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택 입력 2018.09.20. 16:21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서울)=뉴시스】 오종택 기자 =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놓고 국내외적으로 70년간 첨예하게 대립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전쟁 없는 한반도의 서막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9월 평양공동선언의 부속으로 채택한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군사분야 합의서’는 종전선언에 가까운 합의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정상회담 둘째 날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남북 국방수장인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은 군사적 긴장 억제와 상호 전쟁위협 해소를 위한 실질적 조치와 이행계획이 담긴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6조 22개항의 군사합의서는 마지막 6조 2개항을 제외하면 한반도에서의 실질적인 군사 조치에 대한 합의를 담고 있다.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군사분계선(MDL)과 북방한계선(NLL) 일대는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력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정전협정 이후로도 무력 충돌 가능성이 상존해 있었다. 지난 70년간 숱한 무력 충돌이 발생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언제라도 전쟁의 불씨가 번질 수 있는 화약고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한반도의 지상·해상·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 행위 일체를 전면 중지해 향후 물리적 충돌 요인을 원천 차단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종전선언을 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국방부는 "남북 간 첨예한 대결 상태에 따른 군사적 긴장 고조 상황을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안정적 상황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면서 "과거와 같은 군사적 긴장 및 위협 상황이 반복적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남북 군사 당국의 진정성있는 노력을 확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도 "남북 간 안정적 안보 환경을 계기로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등 한반도 비핵화 와 평화체제 구축 추진 여건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군 당국은 지난 판문점선언 이후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우선 조치로 MDL 일대 확성기를 철거하고, 서해·동해지구 군통신선을 완전 복구하는 등 초보적인 단계의 군축을 진행했다.
이번 군사분야합의를 통해서는 병력과 장비, 무기, 시설 등 실질적인 군 전력의 재배치와 통제를 의미하는 다음 단계의 군축에 돌입하게 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남북은 MDL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5㎞씩 10㎞ 폭의 완충지대를 형성해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을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정전협정 이후 총 96회의 상호 포격전이 발생했을 정도로 국지적 충돌 위험이 컸다.
해상에서는 동·서해 NLL 일대 서해 덕적도~초도 135㎞, 동해 속초~통천 80㎞ 구역을 완충수역으로 지정해 포 사격과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북한 해안포 포구 덮개와 남북 함정의 함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도 합의했다.
서해상에서는 최근 20년간 두 차례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도발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로 54명의 전사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오는 11월 1일부터는 기존 MDL 상공의 비행금지구역(8㎞)을 항공기 기종별로 차등화해 헬기 등 회전익은 10㎞, 전투기와 정찰기 등 고정익은 서부 20㎞, 동부 40㎞로 확대해 공중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로 했다. 주한미군의 항공전력도 비행금지구역 진입이 제한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앞으로 동·서해 해역에서 모든 포성·총성이 사라져 분쟁의 바다가 평화의 바다로 바뀌게 됐다"며 "접경지역에서의 근접비행으로 인한 상호 대응소요가 감소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판문점 선언에 담긴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화를 위한 실천적 조치들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당장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 군 당국은 12월31일까지 DMZ 내에서 상호 1㎞ 이내에 근접 설치된 GP(감시초소) 11개를 철수하기로 했다. 서부지역 5개, 중부지역 3개, 동부지역 3개 등이다. 이 구역 GP에 있던 기관총과 무반동총, 박격포 등 화기와 장비를 우선 철수하고 이어 병력을 이동시키고, 시설물을 해체한 뒤 상호 검증하는 절차를 밟는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도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대로 남북이 35명씩의 군병력을 비무장 상태로 근무토록하고, 판문점을 방문하는 남·북 및 외국인 관광객, 참관인원들의 자유 왕래도 보장하기로 했다.
여기에 DMZ 6·25전쟁 전사자 공동유해발굴을 위해 당시 격전지였던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를 우선 발굴지역으로 선정했다. 이곳에는 국군 전사자 200여 구를 비롯해 미군·프랑스군 등 300여 구가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은 다음달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지뢰와 폭발물을 제거하고, 내년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공동유해발굴 작업을 시범적으로 진행한다.
군사분야 합의서의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상시적 소통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기 위해 '군사공동위원회' 구성을 협의하기로 했다. 군사공동위는 지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처음 명시됐지만 그 동안 실제 구성 논의는 없었다.
다만, 북한이 군사적 도발 위협에 대한 선제적 이행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급진적으로 군사적 긴장의 끈을 놓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의 적대행위 중지구역 설정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즉각적인 대처 능력을 떨어뜨리거나, 대북 감시 및 견제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방부 차관 출신인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은 "군사분야합의서는 실질적으로 군이 군사대비태세를 스스로 해체함으로써 북한에 절대우위의 군사력을 보장해준 굴욕적 합의"라며 "육해공 모든 공간에서의 적대행위 중지는 우리군의 감시능력을 무력화하고 즉각적 대응력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완충구역은) 누구에게 유불리 따지자고 합의한 것이 아닌, 그 지역에서 오해에 의한 우발 충돌을 방지하자는 것이 대전제"라며 "양쪽이 다 수용 가능한 공간으로 과도한 제한을 받지 않는 곳에 정해 남북이 제한을 받지 않는 곳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이 의도를 갖고 우리측에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군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적용하면서 군사대비태세는 변함없이 유지하겠다"고 강조했다.
ohjt@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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