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9년 두 자녀의 교육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한 주부 김모(41) 씨는 현지에서 마트 계산원으로 일한다. 김 씨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런 결정을 못 할 것”이라며 “가족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특히 외로움으로 남편에게 기대고 싶어질 때 부부가 함께 이주해 온 가정을 보면서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2. 2003년 외동딸(22)을 미국으로 유학보낸 공무원 박모(52) 씨. 남들은 그저 일 열심히 하는 공무원으로 알지만 박 씨의 속이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그는 “가족의 의미를 모르겠다. 권태기마저 오면서 아내와의 대화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말한다. 최근 아내마저 공부를 더하고 싶다며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그는 “각자의 꿈이 먼저인지 서로에 대한 희생이 먼저인지 정말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전문직 세대주인 가구를 중심으로 자녀교육을 위해 가족 구성원이 떨어져 지내는 비동거 가족, 일명 ‘기러기가족’을 요즘은 중산층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통계청이 5년마다 시행하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했지만 배우자와 떨어져 사는 가구는 115만가구로 전체 결혼가구의 10%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인 50여만가구가 기러기가족으로 추정된다.
교육부가 조사한 조기 유학생 출국 현황을 보더라도 2004년부터 매년 평균 2만2000여가구의 새로운 기러기가족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부인이 자녀들과 같이 외국에 나가 있고, 남편이 한국에서 혼자 경제활동을 하며 교육비 등 현지 체재비를 조달하며 ‘독거’ 생활을 하는 ‘기러기아빠’는 건강상으로나 정서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차은정 수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따르면 35~59세 기러기아빠 1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8%가 영양불량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1명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등 자기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10명 중 3명은 ‘우울함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한 전문병원 통계는 설문대상자 중 30%가 주 2~3회가량 음주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년차 기러기아빠인 김모(51) 씨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들과 부인을 미국으로 보내고 회사생활을 하는 김 씨는 “지난 설에는 아들과 애엄마에게 미국에 있으라고 했다”며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보니 왕복 비행기값도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요즘 들어 부쩍 자괴감이 들 때가 잦다. 그는 “차례도 지내지 않고 혼자 명절을 보내는데, 왜 이러고 사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공공기관의 지역 이전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공무원을 두고 ‘괭이갈매기족’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온 지 오래다. 총리실에 따르면 올해까지 이주하는 공무원은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가족을 두고 혼자 세종시로 이주한 공무원은 41%에 이른다. 세종시 소재 모 부처의 한 공무원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혼자 내려가기로 결정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은 전 동국대 교수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파행을 빚으면서 전통적으로 혈연적 유대감이 강한 한국의 가족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혈연적 유대가 강해서 야기된 기러기가족 현상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다시 그 유대를 끊고 있는 원흉이 되고 있다.
이태형 기자/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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