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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