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위해 세금 더 낼 의향" 53% "조세·복지 동시에 수정해야" 51%
우리나라 국민 절반 이상은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면 세금을 현재보다 더 낼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반발을 우려해 '증세 없는 복지' 정책을 좀처럼 내려놓지 못하는 현 정부의 인식과는 확연히 동떨어진 결과다. 복지 혜택은 더 많이 받기를 원하면서 세금은 무조건 덜 내고 싶어한다는 이전의 조사들과도 사뭇 달라졌다.
또 정치권의 '증세가 먼저냐, 복지 구조조정이 먼저냐'의 이분법적인 선후 논쟁과 달리 국민 2명 중 1명은 세금과 복지 문제를 동시에 수술대에 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람직한 복지로는 보편적 복지나 선별적 복지보다 '모두에게 주되 저소득층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비례적 복지에 대한 선호도가 월등히 높았다.
22일 한국일보가 한국재정학회와 공동으로 여론조사기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금ㆍ복지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 결과, 551명(53.4%)이 "향후 복지 확대를 위해 추가적인 세금 부담 의향이 있다"라고 답했다. 468명(45.4%)은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없다"고 했고, 13명(1.2%)은 "모른다"고 답했다. '증세 없는 복지'를 원하는 국민보다 '증세 있는 복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국민들이 미세하지만 더 많아진 것이다.
특히 추가 세금 부담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은 각 부문별로 남성(63.4%), 50대(60%)와 30대(54.7%), 전문직 및 사무직(61.6%), 월평균소득 300만~500만원 미만(60%)과 500만원 이상(54.6%) 등이 평균(53.4%)을 웃돌았다. 이들이 현재 중산층이라 불리는 주력 납세자이고, 앞으로 세금을 더 낼 실질적인 여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 있는 결과로 보인다.
한국일보와 한국재정학회가 공동으로 '세금·복지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선 70.8%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2%가 "지켜지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반면 추가 세금 부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은 가계살림을 맡는 주부(61.9%)와 교육 주거비 등 생계비용이 상대적으로 많은 40대(47.3%)와 노후로 접어든 60대 이상(48.8%)에서 높았다. 세금을 추가로 낼 의향이 없는 이유로는 '세금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을 것 같아서'(38.4%) '결과적으로 부자 감세, 서민 증세로 느껴져서'(27.6%) '가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25.0%) 등이 꼽혔다. 현재 복지 수준이 적당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이들은 6.6%에 불과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세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바람직한 복지 정책 방향으로는 10명 중 6명 이상(62.7%)이 비례적 복지를 꼽았다. 저소득층에게만 주는 선택적 복지(24.4%)나 모두에게 주는 보편적 복지(11.9%)가 바람직하다는 응답을 합한 것보다도 훨씬 높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해선 70.8%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지켜지고 있다"는 답은 20.2%에 불과했다. 애초 불가능한 정책(49.3%)이라는 게 상당수 국민들의 냉정한 판단이다.
향후 적절한 대응 방식으로는 '세금 복지 정책 둘 다 수정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응답(50.7%)이 가장 많았다. 선(先)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 우선은 각각 19.3%, 11%에 그쳤다. 복지를 늘리기 위한 증세의 방향으로는 부유세 도입 등 부자 증세(47.8%)가, 증세 시 세목 우선순위(복수응답)는 법인세(76.2%)와 상속ㆍ증여세 등 자산과세(71.7%)가 가장 많이 거론됐다. 현재 복지 중에선 무상급식(40.7%)이 구조조정 1순위로 꼽혔다.
이번 조사는 11일 임의 걸기(RDD) 방식의 휴대폰과 집전화 동시 면접조사(CATI)로 실시됐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