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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정포, 핵·탄도미사일과 北 3대 위협으로 꼽혀 / 170mm 자주포·240mm 방사포 수도권 직접 타격 가능 / 남북미 관계 교착 속 남북 재래식 군비통제 방안 거론 / '선 핵타결-후 재래식 군비통제' 방식이 일반적 / 후방배치 시 군사적 위협 감소 효과 / 北 '상호주의' 제시하면 군사적 균형 위태 우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북미, 남북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북한 장사정포의 후방배치를 포함한 남북간 재래식 군비통제 방안이 거론된다.
일반적으로는 핵무기를 먼저 감축 또는 폐기하고 재래식 전력을 축소하는 ‘선(先) 핵타결-후(後) 재래식 군비통제’ 방식이 사용된다. 하지만 북미 협상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감안, 재래식 전력 감축을 통해 비핵화를 촉진하자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군사분계선(MDL)과 가까운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군의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과 “우리 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행위”라는 비판이 맞서고 있다.
◆실현되면 군사적 긴장완화 촉진 효과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는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서 체결을 전후로 군 안팎에서 남북 군사적 신뢰구축 방안의 일부로 거론됐으나 군사합의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부형욱 연구위원은 지난 16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KIDA 주최 안보학술세미나 발표에서 북한은 수도권과 인접한 서부전선 일대 장사정포를 40㎞ 후방으로 재배치하고, 남북이 야포 등 공격무기를 감축하는 내용의 군비축소 방안을 제안했다. 부 연구위원은 “지난해 9·19 남북 군사합의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견인하려는 실험이 추진됐으나 현재는 정체된 상태”라며 “북핵 협상 교착국면을 풀기 위해서라도 군비통제가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MDL 북쪽에 집중배치된 북한군 포병 중에서 장사정포는 핵·탄도미사일과 더불어 북한의 3대 위협으로 꼽힌다. 평소에는 갱도 진지에 숨어있다가 발사 때 갱도 밖으로 나와 사격을 실시하고 갱도 진지로 돌아간다. 이 과정은 10여분 안팎의 시간이 소요된다.
장사정포 중에서 170㎜ 자주포(사거리 54㎞)와 240㎜ 방사포(사거리 60㎞)는 수도권을 직접 타격할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일각에서는 사거리를 늘리느라 포탄의 위력이 약화됐다고 주장하지만, 포탄이 한 발이라도 서울에 떨어지면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힌 시민들에 의한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시가지 곳곳에 설치된 가스관이나 주유소 등이 북한 장사정포 공격으로 폭발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통신망이 끊어지면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어떤 형태로든 혼란이 불가피하다. 북한 장사정포를 비대칭무기로 분류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한국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의 혼란은 한국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우리 군과 정부의 전쟁수행 능력 마비로 이어진다. 북한이 과거 남북 관계가 악화됐을 때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며 우리측을 위협한 것도 장사정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하면 북한 장사정포 후방배치는 MDL 일대에 집중된 군사력 분산으로 이어지면서 대남 군사적 위협 감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는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촉진해 남북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북한 장사정포의 위력이 당초 예상만큼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한미 연합군은 북한 장사정포 위협에 대응하는 대화력전 체계를 오래 전부터 구축해왔다. 북한 장사정포가 사격을 하면, 아서(ARTHUR)-K 대포병레이더가 원점을 추적해 포병대에 제공한다. 북한 장사정포가 MDL 인근에 배치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미 연합군의 대화력전으로 수도권에 대한 위협을 줄일 수 있다. 이에 대해 북한 장사정포의 선제 공격 시도를 한미 연합군이 100% 차단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측면에서 위협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온다.
◆‘상호주의’ 적용 시 軍 타격…실효성 논란도
문제는 북한이 장사정포 후방배치와 관련해 ‘상호주의’ 원칙을 제시할 경우다. 북한은 MDL 일대에 배치한 장사정포를 철수하는 대신 우리 군 포병전력로 후방으로 이동시킬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서부전선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 평양은 비무장지대(DMZ)에서 180㎞ 떨어져 있지만, 수도권은 60㎞ 안팎에 불과하다. MDL과의 거리가 가까워 수도권은 북한군의 기습 공격에 취약하다. 우리 군이 DMZ 이남에 K-9 자주포와 KH-179 견인포(사거리 30~40㎞), 천무 다연장로켓(사거리 80㎞) 수백 문을 집중배치한 것도 수도권 방어능력을 높여 북한군의 선제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이같은 상황에서 장사정포를 40㎞ 후방으로 옮기면, 북한군은 평양 이남 100여㎞ 지역에 재배치해 평양 방어태세를 정비할 수 있지만, 우리 군은 서울까지 포병전력을 철수시켜야 한다. MDL과 수도권이 서로 인접해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방어 능력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서부전선에서의 남북 군사적 균형이 깨질 위험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도권의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수백 문의 자주포와 견인포를 옮길 부지와 훈련장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군 소식통은 “현재 상황에서 포벙전력을 후방으로 옮기면, K-9 자주포는 사실상 ‘무기한 주차’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지금도 군부대나 훈련장을 이전하라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포병전력 재배치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좋은 생각이지만 접근 자체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같은 점을 의식했다는 평가다.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양측의 포병전력을 후방으로 옮겨도 실효성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북한은 평양에서 수도권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300㎜ 방사포를 개발해 실전배치하고 있다. MDL 일대의 장사정포를 후방으로 옮겨도 수도권에 대한 위협은 사라지지 않는다. 북한으로서는 장사정포 후방배치를 통해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거두면서 300㎜ 방사포를 앞세워 군사적 위협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한미 연합군도 육군전술지대지미사일(ATACMS) 등을 보유하고 있다. 장사정포 후방배치가 이뤄져도 양측이 서로의 전략적 목표물을 타격할 능력은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300㎜ 방사포나 ATACMS도 후방배치 대상에 포함되면 한반도에서의 군비축소가 본격화되면서 평화체제 구축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전력이 후방배치 대상에서 제외되면 재래식 군비통제의 취지가 퇴색할 우려가 있다.
북한 장사정포가 후방으로 철수한다면, 남북 관계 개선에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남북 군사력 지수와 수도권 방어 전략 등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고, 남북 군 당국간 신뢰도 부족한 상태다. 지난해 9.19 군사합의서를 남북이 채택하면서 장사정포 후방배치 문제가 제외된 것도 이같은 요소들을 고려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남북 군사공동위원회가 개최돼도 장사정포 후방배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군 소식통은 “북한이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을 정도로 남북간 신뢰가 형성됐을 때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장사정포 후방배치는 단기간 내 실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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