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김모(33)씨의 올해 연봉은 5329만7000원이다. 그런데 내년엔 확 뛸 전망이다. 다음 달 통상임금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간 대법원 판례로 미뤄볼 때 통상임금에 상여금과 통근비, 휴가비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씨의 통상임금은 기본급과 자격급, 직무급, 점심식대로 구성돼 총 2448만원이다. 이게 3690만2000원으로 늘어난다는 얘기다. 통상임금이 커지면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연장·휴일근로수당과 연차수당이 연동돼서 증가한다. 이 돈이 전체 연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상되는 임금이 내년부터 적용되는 게 아니다. 3년 동안 받았던 연차수당 등을 새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다시 계산, 일시에 받게 된다. 근로기준법 제49조(임금소멸시효 3년)에 따라 소급 적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김씨의 경우 별도의 임금인상 없이도 3년치 소급분을 더해 내년에는 6300만원을 받는다. 게다가 올 4월 국회를 통과한 60세 정년연장법에 따라 현재 58세인 정년이 늘어나 생애임금도 크게 오른다.
김씨의 쉬는 날은 더 많아진다. 명절과 어린이날이 주말과 겹치면 쉴 수 있는 대체휴일제가 내년에 시행된다. 국회에서는 아빠 육아휴직을 30일간 의무적으로 보장하고, 자녀가 법정전염병에 감염되면 3~21일을 쉴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검토 중이다. 연차 유급휴가를 25일에서 50일로 늘리고, 쌍둥이를 임신한 여성에게는 150일(현재 90일)간 출산휴가를 주는 법안도 논의 대상이다. 이것만 합쳐도 어린아이가 있는 김씨는 지금보다 최소 56일간 더 쉴 수 있다. 김씨가 다니는 은행의 비정규직 처우도 나아진다. 관련 법이 9월 개정돼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정규직과 똑같이 줘야 한다. 새누리당은 한발 더 나갔다. 차별행위가 고의적이고 반복적일 경우 손해액의 열 배를 징벌적으로 보상토록 하는 법안까지 내놨다. 이처럼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180여 개 법안이 국회에 올라와 있다. 이 중 정년연장법을 비롯한 12개 법안은 통과된 상태다.
1953년 5월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60년 만에 근로조건에 대변혁이 몰려오고 있다. 저임금·장시간 근로체계가 고임금·단시간 형태로 방향을 완전히 트는 것이다. 근로시간은 줄이고, 휴가와 임금·복지 수준은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이 짜이고 있어서다. 통상임금 확대,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현실화, 육아·출산휴가 확대, 정년 연장, 까다로운 경영상 해고와 같은 것들이 이런 정책이다. 이 같은 변혁은 지난해 대선 때 예견됐다.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최저임금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정하고(박 후보),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올리겠다(문 후보)고 했다. 근로시간과 관련, 박 후보는 2020년까지 연 1800시간(주 35시간)으로, 문 후보는 임기 내 연 2000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고용노동정책에 관한 한 두 후보의 방점은 거의 같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기업이 유연하게 고용을 늘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정년 연장이나 근로시간 단축 같은 규제를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일자리 간의 격차를 해소하면서 고용기간을 더 길게 하겠다는 것이다. 두 대선 후보의 생각이 19대 국회에 그대로 투영돼 법안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종훈(새누리당) 의원은 “노동 관련 법 제·개정에 대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야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며 “다만 진도가 안 나가는 이유는 국가정보원 댓글 파문이나 사초 실종 논란 같은 사안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기의 문제이지 법 통과에 걸림돌이 없다는 얘기다. 이에 대기업 D사 임원은 “법 통과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동욱 기획홍보본부장은 “한꺼번에 근로조건 쓰나미가 몰아쳐 기업은 경쟁력 확보는 고사하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방향이 아무리 맞아도 노사의 의견을 수렴해 점진적으로 해야 국가경쟁력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단국대 김태기(경제학) 교수는 “논의 중인 정책들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 불가피한 것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근로조건이 향상되는 만큼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리느냐가 과제가 될 것이며, 대변혁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는 기업은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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