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02.15 01:02 수정 2017.02.15 07:17
강대국 민족주의가 속속 귀환하고 있다. 냉전을 지나 세계화를 맞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민족주의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역사 무대 앞에 서게 됐다. 특히 이웃한 중화(中華) 민족주의의 빠르고 거센 굴기는 우리에게 커다란 부담이다. 민족주의 이론가 워커 코너는 민족주의의 결집은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비이성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논리를 넘어선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중화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이 될 것인가, 우리는 또 어떻게 응전해야 하나.
량치차오는 캉유웨이(康有爲) 등과 함께 일으킨 ‘변법자강(變法自彊)’ 운동엔 실패했지만 이후 망명 생활을 하며 중국 내 한족과 소수민족을 통합하는 새로운 ‘근대적 중화민족’의 개념을 제시했다.
량의 중화민족 개념은 한족 중심의 배타적인 ‘소(小)민족주의’와 한족은 물론 당시 중국 내 대표적 소수민족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回族), 묘족(苗族), 장족(壯族)을 포함하는 ‘대(大)민족주의’의 둘로 나뉜다.
그는 처음엔 유교 사상을 중심으로 한족 중심의 개혁을 통해 중국을 서구 열강의 침탈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후엔 모든 중국인이 힘을 모아야 비로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결론 짓고 ‘대민족’으로 중화민족을 정의했다.
쑨원(孫文) 또한 1912년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에 오르게 되자 기존의 한족 중심주의에서 탈피해 한족과 소수민족인 만주족, 몽고족, 회족, 장족 등 5개 주요 민족으로 구성된 중화민족이 민족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오족공화론(五族共和論)’을 주장했다.
바로 이런 량치차오와 쑨원의 ‘근대적 중화민족’ 개념을 법과 제도로 완성한 이가 마오쩌둥(毛澤東)이다. 마오는 공산 혁명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포함된 중화민족의 해방을 역설했다. 또 건국 후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임을 중국 헌법에 명시했다.
━ 애국·민족주의의 정치적 활용 중국 근대 역사에서 중화 민족주의가 다시 부름을 받은 건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냉전이 끝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역사적 실험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대내외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기대감과 역할이 대폭 축소됐기 때문이다.
밖으로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몰락을 지켜보던 중국의 지도자들은 안으로는 더 많은 자유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89년 6월의 천안문(天安門) 사태에 맞닥뜨리게 됐다. 중국 지도자들에겐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중국 지도부의 선택은 중화 민족주의를 애국심과 결합시킨 애국·민족주의의 정치적 활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화 민족주의는 그간 공산주의 사상이 맡아왔던 공산당의 정통성과 리더십을 유지하는 한편,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하나로 묶는 정치적 임무까지 넘겨 받으며 다시 역사의 조명을 받았다.
시진핑 지도부가 외치는 중국꿈 즉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바라보는 국제적 시선이 삐딱하기만 한 건 아니다. 중국 경제의 부상에 업혀 덕을 보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중국이 옛 영광을 되찾겠다고 나서는 걸 그러려니 하고 바라보는 분위기다.
국내적 여건도 나쁘지 않다. 특히 경착륙이 우려되는 경제 환경 속에서 반(反)부패와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추진하는 데 중화 민족주의 기치를 내거는 건 나름 효과가 있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중 견제 돌파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중화 민족주의는 ‘양날의 칼’이다. 2014년 3월 29명이 사망하고 143명이 부상한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의 기차역 테러 등 소수민족 문제는 여전히 중국의 정치적 불안 요인 중 하나다. 이는 중화 민족주의를 강조할수록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려는 소수민족들의 저항이 커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론 민족주의에 기인해 국제 사회에서 ‘강한 중국’의 모습을 바라는 국내 정치적인 요구 때문에 중국 외교에서 협상의 폭이 줄어드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 특히 주요 강대국들과는 물론 이웃 국가들과도 갈등이 생길 경우 중국 지도부는 민족주의 그룹들의 요구 탓에 전략적으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쉽지 않게 됐다.
━ 민족주의를 한정된 공간에 묶어라 시진핑 지도부는 아직은 중화 민족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마땅한 정치적 도구를 찾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면 중화 민족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문제로 냉각된 중국과의 관계를 한국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또 동북공정’ 등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양국의 민족주의적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민족주의적 갈등 요소는 쉽게 감정싸움으로 번지며 민족 간 극한 대립을 부른다. 일부 정치인은 국민의 충성심 결집을 노리고 민족주의적 대립을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가 아니라면 민족주의적 갈등은 그 요인을 가능한 한 한정된 공간으로 유도해 관리해야 한다.문화적 대립이 나타나면 문화 교류의 공간에 놓아두고 경제와 안보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화적 대립을 경제적 보복으로 갚아준다면 장기적 측면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정부 또는 지도자는 지혜롭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 예는 지나간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갈등의 원인 또한 정확하게 짚어 분리시켜야 한다. 과거 역사 인식에서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 대해 비판적인 감정을 드러내곤 하는 중국이 일관되게 비판하는 표적은 일본의 일부 극우 정치인과 단체다. 민족 대 민족의 감정적 충돌을 제어하는 외교의 전략적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로 우리는 걸어 들어가고 있다.
■◆김한권
「미국 코네티컷주립대에서 정치학 학사와 행정학 석사, 아메리칸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과 지역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미·중 사이 한국의 이원외교』(2015) 가 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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