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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도발 후 즉흥적 무력 증강..그 뒤에 숨은 보수정권의 안보 무능

大韓民國 國土防衛

by 석천선생 2018. 12. 2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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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진의 군 이야기]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입력 2018.12.25. 06:00  

[경향신문]

경기 양평 비승사격장 일대에서 훈련 중인 육군 항공작전사령부 소속 코브라(AH-1S) 공격헬기가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같은 기종의 헬기 6대가 백령도에 배치됐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군 당국이 9·19 남북 군사합의 이후 이와 관련한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적극 부인하자니 ‘긁어 부스럼’이 되면서 오히려 가짜뉴스를 키워줄까 우려스럽고, 놔두자니 유언비어로 확산될 우려가 있어서다.

최근에는 전진구 해병대 사령관(중장)의 ‘9·19 남북 군사합의서 불복’이라는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전 사령관이 “국가공무원법상 상관의 불법 부당한 지시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정당 행위로 이번 9·19 남북 군사합의서는 3가지 이유로 따를 수 없다”고 선언했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사실무근의 가짜뉴스라는 입장이다.

앞서 국방부는 ‘해병대가 동·서해 북방한계선 및 한강 하구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에 반대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악의적 보도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9·19 군사합의와 별개로 서북도서 등에 대한 군의 군사 전략 및 전술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거 보수정권이 ‘안보 무능’을 가리기 위해 실시한 즉흥적인 ‘군사 아마추어리즘’ 무력 증강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서북도서에서의 끝없는 군비경쟁을 통해 무모한 소모전의 악순환이 빚어졌고, 역설적으로 보수정권의 안보 무능이 가려져왔다고 비판해왔다.

■ ‘계륵’이 된 코브라 헬기

북 공기부양정 침투에 대비해 백령도에 배치한 코브라 헬기 실제 서해5도의 작전에선 실효성 의심된다는 비판 제기

군은 2010년 11월23일 북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육군 항공작전사령부(항작사) 예하 111항공전대 AH-1S 코브라 헬기 6대를 백령도에 배치했다. 북한 공기부양정 침투 등 국지도발에 대비한다는 명목이었다. 북한의 고암포 기지에서 출발한 공방급 공기부양정이 1시간 내에 백령도에 다다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 코브라 헬기 전대가 백령도에 배치됐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코브라 헬기 6대를 백령도에 배치하기 위해 국민세금 500억원을 들여 격납고를 건설했다.

섬에서 산을 깎고, 격납고 안에 육지의 헬기 격납고에 없는 시설들까지 넣다보니 건설 예산이 육지 시설보다 훨씬 많이 투입됐다.

이 코브라 헬기 전대는 백령도 배치 때부터 ‘유사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코브라 헬기가 북한군 공기부양정의 기습 침투 대비용이라고는 하지만 북한군 해안포가 집중 포격을 할 경우 과연 뜰 수나 있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코브라 헬기는 유도무기가 없어 명중률이 떨어지고 야간이나 악천후에 취약하다. 실제 서해5도 작전에선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비판이 당시 백령도를 찾은 예비역 육군 대장에게서도 나왔다. 육군의 아파치 공격헬기 역시 유사시 북한 공기부양정 차단을 위해 서해5도에 긴급 전개한다는 점도 코브라 헬기 배치와 연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백령도에 배치된 코브라 헬기에 대한 문제점은 과거 국회 국방위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먼저 서북도서에 배치된 AH-1S 코브라 헬기는 전시에는 항작사로 복귀할 전력이다. 이 코브라 헬기를 운용하는 데 가장 큰 애로사항은 해상 공중이동이 어려워 독도함에 싣고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육상용인 코브라 헬기는 부분적인 해상작전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엔진이 하나인 단발 헬기로 규정상 육지에서 수㎞ 떨어진 해상에서의 비행이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백령도의 코브라 헬기는 정비 등을 위해서도 수시로 육지로 옮겨야 하는데 독도함에 바로 싣고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6시간이 소요된다.

코브라 헬기는 백령도에서 로켓포 발사 훈련을 할 때도 지상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상례다. 가까운 바다라도 나갈 경우 기체의 염분 세척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번거로운 작업을 피하기 위해서다. 항작사는 부대 운용의 어려움이 많아 해병대에 백령도의 코브라 헬기 전대를 이양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해병대가 거부하면서 백령도 코브라 헬기는 사실상 ‘계륵’이 됐다.

■ 무용지물 된 정찰·탐지자산

대북 감시능력 강화 명목으로 도입된 무인 전술비행선과 음향표적탐지장비 ‘할로’도 실패로 끝난 땜질처방 전력

보수정부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대북 감시능력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240억원을 들여 무인 전술비행선 2대를 도입했다. 열기구 형태의 전술비행선은 광학카메라와 레이더 등을 갖추고 지상과 로프로 연결된 10㎞ 상공에서 북한 지역을 감시하는 정찰자산이다.

그러나 1대는 2013년 12월 업체 직원의 실수로 일부 파손됐고, 나머지 1대도 수락검사(성능검사) 도중 백령도 140m 상공에서 기술적 문제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게다가 비행체에서 수집된 정보가 지상으로 원활히 전송되지 않는 결함도 발생했다.

군 당국은 전술비행선의 도입 목적을 서북도서 북쪽 북한군, 특히 포병의 동향을 24시간 감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마약 단속 등 목적으로 주로 미국 남부 해안지역에서 사용하던 전술비행선을 바람이 강하고 기온차가 큰 서북도서에서 운용하겠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다. 전술비행선은 고정식이나 마찬가지여서 유사시 북한군 미사일 한방이면 파괴되는 약점도 갖고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백령도와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활동 중인 해군 정보함인 ‘신세기함’에 무인정찰기(UAV)를 배치하는 사업도 2016년 말 완료할 예정이었지만 영상 확보용 무인정찰기 3대 중 2대가 추락하는 등 기한을 넘기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결국 허술한 검증과 조급증으로 사업을 추진해 대규모 국고가 투입된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지다 결국 실패로 끝난 셈이다. 보수정부의 안보 무능을 감추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 전력 증강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대당 50억여원에 달하는 음향표적탐지장비 ‘할로(HALO·Hostile Artillery Locating System)’도 실패로 끝난 대표적인 ‘땜질처방’ 전력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당 140억원이 넘는 고가 장비인 신형 대포병 레이더 ‘아서’가 하루 6시간 이상 가동하면 과부하로 고장나거나 해무가 끼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영국 셀렉스사로부터 할로 2대를 긴급 구입해 배치했다. 당시 군 당국은 “할로가 포격 시 발생하는 파열음을 마이크로 수신해 포탄의 탄착점과 도발 원점을 탐지할 수 있다”며 “탐지거리가 30㎞에 달하며 탐지 확률도 90%에 가깝다”고 밝혔다. 날아오는 포탄 소리를 듣고 적 포진지를 역추적해 K-9 자주포 등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신형 장비라는 것이다.

그러나 할로는 파도가 심한 서해5도 지역에서는 파도 소리 등에 간섭을 받아 전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사막지대에서 최대 성능을 발휘하는 할로를 서해5도에 배치한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결국 해병대에서 운용하던 할로는 2013년 말과 2016년 단계적으로 철수해 육군 부대로 옮겨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11월23일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북한의 연평도 포격 관련 현황보고를 받기 위해 지휘통제실로 들어서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훈·포장 못 받은 해병대원들

연평도 포격도발 백서조차 안 만든 당시 군 수뇌부 ‘무능 드러날까봐 그런 것’ 군 안팎에서 수군수군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해병대는 북한군 포격이 시작된 지 13분 만에 K-9 자주포로 대응 사격을 했다. 당시 연평도 K-9 자주포 6문 가운데 1문은 불발탄으로 포신이 파열됐다. 1문은 북한군 로켓포 파편이 자주포의 측면 열린 부분을 통해 튀어 들어가 장비 연결선을 건드리는 바람에 작동불능 상태에 빠졌다. 또 북한군 로켓포탄이 폐장약에 떨어져 K-9 자주포에 불이 붙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연평부대 포7중대는 기민하게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당시 포7중대장 김정수 대위(현재 소령)가 매일 전투배치 훈련을 하면서 1년간 460여회 전투배치 사격절차를 익힌 결과였다. 부대원들은 K-9 자주포 내부와 포상에서 눈을 감고도 사격절차 진행이 가능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군이 10여명 숨지고 30여명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며 “연평도 포격전 이후 북한 병사들이 ‘남조선 군대와 싸우기를 꺼린다’고 말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평도 전투를 사실상 승리로 이끈 생존 해병대원들에게 훈·포장 수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군에 더 큰 타격을 준 해병부대의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부대 표창만 주어졌다. 표창을 받은 사유도 ‘전공’이 아니라 ‘모범적인 부대생활’로 표기됐다. 이를 놓고 북한군 도발에 대해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했던 당시 군 수뇌부가 자칫 일선 해병부대의 단호한 전투태세와 비교될까 우려한 때문이었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보수정부는 ‘연평도 포격 도발 백서’조차 만들지 않았다. 이 역시 군 수뇌부의 무기력한 대응과 무능이 드러날까 봐서였다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었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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