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이창명기자][편집자주] 대한민국에서 '평균'의 인생을 산다는 건 빚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과 이음동의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것도 버거운데 결혼, 출산, 주택마련, 자녀 대학 진학 등 목돈 들어가는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빚은 쌓이기만 한다. 이른바 '적자 인생'이다. 머니투데이는 '부채공화국' 대한민국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빚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짚어봤다.
[['빚수래 빚수거'①]'부채공화국' 대한민국, 생애주기별로 이어지는 '빚'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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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1000조 시대 서울의 한 시중은행 창구에 한 고객이 개인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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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대한민국 가계부채 1000조원 시대. 빚으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삶은 빚으로 시작해서 빚으로 끝나는 '빚수래 빚수거' 인생이다.
소박하게, 남들 하는 만큼만 하고 살려고 했는데 대출이 수천만원, 수억원이다. 20평대 아파트가 3억~4억원에 달하고 자녀 1명 키우는데 어린이집이며 학원이며 한달에 100만원이상 들어간다. 대학 학자금 대출은 자녀의 미래가 담보다.
뻔한 월급으론 이자 갚기도 벅차다.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직장이 있으면 그나마 낫다. 구조조정을 당하면 '치킨집'이라도 차리기 위해 또 대출을 받아야 한다. 빚의 무게에 힘겨워하다 범죄에 노출되기도 한다.
◇생애주기별로 이어지는 '빚'의 일상화생애 주기별로 빚을 지는 모습은 통계를 살펴보면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주 연령계층별 신용부채 상세현황에 따르면 20대는 주로 전월세보증금(46.8%) 마련을 위해 가장 많이 대출을 받았다.
결혼과 육아가 시작되는 30대엔 생활비(24.3%)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비중이 가장 높았고, 직장에서 떨려나가기 시작하는 40대(35.5%)와 50대(45.1%). 60대 이상(37.2%)은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빚이 가장 많았다.
사회 구성원들의 빚은 학자금에서 시작해 주거문제로 이어진다. 지난해 에듀머니가 내놓은 청년부채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청년들이 학자금과 전월세 보증금 마련을 위해 받은 부채가 기초 생활조차 어렵게 만드는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결혼 3년차인 직장인 이모씨(32)는 "결혼을 앞두고 1억원을 대출받아 전세집을 구했는데 최근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더 싼 지역으로 이사했다"며 "그동안 갚은 빚보다 전세금이 더 많이 올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아 막막하다"고 말했다.
연령대가 높아지면 자녀 사교육비 부담이 커진다. 경기 구리에 살던 이모씨(59) 부부는 2011년 2억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팔고 8000만원을 대출 받아 잠실의 3억원짜리 전셋집을 구해 이사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더 좋은 교육환경이라 판단되는 지역을 찾아온 것이다.
연금 외에 마땅한 돈벌이가 없는 부부는 고등학교 3년이라면 어떻게 버텨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딸이 졸업하면 다시 주거비용이 싼 경기도권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딸이 재수를 선택하면서 두 사람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씨는 "당장 매달 100만원이 넘게 들어가는 학원비 걱정부터 앞선다"며 "나름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고 있지만 이자에 생활비를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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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소비자연대, 금융정의연대 등 7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엠스퀘어에서 열린 금융소비자네트워크 발족식에서 대부업 광고를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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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그들, 대출사기 먹잇감 되기도한번 떠안은 빚은 아무리 열심히 갚아도 제자리걸음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원리금을 갚는데 쓰는 사람들이 궁지에 몰릴 경우 고금리 대출에 손을 대거나 대출사기에 쉽게 노출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출무료상담 카페 론앤솔루션 관계자는 "여성들을 위해 나온 제2금융권 대출상품 고객만 봐도 급한 생활비나 부모님 입원비로 쓰려는 주부들이 많다"며 "보통 200만~300만원을 빌려가고 대출이자는 20~40% 사이"라고 말했다.
빚이 빚을 부르는 악순환도 심각하다. 최근 서울연구원이 과다채무자 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상담자 중 72.5%인 29명이 부채를 추가로 일으켰다. 이들의 보유 대출 150건 가운데 58건, 40%가 부채상환 목적 대출이었다. 빚으로 빚을 갚고 있는 셈이다.
고금리 제도권 금융 접근도 어려워지면 이들은 대출사기의 먹잇감이 된다. '대출해주겠다'는 문자 한통에 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찰청이 파악한 대출사기 건수는 2012년 1만8383건, 지난해 11월까진 1만6022건의 대출사기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액은 817억원에 달했다. 매달 평균 1456건, 건당 피해액은 509만원이었다. 평균 접수건수는 2012년 1532건 보다 감소했지만 피해액은 전년 357만원과 비교해 42.6% 늘어났다.
대출사기 범행 수법은 보통 급전을 빌려준다며 수수료를 요구한 뒤 빼돌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범행지역이 해외이거나 남의 명의를 사용한 대포폰이나 대포계좌를 사용해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 관계자는 "피해자를 조사해보면 상당수가 제도권 금융 대출이 어려워진 사람들"이라며 "눈에 훤히 보이는 수법에도 불구하고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 피해 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머니투데이 이창명기자 char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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