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새봄 입력 2021. 08. 27. 17:09 수정 2021. 08. 27. 18:36
올해 우리나라에 처음 상륙한 태풍 제12호 오마이스가 지나갔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가 돼서야 뒤늦게 찾아온 태풍에 한반도 남부지역이 침수 등 피해를 봤다. '태풍의 계절'로 알려진 여름은 끝물에 접어들었지만 태풍의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 보통 태풍 발생 시기는 6~10월로 보고 있고, 본격적인 태풍 발생은 7월 말~8월로 알려져 있지만, 태풍이 한반도를 방문하는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강도 역시 세지고 있다.
차동현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는 "올해는 7~8월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의 수 자체는 적지 않았지만 한반도 폭염의 영향으로 태풍이 우리나라를 비껴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에서 발달하는 고온다습한 아열대고기압인 북서태평양 고기압과 고온건조한 티베트고기압의 영향을 모두 받은 한반도를 태풍이 피해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향후 태풍이 가을을 맞는 한반도에 찾아올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도 59년 만에 처음으로 7월에 태풍이 발생하지 않은 해로 기록됐지만, 8월 말부터 태풍 '장미' '바비' '마이삭'과 9월 초 '하이선'까지 네 개가 연달아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다.
올해 역시 오마이스 이후 수차례 가을 태풍이 올 확률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태풍이 10월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며 "9~10월 통틀어 두 개 정도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과거보다 가을에 한반도에 오는 태풍 개수가 많아지고 있다는 연구도 발표됐다. 정우식 인제대 대기환경정보공학과 교수는 '한반도 영향 가을 태풍-과거와 현재의 특성 변화' 논문을 통해 1954년부터 2019년까지 총 66년간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135개를 분석했다.
정 교수 연구팀은 66년을 기간1(1954~2001년), 기간2(2002~2010년), 기간3(2011~2019년) 등 총 세 기간으로 나누고 과거와 현재의 변화를 살펴봤다. 과거(1954~2001년)와 최근(2011~2019년)을 비교·분석한 결과 '여름철'로 구분되는 6~8월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비율이 과거보다 크게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 2000년대 전까지는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태풍 중 78.9%가 여름에 집중됐던 반면, 2010년 이후에는 여름 태풍 비중이 64.5%로 줄었다.
반면 9~10월에 발생하는 태풍, 즉 가을 태풍 빈도는 점차 늘었다. 2000년대 전까지 20%에 불과했던 가을 태풍은 33.3%에 달했다.
태풍 세 개 중 하나는 가을에 오는 것이다. 특히 1955년 이후 66년간 한반도에는 10월 중 태풍 8개가 발생했는데, 이 중 62.5%인 5개가 최근 10년 사이에 몰아서 발생했다.
태양열을 받아 뜨거워진 적도 지방의 바닷물은 26도를 넘어서면 증발해 수증기가 된다. 따뜻한 수증기는 대기로 높이 올라가 비구름을 형성하는데, 이때 기체인 수증기가 액체와 고체인 물방울과 얼음 알갱이로 변하면서 열을 방출한다.
이 열로 대기가 뜨거워지고 더 많은 수증기가 상승하면서 비구름은 점점 커진다. 규모가 커진 비구름은 바람을 만나 이동하다 지구 자전으로 돌면서 태풍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타고 북상한다. 보통 무더운 7~8월 북태평양고기압이 확장하면 우리나라가 이 가장자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태풍 '길목'에 자리 잡게 된다.
한반도에서 더위가 물러가는 9~10월에는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약해지면서 가장자리 역시 한반도가 아닌 일본 열도 아래쪽으로 처지고, 태풍도 한반도를 비껴간다.
정 교수는 "하지만 과거와 달리 지구온난화 등으로 북태평양고기압이 9월에도 우리나라까지 확장해서 유지되는 경우가 많고, 이로 인해 한국이 여전히 고기압 가장자리에 위치하며 태풍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차 교수는 가을 태풍이 잦아지는 이유를 '태평양 10년 주기 진동(PDO)'에서 찾았다.
그는 "PDO가 음인 상태가 되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제트기류가 약해진다"며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태풍이 강도를 유지한 채 한반도가 있는 중위 위도로 확장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상층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태풍 상하층의 바람 차이인 '윈드시어(wind sheer)'도 같이 감소한다.
빠른 속도로 돌고 있는 거대한 팽이를 멈추는 방법은 팽이 회전 방향의 반대쪽으로 힘을 가하는 것이다. 팽이처럼 돌고 있는 태풍의 강도를 약하게 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태풍이 돌고 있을 때 태풍 상층부에 주기적으로 불어오는 편서풍(제트기류) 등이 대기의 상층부를 때리면 위아래 풍향과 풍속이 달라지면서 대기가 분리되고, 구름이 뿔뿔이 흩어지며 태풍이 사라진다.
하지만 제트기류가 약해져 상·하층의 풍향과 풍속 차이가 적게 나면 구름이 모이면서 태풍의 덩치가 더 커진다. 세력이 약해지지 않은 태풍이 한반도에까지 상륙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9월은 한반도의 해수면 온도가 가장 높은 시기여서 가을에 찾아오는 태풍의 강도는 더욱 세다. 가을 태풍의 위력은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959년 이후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 시간당 가장 많은 비를 뿌린 태풍 10개 중 7개가 가을 태풍이었다. 최대 순간풍속이 가장 높은, 즉 가장 강력한 태풍 상위 10개 중 5개도 가을에 발생했다.
역대 가장 순간풍속이 높았던 태풍은 2003년 9월 12일 발생한 '매미'로, 매미의 순간풍속은 초속 60m에 달했다. 초속 60m는 건물을 붕괴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다.
더 우려되는 점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해 한국으로 찾아오는 태풍 자체가 점차 강해진다는 것이다.
201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린 웨이 메이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교수 논문에 따르면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해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을 가로지르는 태풍 풍속은 1977년 이후 최대 15% 빨라졌다.
풍속으로 측정하는 태풍의 강도가 15% 상승할 경우 강한 바람과 해일, 홍수, 강우 등이 동반된 파괴력은 최대 50%까지 세진다.
지난해 말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악셀 팀머만 기후물리연구단장 연구팀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현 추세로 이어진다면 2100년에 초속 50m의 강한 태풍 발생 빈도가 지금보다 1.5배 더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새봄 기자]
꿀벌 폐사의 비밀 알고 보니… (0) | 2023.01.22 |
---|---|
6월 열대야에 강풍..'뜨거운 바다' 탓 (0) | 2022.06.28 |
압력솥 더위 원인은?..짧은 장마 후 '키 큰 고기압' 한반도 감싸 (0) | 2021.07.21 |
한국,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0) | 2021.06.12 |
북극 찬공기 가둔 제트기류 둑 터지자 영하 39도의 한파가 미국을 때렸다 (0) | 2021.02.18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