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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에서 직선거리 88.8km

독도,위안부,강제징용,경제도발

by 석천선생 2017. 1. 14.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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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는 서울시청에서 천안시청까지의 거리(84Km) 보다 멀다.

 

 

 

독도는 동도와 서도로 나눠지며 주변에 여러개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파트 2 : 독도는 우리땅 노래 검증

 

(1) 러일전쟁 직후에 임자 없는 섬이라 억지로 우기면 정말 곤란해 신라장군 이사부 지하에서 웃는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울릉을 정벌했던 기록 (삼국사기 신라본기 지증마립간편)

=> 13년 여름 6월 우산국(于山國)이 항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하였다. 우산국은 명주(溟州) 정동쪽의 해도(海島)인데 혹은 울릉도라고도 하며, 땅은 사방 100리로 천험(天險)을 믿고 항복하지 않았었다.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何瑟羅州)의 군주가 되자, 우산국 사람들은 미련하고 사나워서 위엄만으로는 항복시키기 어려우니 꾀로서 굴복시켜야 할 것이다 하고, 나무로 깎아 사자의 우상을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이르러 속여 말하기를, "너희가 만약 항복하지 않는다면 곧 이 맹수를 놓아 밟아 죽이도록 할 것이다." 하나, 나라 사람들이 매우 두려워 하고 바로 항복하였다.

 

검증결과 :

오직 우산국에 대해서 나오며 땅이 사방 100리로 현재의 울릉도를 나타낸다. 독도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억지로 우기는건 과연 누구인가??

 

 

(2) 세종실록지리지 오십페이지 셋째줄

오십페이지 셋째줄은 좀 그렇다고 해도 세종실록 지리지에 나오는 내용은 이것이다.

于山武陵二島 在縣正東海中
우산무릉두섬은 현의 정동 바다가운데에 있다.

二島相去不遠 風日淸明 則可望見
두섬은 서로 멀지 않아, 청명한 날씨에는 바라 볼수 있다.

 

두섬은 멀지 않다. 날씨가 좋으면 바라볼수 있음.

여기서 바라 본다는것이 섬이 보인다는 것인지 섬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는 것인지 불분명함.

날씨가 좋으면 두섬에 있는 사람이 서로 바라 볼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생각됨.

두섬이 멀지 않다 라고 한점은 이 섬이 독도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럼 도대체 이섬은 어디인가?

 

 

 

그것는 바로 죽도가 아닐까?

 

여기서 죽도가 생긴 모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죽도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져 있는 모습이다.

죽도는 독도의 증거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울릉도까지의 거리와 모양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죽도는 독도의 증거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울릉도까지의 거리와 모양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증결과 :

세종실록지리지가 두섬이 울릉도와 독도인지 울릉도와 죽도인지 분명하지 않다.

 

 

PART 3 고지도편

(1) 대동여지도

 

울릉도와 제주도 표시

 

두가지 가능성 :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독도를 몰랐을 가능성과 알았는데 빼먹었을 가능성

알아서 판단하기 바람.

 

검증 결과 : 독도 미표시.

 

 

일부 언론에서 대동여지도 필사본에 독도가 표시 되었다고 보도 된적이 있다.

독도 그려진 대동여지도 필사본 국내 첫 발견

http://news.donga.com/3/all/20110513/37187574/1

 

 

 

 

우산으로 표시된 섬이 독도로 봐야 할지 죽도로 봐야 할지 알아서 판단 바람.

 

 

 

(2) 해방이후 우리나라지도 (1947년 사회부도)

 

울릉도와 제주도 표시됨.

 

 

검증결과 : 독도 미표시

 

 

(3) 삼국접양지도( 일본 제작)

삼국접양지도는 한국이 독도를 우리땅으로 나타내는 일본측 자료라고 주장하는 지도이다.

 

 

 

 

아래 지도의 빨간색 동그라마 표시 부분을 한국에서 독도의 증거로 말한다.

한국에서는 조선본토의 오른쪽에 있는 섬이 울릉도 빨간색 부분이 독도의 동도와 서도를 나타낸다고 한다.

 

그런데 빨간색 부분이 울릉도와 죽도의 표시인지 독도의 동도 서도 인지 논란이 있다.

암튼 이 지도에서 동그라마 부분은 조선의 것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다시 한번 울릉도와 죽도 그리고 독도의 동서도를 보면 아래와 같다.



 

 

파트 4 : 공식영토 선언

 

(1) 1900년 대한제국 칙령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개명하며 그 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함)

 

제2조에 해당 위치 표시됨

제2조: 군청(郡廳) 위치(位置) 태하동(台霞洞)으로 정(定)고 구역(區域)은 울릉전도(鬱陵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管轄) 사(事).

= > 울릉전도 , 죽도, 석도를 관할 함.

 

울릉도외의 죽도와 석도는 독도가 포함된것인가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석도가 독도라고 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석도가 독도라면 도대체 독도란 이름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 관음도라고 함.

그럼 여기서 관음도가 어디인지 확인해보자.

 

 

검증결과 : 석도와 독도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없음.

 

(2) 시네마현 고시 (1905년 1월 28일)

[시네마현(島根縣)고시40호]

"북위37도9분30초, 동경131도 55분, 오키도로부터 서북 85해리(157KM)에 있는 무인도는 타국이 이를 점령하고 있다고 인정되는 자취가 없기 때문에, 일본 영토에 편입하여 ‘타케시마’로 명명하고 시네마현 오키도사의 소관으로 한다

=> 1905년에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 1906년 울릉군수 심홍택은 이사실을 알게되어 조정에 보고하나 이미 을사 늑약 상태여서 외교권이 없는 상태로 대응 안됨.

따라서 조선은 독도의 일본 편입을 인정 했다고 하기보다는 대응할수 없는 상태였음.

심홍택의 보고

 

본군 소속 독도가 본부 바깥마다 100여리 밖에 있는데 본월(4월) 초, 4일 진시(辰時: 오전 7~9시) 가량에 윤선(서양 기선)1 척이 군내 도동포(道洞浦)에 내박(來泊)하여 일본관인 일행이 관사에 이르러 스스로 말하길 '독도가 지금 일본 영토가 된 까닭으로 시찰차 왔다.' 하온 바 이에 보고하오니, 살펴 헤아리시기를 엎드려 바라온다." 하였습니다. 이에 보고하오니 살펴 헤아리시기를 비옵니다.

 

 

파트 5 : 안용복 사건

 

안용복은 일본에 가서 어떤 기록을 남겼는가?

 

먼저 일본에 남겨진 안용복의 주장.

자산도는 송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죽도와 송도는 강원도에 속한다.

죽도와 조선은 30리 죽도와 송도는 50리이다.

 







=> 안용복이 말한 송도는 오늘날의 울릉도 옆 죽도는 될수가 없다.

독도로 봐야 한다.

 

 

 

안용복이 솥단지를 걷어차며 일본애들을 몰아 냈다고 하는데 혹시 솥이 저 아래 사진 아닐까? ㅋㅋㅋㅋㅋㅋㅋ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2364333

 

 

 2005년3월 15일자 주간동아에 실린 사진. 1953년 10월 15일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인들이 박아놓은 시마네현 오키군 고카무라 다케시마라고 쓰인 나무말뚝을 뽑아내는 모습이다.  사진_김한용 사진사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에 영토 표목을 자꾸 세웠다.  일본이 박은 말뚝을 뽑아내기 전 태극기를 걸고 찍은 사진.

 

 

 

 독도라고 쓰인 우리 영토표석을 설치한 사진.

 

 

 

홍종인 당시 한국산악회 회장이 독도 표석을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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