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기자 입력 2017.01.07 03:06
1900년대 초반 암(癌)에 걸리는 사람은 20명에 한 명꼴이었다. 지금은 분모가 확 줄었다. 미국 워싱턴대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지난달 국제학술지 '미국의학협회 학술지(JAMA)'에 발표한 논문에서 "2005년에서 2015년까지 10년간 암 환자 발생이 33%나 늘었다"고 밝혔다. 이제 남성 3명 중 1명, 여성 4명 중 1명은 평생 암에 한 번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눈부신 의학 발전에도 불구하고 암세포와의 전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전세를 뒤집을 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최신호에서 정밀(精密) 의학, 면역 항암제, 세포 치료제 등을 암 정복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로 꼽았다.
정밀 의학은 암 정복은 물론 미래 의학의 열쇠로 각광받는다. 과거 의사들은 같은 질병이면 같은 약을 처방했다. 사람에 따라 용량을 조절하거나 부작용을 살피는 정도의 차이만 있었다. 이와 달리 정밀 의학은 철저히 개인화된 치료법을 목표로 한다. 개인마다 다른 암 발병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돌연변이가 생긴 유전자를 되돌리는 식으로 암을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3세대 항암제인 '면역 항암제'는 최근 전 세계 제약사들이 가장 주목하는 분야이다. 현재 암 치료에 사용하는 것은 1·2세대 항암제이다. 1세대 항암제는 암세포가 다른 세포보다 빨리 자라는 점을 노려 증식하는 세포를 죽이고, 2세대는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을 공격한다. 두 종류 모두 치료제가 암세포를 직접 공격한다. 독성 때문에 주변 세포까지 함께 죽으면서 각종 부작용이 생긴다. 면역 항암제는 환자의 면역 체계가 스스로 암과 싸우도록 만든다.
핵심은 몸속에서 비정상적인 세포나 외부 침입과 싸우는 T세포를 보호하는 것이다. 원래 T세포는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기능이 마비되면서 힘을 잃지만, 면역 항암제의 도움을 받은 T세포는 전투를 계속할 수 있다. T세포는 정상 세포와 암세포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 없이 암세포만 골라내 파괴한다. 임상시험에서 일부 말기 암환자에게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잘 듣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살아있는 항암제'로 불리는 세포 치료제도 주목받고 있다. 세포 치료제의 원리는 이렇다. 환자의 혈액을 뽑은 뒤 암세포를 찾아낼 수 있는 유전자를 만들어 T세포에 넣는다. 그다음 다시 이 혈액을 환자에게 주입한다. T세포에 강력한 탐지장치를 달아주는 것이다. 세포 치료제는 화학약품과 달리 살아 있기 때문에 환자 몸속의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임상시험에서 백혈병과 같은 혈액암에 강력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치료제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도 있다. 환경으로 인한 유전적 변화를 원래대로 돌리는 이른바 '후생적 치료'이다. 암 중 상당수는 흡연이나 음주, 스트레스 등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발병한다.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암세포가 생긴다. 후생적 치료는 이런 유전적 손상이나 돌연변이를 거꾸로 돌리는 시도이다. 정상 세포가 왜 암세포로 바뀌었는지를 먼저 파악하고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끄거나, 다른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면 된다. 작동 방식을 완벽하게 알아내면 모든 종류의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암 전이를 막는 방법도 개발 중이다.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90%가 다른 장기나 조직으로 암세포가 옮겨가는 전이를 경험한다. 2014년 미국 과학자들은 전이를 일으키는 암세포가 따로 있고 혈관에 달라붙어 몸속을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 연구팀은 동물실험에서 이 유전자의 활동을 막는 데 성공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병원의 존 마사구 박사는 "20세기에는 암이 치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과학자들은 다른 질병처럼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서 "특히 최근 연구 중인 새로운 방식들을 이용하면 마치 항생제를 사용해 전염병을 치료하는 것처럼 암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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