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Ⅰ. 서론
1. 다윈과 <종의 기원>, 그 역사적 배경
어릴 때부터 동식물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를 한 후, 교수 헨슬로의 권고를 해군측량선에 승선하여 여러 섬을 탐사하고 널리 동식물의 상이나 지질 등을 조사하여 진화론을 제창하는데 기초가 되는 자료를 모으게 되었다. 이후 1859년에 다윈이 리네 학회를 통해 <종의 기원>을 세상에 내놓았는데 초판으로 찍은 1250부가 하루 만에 다 팔려 나가는 선풍을 일으켰다. 일설에는 어떤 기독교인이 이 책이 담고 있는 신에 대한 ‘불경’ 때문에 전부 매수해 버린 탓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후 3년간 책의 내용이 개정, 보완되면서 6판이나 찍혀 나온 걸 보면 <종의 기원>이 당시의 식자층이나 교양인들에게 ‘중대한 사태’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다윈의 학설은 스펜서의 진화론 학설과 헉슬리의 사상운동이 결부되어 19세기 말에 보급되었는데, 당시 사상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된 이유는 진보의 관념에 대응하고 특히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기에서 그 자유경쟁의 이념과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종의 기원>은 논문을 500페이지 정도 줄인 것인데 여기서도 요약을 한다면 모든 생물은 동일한 조상에서 기원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새로운 종이 형성되는 것은 개체 변이와 이에 대한 자연 선택에 따른 다는 것, 마지막으로 진화는 서서히 오랜 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에 대한 당시의 반론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그 시대적 배경은 유전학적 지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개체변이의 의미와 메커니즘을 정확히 설명해 내지 못한 데서 오는 논박들이 많았다. 또 한편에서는 진화는 자연선택에 의한 점진적인 형태로서가 아니라 돌연변이에 의해 급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주장이 대두하기도 했다. 진화는 어떤 고차원의 섭리에 의해 미리 결정된 방향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지 생물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반발도 나왔다. 이런 반론들은 이후의 집단 유전학이나 고생물학자들의 화석 연구 등에 의해 곧 제압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진화의 정확한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는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모든 생물은 진화의 산물이며 지금도 진화는 진행 중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 진화론의 대전제이다.
신의 천지창조설을 부정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독교인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그 내용은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원숭이를 조상으로 둘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와 과학의 상호 인정이 되면서 그런 논란은 좀 잦아들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어떠한 내용이며,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하는지, 또 그 속에 담겨는 전제조건, 증거에 대해서 아래에서 기술하고 또 다윈이 부딪힌 <종의 기원>에 대한 반론, 의의 및 영향과 본인이 느낀 점에 대해서 쓰겠다.
Ⅱ. 본론
1. <종의 기원>의 구성
(1) <종의 기원>의 줄거리
다윈의 <종의 기원>은 총 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내용을 짤막하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1장은 사육에서 생기는 변이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인간에 의한 품종 개량성에 관한 내용으로, 인간은 가축이나 농작물의 품종을 개량할 수 있으며, 인간에게 유리한 형질 변이가 일어난 가축이나 농작물만을 골라 키우면 그 형질이 후손에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거듭되면 자연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에게 유익한 품종이 나타난다. 즉, 인간의 인위적 선택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2장에서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이에 대한 것이다. 생각건대, 이 부분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본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인위적 선택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신에 의한 자연의 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그 수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인위적 선택에 대한 논리는 충격적이었으며 파격적이었다. 2장에서의 주된 주장은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개체의 변이는 항상 일어나며 그 개체변이는 변종으로 발전하게 되고 또 그 변종은 새로운 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생존경쟁을 다루고 있다. 모든 생명은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고 했는데 그는 기하급수적인 증가율이라고 정의했다. 이런 종의 기하급수적인 증가율에 자원이 따라갈리 만무하다고 본 그는 한정된 자원을 놓고 치열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런 생존경쟁에 있어서 모든 동식물은 복잡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같은 종에 속한 개체들과 변종들 사에서 가장 치열하다. 4장에서는 이런 자연선택과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도태와 최적자생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즉, 생존에 유리한 변이는 살아남고 생존에 불리한 변이는 도태되는 것이다. 자연선택이 누적된다면 새로운 종이 출현하게 된다고 다윈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진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국지적 환경에 잘 적응했느냐 못했느냐가 문제가 된다. 5장은 변이(mutant)에 대한 설명이다. 변이는 무작위로 우연에 의한 결과라고 생각해왔으나 다윈은 변이에도 법칙이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자연도태에 의해 지배된 여러 부분의 용불용 증가의 작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윈은 사용하는 부분은 강하고 크게 되며 사용하지 않은 부분은 약하고 작게 되어 이런 변이는 후에 대부분 유전된다고 생각한다. 기후순화에 대한 변이에 대한 것과 상관변이에 대한 것도 다루고 있다. 상관변이는 겉보기에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형질들이 같이 변하는 형상이다. 또 종은 속보다 좁은 범주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변화하기가 쉽고, 어떤 종에서 근친종의 같은 부분보다 극도로 발달한 부분은 변이하기 쉽다. 6장에서는 다윈 스스로가 자신의 학설에 대한 난점을 표하고 있다. 여러 난점 중에서 6장은 두 가지 정도에 대한 해명을 하고 있다. 우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종들이 미세한 점진적 단계의 변이에 의해서 다른 종들로부터 생겼다면 우리는 왜 도처에서 수많은 중간 형태들을 보지 못하는가? 또 어설픈 중간 형태가 어떻게 그 종의 생존에 기여했을까? 그 답은 전자는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새로운 종은 자신의 원종이나 근친종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그들을 없애기 때문에 중간 형태는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며 후자는 날다람쥐에서 볼 수 있듯이 날개와 다리의 중간에 해당하는 형질은 얼마든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다. 7장에서는 자연도태설에 대한 여러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다양한 견해와 반론 들 중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산토끼와 생쥐의 귀나 꼬리의 길이처럼 별로 쓸모없어 보이는 형질이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았을 리 없다는 반론에서는 중요한 부분이 변화하면 다른 사소한 부분도 바뀔 수 있다는 상관변이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 또, 종은 점진적으로 변하지 않았고 급격히 변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발생학은 그것의 강력한 반증이라 하겠다. 새와 박쥐의 날개, 네 발 달린 짐승의 다리는 배(胚)의 단계에서는 구별되지 않는 것으로 보다 반증을 다시 반박할 수 있다. 8장은 본능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능은 많은 개체가 어떤 목적에서 그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할 때를 의미한다. 다윈은 생리구조뿐만 아니라 본능도 유전된다고 보았다. 예를 들자면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행동이 좋은 예이다. 생식 능력을 갖지 못한 일개미가 군집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본능도 그런 개미의 존재가 군집 전체의 이익에 도움이 될 때는 생식 능력을 가진 암개미와 수개미에 의해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다. 꿀벌이 벌집을 짓는 본능 또한 유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9장은 잡종에 대한 고찰이다. 어떤 종들은 쉽게 교잡하면서 불임성인 잡종을 낳고 어떤 종들은 지극히 어렵게 교잡하면서 상당한 출산력을 갖는 잡종을 낳는다. 이런 사실을 통해 종과 종, 종과 변종의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생식가능성과는 관계없이 비교된 종간 잡종과 변종 간 잡종에 대해서는 자손이 양친을 닮는 법칙은 그 양친이 서로 뚜렷이 다르건 조금만 다르건 간에 같은 변종의 개체끼리의 결합, 혹은 다른 변종이나 다른 종의 개체끼리의 결합과는 상관없이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 10장은 지질학적 기록의 미흡성에 대한 지적이다. 무한히 많은 진화의 연쇄를 이루는 화석 유해가 잘 발견되지 않은 것은 지각의 변동이나 침식 등에 의해 화석 또한 손상됐기 때문이다. 다윈은 이런 지층을 변변찮은 자료가 단편적으로 박혀 있는 대단히 부실한 박물관이라 말하고 있다. 11장은 생물의 지질학적 천이의 관계이다. 어떤 지층에서는 종의 변이 과정을 암시하는 중간 종이 발견되기도 한다. 그 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에 해당하는 시조새이다. 또 비둘기의 예를 통해서 두개의 겹쳐진 지층 속의 화석끼리는 두 개의 서로 떨어진 지층 속의 화석끼리보다 훨씬 관계가 깊다는 사실은 중간 지층에서 나오는 생물의 유해가 어느 정도 중간적인 형질을 갖는다고 하는 점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인다. 12장 지리적 분포에서 그는 지구 표면의 생물분포를 고찰할 때 우리를 무엇보다 놀라게 하는 사실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야기 처음에 하고 있는데, 우선 여러 지역에 사는 생물의 유사성이나 차이를 모두 기후나 그 밖의 물리적 조건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종류의 장벽, 즉 자유로운 이주에 대한 장애물이 갖가지 지역에 사는 생물 간의 차이에 밀접하고 중요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같은 대륙, 혹은 바다에서의 생물은, 종 그 자체는 제각기의 지점, 구역에서 다르다 할지라도 유연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동식물의 지리적 분포는 생물종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왜 다른 대륙에서 비슷한 생물이 발견되고 왜 어떤 대륙에서는 이렇다 할 포유동물이 발견되자 않는가? 만약 종들이 독립적으로 창조되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13장도 역시 지리적 분포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양의 섬에 사는 종은 대륙의 같은 면적에 사는 종보다 그 가짓수가 적으며 섬에 사는 종들과 가까운 본토에 사는 종들 사이에서는 유연서이 발견된다. 이 역시 종들은 독립적으로 창조되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14장 생물의 유연 관계 분류학자는 생물들의 유연 관계를 추적한다. 그 관계는 상동 기관, 배, 흔적 기관 등에서 나타난다. 15장 결론에서 그는 종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연한 변이가 생겨서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면 자연은 그 변이를 선택하여 후손에게 전달한다. 변이와 자연선택, 곧 우연과 필연의 누적이 진화를 파노라마를 연출한 원동력이라 하겠다.
(2) <종의 기원>의 전제조건과 세부적 사항
앞서 본 <종의 기원>의 내용에서 다윈은 크게 8개 정도의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가장 먼저 그가 연구한 사육, 재배 중에 일어나는 변이에서는 인간의 생물 이용성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은 생물의 변이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가축과 작물의 많은 품종을 만들어냈다. 다윈이 생물의 진화를 문제시 한 동기는 자연 상태의 생물의 관찰에서부터 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육, 재배 하의 변이가 진화의 문제에서 생물의 종이 변화하는 것, 즉 변이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다윈은 자신의 주된 목적인 생물의 진화 장치를 의논하기 위한 복선을 깔아 놓았다. ‘변이의 원인’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생물을 변이시키는 원인의 하나로 기후 등과 같은 생활 조건의 직접적인 활동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다윈은 논란의 여지를 다소 줄이기 위해 이들 생활조건이 생식기관에 작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변이성에 작용할 뿐임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변이를 도태와도 연관지어 도태가 질서 있고 빠르게 일어난다면, 혹은 효과적으로 일어난다면 변이의 다양한 원인 중에서 가장 큰 힘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즉, 1장의 진화론에서는 ‘인위도태’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의지가 작용함과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손과 머리를 움직여 품종개량을 진행하는데, 자연 상태에서 생물이 진화할 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윈은 이런 인위도태를 2개로 구분지어 의식적 도태와 무의식적 도태로 구별하여 전자는 인간이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수행하는 도태이고, 후자는 의식적인 것이 애매모호하여, 계획성이 없다고 하고 1장에서의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
다윈의 최대 목적은 자연 상태에 있는 생물의 종이 변화하는 것을 증명하려는 데 있기 때문에 2장에서는 그런 목적성을 두고 설명하고 있다. '변이'라는 것은 생물의 한 종의 개체간에 보이는 차이이다. 거기서 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에 의해 변이의 의미도 달라진다. 그는 종을 정의하기 하면서 일반적인 사회적 배경을 의식한 창조요소에 대한 것 때문에 어려워하고 있다. 또 변종이라는 말 자체도 정의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종과 아종과의 분명한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으며 변종이 선조와 뿌리가 조금 다른 상태로부터 보다 큰 차이가 있는 상태로 이행하는 것은 구조상의 차이가 일정한 방향으로 축적된 경우이고, 그것은 자연도태의 작용에 의한다고 말한다. 즉 현저한 특징을 가진 변종은 확실히 미발달한 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3장에서 다윈은 자신의 자연도태설을 주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을 내세우는 데 그것이 바로 이 장의 주제인 ‘생존경쟁’에 관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의 중심은 자연도태설이다. 그것은 주로 4장에서 설명되고 있다. 다윈이 생각하는 자연도태는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제외하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환경이란 다른 생물과 공기, 물 또는 흙 같은 것이다. 즉 생물 주위의 자연인 것이다. 다윈은 생물과 환경의 관계는 생물이 수행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보통 ‘생존경쟁’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 생존을 위한 투쟁의 설명은 자연도태설의 전제이다. 따라서 제 3, 4장은 종의 기원의 중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다윈은 개체에는 변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몇몇 두드러진 변종이 있다고 한 것은 책을 계속 서술하기 위한 기초적 지식에서 필요하다. 생물 신체의 각각의 부분은 다른 부분과 생활조건에 대하여, 또 어떤 생물은 다른 생물에 대하여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다. 이런 뛰어난 적응은 생물계의 어떠한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다윈은 미발달한 종이라고 말한 변종이 동일한 종 가운데의 변종들이 보이는 차이보다 한층 커다란 차이를 가진 종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여 변화해 왔는지, 또 다른 속에 들어 있는 종들은 동일한 속의 종들 간의 차이보다 왜 더욱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것인지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의심할 나위 없이 이들은 모두 생존을 위한 투쟁이 완수한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주 가벼운 정도의 변이든, 또 어떠한 원인에 의하여 생긴 변이든, 한 가지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그 밖의 외적 환경 간에 연결된 복잡한 관계에서 그 변이가 그것이 생긴 개체에게 조금 유익한 경우를 생각해 봤을 때, 변이는 그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생존하여 보존되는 데 유용할 것이고, 또 일반적으로 자손에게 유전될 것이다. 또 그 자손도 생존을 위한 기회에 한층 더 혜택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종에서도 동시에 생긴 많은 개체 중 생존하여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쓸모있는 변이가 보존되어 간다는 이 원칙을 인간의 도태력과 관련짓기 위하여 자연도태라고 다윈은 정의하고 있다. 자연도태는 언제나 작용하고 있는 힘으로서, 인간의 보잘 것 없는 노력에 비하여 한없이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힘이 인간의 힘에 대하여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는 생존경쟁이라는 말을 넓게 비유의 의미로 사용한다. 여기에는 하나의 생물이 다른 생물에 의존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고 개체의 생명이 끊임없이 자손을 잘 생존시키는지 어떤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것을 포함시켜 자신의 학설을 올바르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다윈의 노력이 보여 진다. 생존경쟁은 모든 생물이 높은 비율로 개체 수를 늘리려는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수보다 많은 개체를 낳으면, 언제라도 생존을 위한 투쟁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어떤 개체와 동일한 종의 다른 개체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혹은 다른 종의 개체 간에도 생기고, 혹은 물리적 생활 조건 간에도 생긴다. 또 이런 생존경쟁과 관련하여 생물의 개체 수를 결정하는데 적이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어떤 종의 경우라도 대부분 많은 방해작용이 일생의 어느 시기에, 혹은 일년 중 어떤 계절에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영향을 주고 있다. 보통은 가장 강한 영향을 주는 것은 단 하나의 방해작용이거나 소수의 방해작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모든 방해가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그 생물의 평균 수를 결정할 뿐 아니라 존재 자체까지도 결정한다. 다윈은 제 3장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같은 속에 속해 있는 종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속에 속하는 종과의 생존 경쟁보다 격렬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일반적으로 습성과 체질이 비슷하고 구조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4장의 자연도태를 설명한다.
앞 장에서 다윈은 “생존경쟁은 변이에 대하여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 인간이 손을 대면 대단히 강력하다고 생각되던 도태의 법칙은 자연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일까?” 라고 자문하면서 “이 법칙은 대단히 유효하게 작용 한다”고 쓰고 있다. 다윈은 자연에서 진행되는 이 도태를 ‘자연도태’라고 불렀다. 자연도태는 극히 조금씩 변이로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생물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한다. 그는 자연도태가 진행되기 위해서 그리 많은 변이가 필요하지는 않다고 한다. 인간은 어떤 방향을 향하여 극히 적은 개체적인 변화로 매우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연에서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장시간 동안 이루어짐으로써 훨씬 용이하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생존하고 있는 어떤 생물의 구조나 습관이 극히 조금씩이라도 변화하였을 경우, 그 종은 다른 종에 비해 우월해지고 그 후에 이러한 변화가 계속 반복될 경우 그 우월성은 더욱 증가된다고 전제한다. 생존하고 있는 모든 토착생물이 그 생물군이나 물리적 생활조건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한 조건을 갖춘 지역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낯선 생물이 곳곳에서 토착 생물의 일부를 몰아내고, 또한 그 반대로 토착생물은 그 침입자에 대하여 좀 더 잘 대항할 수 있도록 유리한 변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통해 자연도태가 진행되는 동안 생물의 상호관계가 다윈이 얼마나 중요하게 논문에서 내걸고 있는지 알 수 있으며 그가 생물의 적응을 완전무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은 모든 내부기관, 혹은 극히 작은 각 부분에까지 도태를 진행시킬 수 있으며, 체내의 각 기관에 대하여도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도태한다. 한편 자연은 그 장소에서 성장하고 있는 생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도태를 진행한다. 그리고 선택된 각각의 형질은자연에 의해서 전적으로 훈련되는 것이다. 자연도태는 각 생물의 이익에 부합하여 작용할 뿐, 그 이익에 반대하여 작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연도태는 우리들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형질이나 구조에 대하여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윈은 여러 가지 예를 들면서 자연도태가 생존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자연도태는 현재의 생물에 유익한 것이며, 유전되는 극히 작은 변이의 축적과 보존에 의해서만 작용한다. 그는 지질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도태가 진리라면 새로운 생물의 창조가 연속적으로 이루졌다든가, 혹은 급격한 대변화가 생물의 구조에 나타났다든가 하는 생각은 모두 깨끗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그 시대의 관점을 일축한다. 어떤 종의 자손이 선조보다 다양한 구조나 성질을 가지게 된다면 그 자손은 자연조직에서 그만큼 유리한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또 개체 수도 증가시킬 수 있다. 여기서부터 다윈 생물의 최대량이 유지되는 것은 그 장소에 사는 생물들의 구조가 대규모로 분화하는 데에 달려 있다고 보고 이 법칙의 올바름은 자연생태에서 확인된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미래의 새로운 속으로 구별될 정도로 구조상의 다양화가 진행된다면 그것은 생물에 있어서 극히 유익할 것이라 보
고 있다. 예로 어떤 지방의 ‘자연의 경제’ 전체에서 다양화가 진행되어 그곳에 사는 동물이나 식물의 생활양식이 폭넓고 완전하게 구별되어 가면 갈수록 많은 개체가 그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들면서 구조가 조금 밖에 변화하지 않는 동물군은 다양한 구조를 가진 동물군에 대항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분화의 법칙을 이야기한다. 그의 중점적 논의가 들어있는 4장을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오랜 세월 동안에 생활조건이 변화하면서 생물의 구조도 각 부분에서 변화한다. 또 각각의 생물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 때문에 발육하는 단계에서 또는 1년 중 어떤 계절에 혹은 어떤 해에 생존경쟁이 격심해지는 것이다. 이런 정확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전제를 내세우면서 그것의 결과로 구조나 체질이나 습성이 끊임없이 다양화될 것이며, 이는 생물에 있어서 유익하다고 하고 있다. 또 이제는 생물 상호간의 관계, 또 생물의 생활조건 간의 관계가 무한히 다양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생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변이가 일어났다는 논리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도 이간에게 유용하도록 변이를 많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생물이라도 유익한 변이가 일어났다면 그 변화된 개체는 생존 경쟁에서 삶의 이익에 가장 좋은 기회를 부여받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강력한 유전법칙에 의해 변이가 일어난 개체는 같은 형질을 자손에게 계승할 것이다. 자연도태는 형질이 그 세대에서 유전된다는 법칙에 의거하여 성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알이나, 종자, 어린 동식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각 종의 생물에 나타나는 변이가 진화의 출발점이다. 때문에 다윈은 제 1, 2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는 현재의 진화론에서 ‘변이론’이라 일컬어지는 부분 중 몇 개의 법칙을 제 5장에서 취급하고 있다. 변이에 관한 설명은 증거들에 의한 내용이 많으므로 뒤에 설명하겠다. 분명한 것은 그는 창조설을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잡종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종류의 양친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를 일반적으로 ‘잡종’이라 부른다. 레오폰은 수표범과 암사자 사이에서 태어난 것인데 이런 예는 양친이 각자 다른 종류의 사이에서 태어난 잡종으로 ‘종간 잡종’ 이라 부른다. 같은 종류의 사이에서도 잡종은 태어난다. 이런 경우가 훨씬 널리 퍼져 있다. 가축과 작물에는 여러 품종이 있다. 서로 다른 품종과 품종 사이에서 잡종이 생기면 ‘종내 잡종’ 이라고 한다. 레오폰과 같은 종간 잡종은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다. 이것을 불임성이라고 부른다. 한편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경우는 임성이라고 한다. 종내 잡종에서는 일반적으로 임성이 있다. 인간이 잡종을 만들거나 자연적으로 잡종이 나오는 것을 교잡이라고 한다. 다윈은 잡종의 문제를 취급하면서 몇 가지 사실을 제시한다. “많은 박물학자는 종을 교잡했을 때, 대개는 불임성으로 되지만 그것은 모든 종류의 생물이 혼합하여 너저분하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종의 자유로운 교잡이 가능하다면 한 나라의 모든 종이 언제까지나 다른 종과의 차이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취급하면서 두 가지 종류가 교잡했을 때에 나타나는 불임성과 두 가지 종류로부터 생기는 잡종의 불임성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 어떤 종에 있어서 변종 사이의 잡종의 새끼가 지니는 불임성이라는 것은 종의 불임성과 같은 정도로 나의 학설에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변종과 종 사이에 혼란 없이 확실한 구별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른 종의 생물 사이의 교잡을 취급하고 있다. 그들은 종간 잡종이 일반적으로 불임성인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여러 사실을 가지고 다윈은 몇 가지 결론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다른 종류 사이의 최초의 교잡과 이 교잡으로부터 생기는 잡종은 일반적으로 불임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불임성에는 정도가 다양하며 대단히 경미한 것도 적지 않다. 두 번째는 하나의 종의 변종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한 종류 사이의 최초의 교잡과 변종 간 잡종, 결국 종내 잡종인 그 자식은 일반적으로 임성을 지니고 있지만 이것이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임성 이외의 다른 모든 점에서 종간 잡종과 변종 간 잡종은 전체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이 장에서 언급했던 사실은 ‘종과 변종사이에 근본적인 구별은 없다’라는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역으로 이 의견을 지지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윈은 잡종이 진화의 원인으로서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윈은 종과 종의 차이와 하나의 종과 변종간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자신의 학설을 지지하는 증거로서 ‘잡종’의 문제를 취급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였다.
다윈의 학설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하여 가는 가운데 새로이 변형된 종자가 나타나고, 원래의 종류는 없어져 간다고 한다. 그런 과거의 생물을 조사하는 고생물학과 지질학 연구는 어떠한가? 생물이 없어져 가는 과정이 대규모적으로 진행되어 온 것에 대응하여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변종의 수도 많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질학적인 암층과 지층의 모든 것에 중간적인 변형태가 많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지질학이 점차로 이행하여 온 생물변환의 연속과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질학적 기록이 불완전하다는 의미이다. 이미 존재했던 중간적인 생물은 어떤 종류였느냐에 대한 것은 아래와 같은 생각할 수 있다. 각각의 종류와 그들이 공통된 것일지라도 아직 알려져 있지 않은 선조 사이에 중간적인 종류를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자연토대설에 의하면 물론 2종류의 생물 중 한 쪽이 다른 쪽에서 유래한 경우기 있을 수 있다. 지질학적으로 극히 오랜 시간이 흘렀고 채집한 고생물학상의 표본이 빈약하다는 것을 가지고 그는 지질학상의 기록이 불완전하다는 것은 암층의 각각이 오랜 시간의 간극을 지니고 있음을 말한다. 현존하는 것에 대해서도 완전한 표본을 많은 장소에서 다수 추출하여 조사해야 비로소 두 가지 종이 중간적인 변종을 매개로 하는 종임을 증명하는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화석의 경우 고생물학자가 그 같은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는 없다. 다수의 중간적인 화석의 연결에 의하여 종을 묶어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속과 멸종한 속에 많은 종을 추가하는 것으로 지질학의 연구는 몇 개의 종 사이에 존재하는 공백을 약간 좁힐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가 확실한 다수의 중간적 변종으로 종과 종을 연결하여 종사이의 구별을 애매하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에 의해 명백해지는 것은 ‘단지 어떤 것은 서로 비교적 밀접한 유적 연관이 있고, 다른 것은 유적 연관이 멀다는 것과 같은 소수의 중간적 연결고리를 탐구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 이처럼 다윈은 자신의 학설이 갖는 한계를 냉정히 보았다. 그래서 몇 가지사실을 들어 당시 다른 학자들의 설명이 불합리하며 자신의 학설로 정확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하나의 선조로부터 유래한 생물은 어떤 종일지라도 극히 천천히 발달하게 될 것이며, 그 선조는 그로부터 변화한 자손들이 생기는 것에 의해서 이미 이전부터 생존해 왔다는 것을 주장한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화석을 포함한 지층의 속에 가장 하부의 지층에 가까운 연관이 있는 종의 군이 돌연히 출현한다는 점이 가장 까다롭다고 하면서 삼엽충을 증거로 자신의 주장을 다른 학설에 비해 정확한지 비교한다. 다윈은 지구 역사의 어느 시대에 살고 있었던 어떤 동물도 그 시대에 선행하는 시대의 동물과 그 시대의 후에 계속되는 동물과의 중간적인 것이라는 전제와 앞의 내용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또 ‘체형의 계승의 법칙’에 대하여 ‘같은 대륙에 살았던 동물의 사멸한 종과 현생의 종 사이에 나타나는 놀라운 관계’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형태의 동물이 오래 존속하지만 불변의 형태가 아니라 변화한다는 법칙은 종이 변화를 수반하는 유래에 의하여 생긴다는 설에 따르면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세계 각 지역의 생물은 하나의 시대로부터 다음 시대에까지 유사한데 그 이유는 몇 차례의 변화 속에서도 자손에게 비슷한 경향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떤 부분에 어떠한 생물이 사는가를 지리적 분포라고 한다. 그리고 생물의 지리적 분포를 연구하는 학문을 생물지리학이라고 한다.
다윈은 생물 지리학에도 커다란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질학은 지구의 과거에 어떤 생물이 있었는가를 문제로 삼는다. 생물 지리학이 취급하는 현존하는 생물 분포는 그 장소의 과거 역사를 명백하게 함으로써 설명이 가능해진다. 예컨대 일본열도에는 아시아 대륙에서 사는 종, 또는 매우 유사한 종의 생물이 여러 가지 있다. 이것은 지질시대에 일본 열도가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시대에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생물의 자손이 현재의 일본 열도의 생물이라면 이 열도의 생물 분포를 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이리하여 지질학과 생물지리학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윈은 자신의 학설에 의하여 그러한 사실을 포함한 생물의 지리적 분포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진화론의 올바름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위에서 말했던 바와 같이 <종의 기원>의 전체가 진화에 관한 다윈의 사고가 정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관되고 있다. 이들의 내용도 주로 위의 관점으로부터 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관점에서 발견되는 ‘최대의 난제’라면서 3가지 사실을 들었다. “첫째로, 같은 종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산맥의 정상에 존재하고 있고, 또, 북극지방과 남극지방과 같은 먼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 둘째로 담수에 살고 있는 생물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 셋째로 같은 육생종이 대양에 의하여 멀리 떨어진 섬과 대륙에 살고 있다는 것” 이다. 다윈은 그 가운데 3가지 사실에 대하여 자신의 문장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자세히 읽으면 다윈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이 길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그 내용에 대하여 대략적으로 설명한다면 빙하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기후가 점차로 차가워짐에 따라 북반구의 경우 북방의 찬 지방에 사는 생물이 점차로 남방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빙하시대 이후에 따뜻한 기후가 회복됨에 따라 찬 기후에 적응했던 생물은 다시 북방으로 퇴각한다. 이때 일부는 높은 산으로 올라가 고산 생물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다윈의 생각으로는 생물의 종의 변화에는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있기 때문에, 고산대와 한랭한 툰드라에 같은 종이, 혹은 종은 달라도 아주 비슷한 종이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윈 이전의 시대와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많은 생물학자가 생물의 지리적 분포에 흥미를 느끼고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자신의 관찰결과를 포함하여 이들의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한가에 대하여 다윈은 자신의 설을 그때까지의 대부분의 생물학자가 주장했던 설에 대결시켰다. 지금까지의 생물학자는 생물 하나하나의 종이 신에 의하여 특별히 창조되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다윈은 간단하게 ‘독립적인 창조의 설’ 이라고 불렀다. 한편 그는 “하나의 속에 속하는 많은 종은 모두 공통의 선조로부터 유래한 것이고, 선조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이주하여, 다른 장소로 퍼져갔으며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라고 주장했다. 다우니은 간단히 이것을 ‘변화를 수반하는 유래설’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창조의 설’을 지지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으며, 자신의 설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정성을 다하여 설명했다.
다음으로 다윈은 생물의 종이 변화한다고 했을 때 그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을 서술하고 있다. 다윈보다 이전에, 환경의 물리적 조건이 생물을 직접 변화시킨다는 의견이 있었다. 다윈은 물리적 조건의 작용도 인정하고 있지만 생물이 살고 있는 장소의 여러 가지 종의 생물 사이의 상호관계가 보다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열심히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생물의 분포에 관하여 다윈 이전의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문제, 결국 ‘종은 지구상의 하나의 지점에서 창조되었는가, 혹은 많은 지점에서 창조되었는가’ 라는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당연히 다윈은 단일설을 지지하고 있다.
이상으로 다윈의 <종의 기원>에 대한 전제 조건들과 그에 따르는 세부내용을 알아보았다. 다음에서는 각 장의 중요 증거들에 대하여 쓰겠다.
(3) <종의 기원>의 증거
먼저 첫 번째 논의 내용인 다윈의 생활 조건의 직접적 활동에 의한 변이에 대해서 그는 ‘집비둘기의 예’를 들며 말을 한다. 이 연구는 다윈이 가장 힘을 쏟은 것이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어떤 한 가지의 특별한 종을 연구하는 것이, 언제라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잘 생각한 결과 나는 집비둘기를 선택했다.” 그는 영국산 전서구와 단안 비둘기를 비교하면서 비둘기의 부리의 놀랄 정도의 차이와 그에 대응하고 있는 머리뼈의 차이를 조사해보면 좋을 것이라 말한다. 비둘기는 전서구, 단안, 란트, 바아브, 파우터, 터어빗 비둘기 등 다양한 종류의 비둘기와 새를 조사했다. 그는 비둘기의 품종을 조류학자에게 보여준다고 하면 어느 조류학자도 그 비둘기 들을 동일한 속으로 분류되는 종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비둘기의 품종 간의 차이는 크지만, 모두 들비둘기에서 나온 것이다. 단, 들비둘기는 지극히 세세한 점에서 구별되는 몇몇 종의 지리적 품종, 즉 아종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을 확신하게 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몇몇의 종류의 경우에도 적합했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다양한 비두기의 품종이 들비둘기의 변종이 아니라 다른 종의 비둘기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면 이들 품종은 적어도 7, 8종의 원종에서 나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런 것에 대하여 “현재의 모든 사육품종을 교배에 의하여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숫자 이하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되는 원종은 모두 들비둘기류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 비둘기는 나무 위에서 번식하지 않고, 나무에 앉지도 않는 종과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우선 7, 8종의 비둘기를 선택하여 사육하고 있는데 자유롭게 번식할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해 본다고 해도 이들 종은 야생 상태에서는 알려져 있지도 않고, 또 어디에도 야생으로 생활했다는 기록도 없다. 또 이들 종은 많은 점에서 들비둘기와 비슷하지만 비둘기와의 다른 모든 품종을 비교하면 몇 가지 점에서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많은 사실과 논의를 종합한 다윈은 “오늘날의 집비둘기의 품종은 모두 들비둘기와 그 지리적 아종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라고 결론짓고 있다.
이처럼 비둘기의 예를 상세하게 다룬 후에 다윈은 논의의 폭을 넓혀 가축과 작물의 품종이 만들어진 구조에 대하여 고찰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에게 유용한 변이 속에는 돌연히, 즉 갑자기 생겨난 것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사말 산토끼꽃은 야생의 산토끼꽃 속의 변종에 불과하다. 이 변종이 만든 변화는 돌연히 나타난 것이라고 많은 식물학자들은 믿고 있다. 그런데 나사말 산토끼꽃의 과실에는 어떤 기계 장치로도 당하지 못할 정도의 갈고리가 있다.” 라고 말하고 오늘날 보여지는 것처럼 모든 품종이 완전하게 유용한 것으로서 돌연히 만들어진 거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도태는 가설이 아니라 위대한 원리임을 강조하며 또 다른 예를 제시하고 있다.
“육종가 주에는 일생을 통해 소나 양의 몇몇 품종을 상당한 정도까지 개랑시킨 사람도 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육종가들은 동물의 체제는 정말 변하기 쉬운 것이어서, 대강 생각한 대로의 모습에 끼워 맞출 수 있다고 말한다. 섬머빌 경은 육종가들이 양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그는 육종가들이 벽에 완성된 품종의 모습을 그려놓고,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렇게 인간은 누구든지 가축 중에서 가장 양질이라는 개체를 신중하게 그 자손을 늘리려고 해왔다.
“예를 들면 최근 1세기간에 영국산 포인터가 대단히 변화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변화는 폭스하운드와의 교배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에게 관계있는 것은 이러한 변화가 차츰 자연히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커다란 효과를 낸 것이다. 비슷한 예를 들면 오랜 스페인산 포인터는 확실히 스페인에서 들여왔다. 그러나 그것은 많이 변하였다. 보로우씨에게 들은 바로는 그는 스페인에서 영국의 포인터와 비슷한 토착견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이런 인위적인 변이 외에 2장에서 설명하는 자연에서 생기는 변이에 대한 예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것 몇 개만 들어보겠다.
“북아메리카와 유럽에 살고 있는 새와 곤충 중에는 서로 근본이 조금씩 다른 것이 있다. 이들 동물은 일부의 훌륭한 박물학자로부터 의심받지 않는 종으로서 분류되고 있다. 그런데 동일한 것을 다른 박물학자는 변종, 혹은 지리적 변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예는 대단히 많이 알려져 있다. 이전에 나는 갈라파고스 군도의 각각의 섬에 사는 새를 비교하고 또 이들 새와 아메리카 대륙의 새를 비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재료를 비교 연구한 결과를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종과 변종 간의 구별이 얼마나 막연한 것이며 또 독단적으로 구별되어 있는지를 알고 놀란 적이 있다.”
확실한 특징을 가진 변종과 종으로서 인정될지 어떨지가 의심스러운 종의 예는 아주 많지만 그 들의 예를 고찰할 만간 가치로 여기고 있다. 이들은 분류상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하여 지리적 분포와 유사하게 평행적으로 나타나는 변이, 교잡 등의 많은 흥미 있는 증거가 논해져 왔기 때문이다.
3장 생존경쟁에서는 생물 신체의 각각의 부분은 다른 부분과 생활조건에 대하여 또 어떤 생물은 다른 생물에 대하여 훌륭하게 적응하고 있는데 이런 미묘한 적응에 관한 예가 나와있다.
“딱따구리와 야생목에서 이들의 상호적응은 다할 나위없이 명확하게 보여진다. 또 정도는 미약하지만 짐승의 털과 새의 깃털에 붙어 사는 하등한 기생충에도 물속에 사는 갑충의 신체구조에도, 미풍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반짝이는 종자에도 그러한 적응이 보여진다. 뛰어난 적응은 생물계의 어떠한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또, 등비급수식 증가와 맬더스의 학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몇몇 예와 가정적 계산을 서술하고 있는데 하나만 이야기하겠다.
“코끼리는 알려진 동물 중에서 번식이 가장 늦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나는 적은 시간을 들여, 가능한 최저의 자연 증가율을 세워보았다. 대충 눈어림으로 코끼리는 20세에 자식을 낳기 시작하여 90세까지 번식을 계속한다. 그간에 3마리의 자식을 낳는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렇다면 최초의 2마리의 코끼리로부터 낳은 자식의 수는 500년이 지나면 천오백만으로 될 것이다.”
다음으로 다윈은 생물의 개체 수가 증가하는 것을 저해하는 원인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생태학이 포괄하는 문제이다.
“각각의 종의 개체수가 증가하려 하는 이 자연의 경향을 무엇이 억누르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 증가를 저해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 알려져 있는 예는 하나도 없다. 여기서는 독자의 주의를 촉구하는 몇 가지 주의점만 간단히 서술하겠다. 일반적으로 알을 낳는 동물이 가장 많이 죽는다지만, 어떤 예에서는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식물에서는 종자가 대단히 많이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몇몇 예에서는 다른 식물로 가득 덮인 지면에 tl를 뿌림으로 해서 발아의 시기에 가장 많은 피해를 받는 것 같다. 또 발아는 여러 적에 의하여 파괴된다. … 예를 들면 나는 다음과 같이 해보았다. 길이 3피트, 폭 2피트의 토지를 갈아 풀을 심고 다른 식물에 의하여 방해되지 않게 하였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토착의 잡초 전부를 기록하였다. 그런데 주로 달팽이와 곤충에 의해 357개의 발아 중, 적어도 295개가 파괴되었다. 장기간 손질한 초지가 일단 성장하는 대로 맡겨두면 보다 생활력이 강한 식물이 약한 식물을 설령 자라버린 것이라 해도 멸망시켜 버릴 것이다. 이것은 짐승이 아주 쉽게 먹어치우는 초지 역시 동일하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약 90센티 내지 12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초지에서 살 수 있었던 30종의 식물 가운데 9종은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것은 다른 종들이 자유롭게 성장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다.”
이런 예들을 통해 각 종의 식물의 양이 그들 종이 증가하는 것이 가능한 한도를 결정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에 한 가지 종의 평균 개체수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이 다른 동물의 먹이가 되는 정도이지, 먹이를 쉽게 얻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존 경쟁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자연의 서열 중에 매우 뒤떨어진 위치에 있는 동식물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겠다.
“영국의 어떤 지방에 있는 외래종의 숫잔디꽃은 그 특수한 구조 때문에 곤충이 방문하지 않으면 종자를 퍼뜨리기가 어렵다. 난과 식물의 대부분은 나방의 방문이 필요하다. 그것에 의하여 난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삼색 제비꽃의 수정은 꽃등벌을 필요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내가 행한 시험으로부터 밝혀진 것은 토끼풀의 수분에는 별의 방문이 불가결하지는 않지만 극히 유익하다는 것, 또 일반적인 자주 토끼풀에는 꽃등벌만이 방문한다는 것이다. … (줄임) … 들쥐의 수는 고양이의 수에 의존하고 있다. ‘시골마을 근처에서는 다른 어떤 장소와 달리 꽃등벌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 원인은 들쥐를 죽이는 고양이의 수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라고, 뉴만씨는 말하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가능하다. 결국 고양이 과의 동물이 어떤 지방에 다수 살고 있다는 것은 처음에는 들쥐, 다음에는 꽃등벌의 개체 수에 영향을 주어 결국은 그 토지의 어떤 종류의 꽃의 수 까지도 규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종의 경우라도 대부분 많은 방해작용이 일생의 어느 시기에 혹은 일년 중 어떤 계절에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모든 방해작용은 그 생물의 평균 수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까지도 결정하게 된다.
이런 예들을 가지고 종합적인 4장 자연도태를 이야기하게 된다. 자연도태는 각 생물의 이익에 부합하여 작용할 뿐, 그 이익에 반대하여 작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연도태는 우리들이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형질이나 구조에 대하여도 진행하고 있다. 그에 대한 예가 아래와 같다.
“잎을 먹는 곤충은 녹색을 띄고 있고, 나무의 껍질을 먹는 곤충은 갈색을 띄고 있다. 뇌조의 경우도 환경에 따라 붉은 색을 띄고 있거나, 검은 색을 띄고 있으며, 눈이 많이 내리는 지방의 경우 흰색을 띄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것을 보면 색이 곤충이나 새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도 완벽한 보호 속에서 무한히 불어나지는 않으며 맹조들에 의해 많이 잡혀 먹힌다. 그 외에도 매와 같은 맹조류는 날카로운 시력으로 먹이를 잡는다. 그래서 유럽대륙에서는 흰색 비둘기가 피해가 많아 사육하기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뇌조류가 각 종에 따라 독자의 색깔을 가지거나 색채를 가진 연후에는 일정 기간 충실히 보존한다는 점에서 자연도태가 생존을 위한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육동물이나 재배식물의 경우 그들의 일생 중 어떤 일정한 시기에 나타난 변이는 그 자손에게도 같은 시기에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자연도태는 어떤 연령에 유리한 변이를 계속 누적시키는 것과 그 변화를 대응하는 연령으로 전해지는 유전에 의해 그 연령의 생물에 작용하여 변화가 계속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리적 법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떤 섬의 고유한 생물은 가장 가까운 대륙과 그 외의 가까운 섬의 생물과 관계가 있음은 거의 일반적인 법칙이다. 아래를 살펴보자.
“하나의 군도의 범위에서 규모는 적지만 대단히 흥미 있는 방법으로 작용한 결과를 포착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많은 섬에는 내가 다른 곳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서로 아주 비슷한 종이 조금 있다. 각각의 섬의 생물은 대부분이 각자 고유하면서도 서로 밀접한 유연관계에 있다. 사실 세계의 어떤 지방의 생물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관계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나의 견해에 의하여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섬들이 같은 고향으로부터, 또는 서로 간에 이민자를 받아들인 것이 거의 확실한 만큼 서로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 갈라파고스 제도의 섬들은 서로 보이기는 하지만 깊은 바다로 인해 떨어져 있다. 많은 경우, 바다는 영국해협보다 넓다. 또 섬이 연속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빠른 해류가 섬들의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강풍도 매우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종들이 섬에 공통적으로 생존하고 있다. 그것들에는 세계의 다른 지방에서 보여지는 것도, 이 제도에만 있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있는 까닭에 왜 섬에 고유한 종이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다. 이런 고찰을 토대로 한 대륙의 여러 지역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한 지역에서만 살고 있다는 것이 같은 생활 조건에 있는 종의 혼합을 저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 다윈이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와 예시들을 살펴보았다. 이런 증거들은 다윈이 주장을 펼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바탕이 된다고 하겠다. 당시에는 이런 주장 자체가 대단히 파격적이고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에 다윈은 자신이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증거들을 수집해야 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수 가지에 책에 소개되어 있으나 생략하도록 하고 다음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2. 반론에 대한 고찰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한 이후, 진화론은 특별한 검증을 거치지 않고 상식처럼 퍼지게 되었다. 나도 사실 진화론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이번 독후감을 쓰면서 조금 의문점이 들어서 몇 가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윈은 추측하는 단어, 즉 ‘~일 것이다.’, ‘~라고 생각된다.’ 라는 것을 많이 쓰고 있다. 검증이 확실히 되지 않은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이론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 나름의 이유과 근거를 대고 있으나 어쩌면 그 시대의 상황과 맞아 쉽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다윈의 이론은 이미 이론이 아닌 하나의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그 시대의 정설에 의문을 품는 것을 이단이라고 간주하던 옛 종교 비판 시절처럼 진화론을 비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잘 검증되지 않자 몇몇 학자들이 진화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1981년 11월 5일 패터슨 박사는 미국 자연 역사 박물관에서 진화론 전문가들을 앞에 놓고 강연을 했는데, 거기서 그는 감히 자기들이 지금까지 상식으로 알고 있는 이론이 단순한 억측에 불과하며, 그것을 지탱할 중요한 증거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로서는 20년 이상이나 어떠한 형태로든 진화론의 연구에 관계해 왔습니다만,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하룻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20년 이상이나 연구해 온 일인데, 무엇하나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로부터 몇 주일동안 여러 사람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며 돌아다녔습니다. <귀하는 진화론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소, 무엇이든 하나라도 좋으니 검증 가능한 것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언제나 침묵 뿐이었습니다. 과거 여러해 동안 진화론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신앙으로써 그랬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의 것처럼 생각합니다."
다윈에 대한 비판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생물의 권위자 중에서는 진화론을 포기해 버린 사람이 속출하고 있고 많은 생물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다윈이즘을 무식하기 시작했다. 그 동안 갖고 있던 침묵이 깨진 것이다. 이전에는 낮은 목소리의 속삭임이 항의의 소리가 되었다.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생물학자 그랏세 박사는 “추측에 근거를 둔 불명료한 공리를 사용하여 진화론이라는 가짜 과학이 만들어졌다. 더구나 이것이 생물학의 중심에 뿌리를 박음으로써, 그 이후의 생화학자나 생물학자들은 얼마나 피해를 입었던가” 라고 거의 매도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다.
과거 40년 동안 지배적이었던 ‘진화종합설’에 관하여 많은 학자들이 부정하고 있다. 이것은 20세기 초에 발전한 유전학의 연구를 중심으로 생물학의 모든 성과를 다윈이즘에 결합시킨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은 개체의 차원에서의 작은 유전자의 변화를 쌓아 올린 것이 과연 신종의 출현이라는 종의 차원에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문제였다. 즉, 종의 작은 변화가 누적되고 시간이 흐르면 사과가 오렌지가 되는 것 같이 최종적으로 새로운 종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사실인가 아닌가라는 것이 문제였다. 결론은 부정적이다. 진화론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본인도 크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고등학교 생물 시간 등 교육과정에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인 것 같다.
진화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창조론자들이 많다. 그런 창조론자들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진화의 증거들을 가지고 진화론을 역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우선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화석에 관한 것이다. 모든 교과서와 대부분의 책들에는 진화의 직접적인 증거로 화석을 들고 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종과 종 사이를 연결시키는 중간단계 형태의 화석들이 발견되지 않고 중간형태 없이 완전한 형태로 각 종류대로 나타난다면 화석은 틀림없이 창조론을 증거하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동물인 물고기로 물고기에서 양서류로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파충류에서 조류와 포유류로 변할 때마다 반드시 중간단계의 생물들이 존재해서 화석으로 발견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화석들 가운데 그러한 중간단계 화석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예로는, 선 캄브리아기에서는 다세포 동물의 화석이 전혀 없다가 캄브리아 지층에서 갑자기 삼엽충, 해파리 등의 무척추 동물과 산호류 등이 나타난다. 단세포 동물에서 다세포 동물로의 전이화석이 없다. 또, 다양한 물고기 화석이 중간형태 없이 대량으로 독립적으로 갑자기 나타나고 백악기에 형성된 여러 나뭇잎의 모양은 현존하는 식물과 똑같으며 전혀 변화가 없다. 멸종된 생물을 제외하고는 화석의 생물형태는 그것이 발견된 지층에 관계없이 현존하는 생물의 형태와 동일하다.
위의 화석 연구결과는 모든 생물이 처음부터 종류대로 창조되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생물이 천재지변에 의해 갑자기 매몰되어 화석이 되었다는 격변설을 증거한다. 결국 종과 종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간단계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 한 진화론은 과학적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각 종류대로 창조되었다는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라 하면 사람들은 으레 원숭이와 인간과의 진화관계를 생각한다. 종과 종사이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대진화에서는, 원숭이로부터 인간으로 진화했으며 이들 사이에는 인간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닌 중간 형태의 괴물들, 즉 원시인들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화석 증거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밝혀진 원시인의 것이라고 주장되어진 증거들은 다음과 같이 허구임이 드러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멸종된 큰 침팬지 종류로 원숭이의 변종에 다를 바 없으며 생태학적으로 갈라다 개코 원숭이와 비슷하다는 것이 현재의 결론이며 자바원인 또한 원숭이라고 보고 있다. 1892년, 자바에서 듀보아는 각각 60피트 거리에서 제각기 따로 떨어진 두개골, 치아, 대퇴골을 수집하였다. 이것이 50만 년 전의 직립원인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1908년, 자바섬에서 분출한 용암은 500년을 넘을 수 없다고 독일의 탐험대가 발표했다. 1936년, 결국 듀보아는 자바인이 원숭이였다고 고백하였다.
인간과 가까운 계열인 네안데르탈인 또한 여러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1856년, 네안데르탈 인이 최초의 뼈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발견되었다. 꾸부정한 모습을 지닌 이것들은 20만년 전쯤된, 원인으로부터 한층 진보한 인간으로 여겨졌다. 후에 이 네안데르탈인은 곱추병환자였음을 밝혀졌다. 팔레스타인 동굴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직립보행 인간의 화석이 계속 발견되어 왔다. 그들의 두개골용적은 현대인의 그것보다 더 크다. 이것은 완벽한 인간의 두개골 일 뿐이다. 여기에 대한 예들과 다른 주장들은 많지만 지면상 줄이고 다음을 보겠다.
돌연변이나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변이에 따라 그 기능이나 구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은 종(種) 내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종 내에서의 작은 변이(진화론의 소진화)가 쌓여서 다른 종이 됐다고(대진화)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생물의 인위적 돌연변이 실험을 거의 반세기 동안 해왔어도 단 한번도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 일을 없다. 초파리로 실험했을 때 비록 크기, 모양, 색깔 등이 조금씩 다른 초파리가 나왔지만 초파리가 아닌 것을 만들지는 못한다. 유전학적 한계 내에서, 즉 종 내에서 변이는 다양하지만 그것이 누적돼 수직적인 변이를 일으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생명체 내에는 망가지거나 손상된 염기배열을 고쳐 원래의 모습으로 바꿔주는 유전자 교정장치(DNA repair system)가 존재하고 있어 오히려 진화를 방해한다. 신다윈설을 증명한다는 예로 많이 인용되는 영국의 버밍헴지역의 불나방의 경우를 보자. 흰불나방과 검은 불나방의 비율이 주위의 환경에 따라 달라진 것은 사실이나 유전적 변화가 일어나서 그랬다는 설명은 타당치 않다. 개를 가지고 실험해도 역시 개로 끝나고 박테리아를 가지고 아무리 여러 가지 변이실험을 해도 조금씩 변화를 보이긴 하지만 끝까지 역시 박테리아다. 야생동물들을 자연상태로 내버려 두어도 자기 종류들 내에서만 번식해 간다. 간혹 잡종이 생길 수 있으나 잡종들은 그 당대에서 끝나고 더 번식을 못한다. 말과 당나귀는 서로 다른 종이지만 인공적으로 교배시켜 노새가 생기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노새는 번식을 못한다. 식물이나 동물세계에서 혹 인공적으로 더 나은 품종을 개발했다 해도 대개 번식력이 약화되어 몇 세대 이상 가지 못하거나 존속하기 힘든 약체가 된다. 돌연변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돌연변이는 100만 마리의 동물 가운데 한 마리, 혹은 10만 내지 100만 세대에 한번정도 일어난다고 본다. 또한 돌연변이는 해로운 방향으로 일어난다. 1928년 이래 초파리에 X-선을 조사하여 인공돌연변이 실험을 해왔고 1946년에는 이 분야의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밀러박사(H.G.Muller)가 말하기를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해롭게 나타나고 사실상 유익한 돌연변이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모든 돌연변이가 다 해롭다고 생각해도 좋다고 했다. 돌연변이는 생존능력의 약화, 유전적 질병, 기형을 만듦으로 그러한 변화는 진화를 성립시키는 요소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유명한 진화론자 도브잔스키(Dobzansky)도 말했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떨어진 원자탄으로 발생된 돌연변이의 경우 백혈병, 기형, 죽음을 초래했지 유익을 주지는 못했다. 유익한 변이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은 진화론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나온 논리이지 실제의 돌연변이는 모두 해롭게만 일어난다. 돌연변이가 한 종에서 고등종류의 생물체로 진화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돌연변이가 드물게 일어날 뿐 아니라 거의 항상 해롭게만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물의 배(embryo) 발생과정에서 사람이나 물고기, 닭 등의 배가 비슷하여 진화의 증거라 하여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 한다'는 학설을 1866년 헤케르가 발표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이미 여러 학자들(Ehrich, Holm)에 의해 부정되었다. 오늘날에는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조차도 이 이론을 믿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 옹호의 이론으로 자주 이용되고, 초보적인 교과서에 게재되고 있는 것은 큰 잘못 중 하나이다.
수년전 유명한 진화론자인 몽태그(Ashley Montague)박사는 프린스턴대학 토론회에서 발생반복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론으로서 더 이상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동물의 배 발생과정에서 생기는 새궁(gill arch)이나 새열(gill slit)은 물고기의 것과는 다르다. 물고기 배의 새열은 숨을 쉬게 하는 아가미로 발전되지만 사람 배의 목 부분에 있는 막대기나 나사홈 형태와 비슷한 부분은 물고기에서와 같이 아가미로 발전되지 않고, 아래 턱 귀의 중간부분 및 내분비선(gland)으로 자라게 된다. 따라서 외견상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며, 유전 정보 상 서로 다른 근원을 가져서 다른 기관으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과학적으로 더 타당하다.
말의 진화는 그 동안 시조새와 더불어 말은 가장 효과적으로 진화를 보여주는 표본인 것처럼 제시되어 왔다. 그것은 포유류에 속하는 말의 화석이, 생물군의 발전과정을 계통적으로 보여주는 소위 계열 화석을 이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어떤 진화론자들은 오히려 시조새보다도 말이 진화를 보여주는 더 좋은 보기라고 말한다.
진화론에서 말하는 말의 진화계열을 살펴보면, 에오히푸스(Eohippus)-메소히푸스(Mesohippus)-메리키푸스(Merychippus)-플리오히푸스(Pliohippus) -에쿠스(Equus)로 진화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진화론적 말의 계열이 보여주는 것이 실제 진화의 증거가 되는 것인가 몇 가지로 나누어 검토해 보자.
첫째, 최초의 말이라고 추측하는 에오히푸스는 적어도 말이 아니다. 실제 최초로 발견되어졌을 때는 그것은 그와 같이 분류되지 않았었다. 그의 골격구조와 삶의 생태를 추적해 볼 때 그것은 오늘날 바위 너구리(Hyrax)와 흡사하다. 더우기 에오히푸스의 화석은 에쿠스 네반덴시스 (Equus nevadensis), 에쿠스 옥시덴탈리스(Equus occidentalis) 등 현재의 두말 종류와 같은 표층에서 나란히 발견되어 진다.
둘째, 말 화석의 완벽한 계열이 아래서부터 위층까지 적절히 진화론적인 질서로 암석층에서 정렬된 채로 발견되는 곳이 세상의 어느 곳에도 없다. 이러한 배열은 단지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화석을 차례로 배열함에 의존하므로 그들이 어떤 순서로 들어가는가에 따라 심각한 논쟁이 있게 된다. 이에 대하여 어느 전문가는 "누가 그 이야기를 꺼냈는가에 의하여 크게 의존하고, 언제 그 이야기가 발표되었는가"에 따라 진화 계통수의 자리 다툼을 위해 경쟁하는 많은 화석 말들이 있다고 하였다.
셋째, 발가락이 많은 동물로부터 한 개의 발가락을 지닌 동물로의 배열이라는 것은 순전히 이론에 불과한 순서배열로 많은 반론을 지닌 부자연스러운 배열이다.
이러한 모든 예를 통하여 볼 때 말 화석은 종류대로의 말을 보여주며 결코 진화의 증거로는 부적당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만일 동일한 종 내에서의 변이를 선입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오늘 날 살아있는 사슴이나 기린 등도 말의 계열과 같이 진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배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의 화석이 진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 온 것은 결코 객관적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진화론에서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고 내세우는 가장 유명한 것은 시조새의 화석이다. 이제까지 발견된 많은 시조새의 화석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독일의 졸른호펜(Sornhofen)의 석회암에서 발견된 쥬라기 화석이다. 시조새의 새로서의 특징은 깃털, 날개, 부리이며, 파충류로서의 특징은 뼈가 있는 긴 꼬리, 날개 전면의 발톱, 부리의 치아 등이다. 그러면 시조새가 정말로 진화론에서 말하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인지 알아보자. 진화론자들은 시조새의 깃털이 파충류의 비늘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조새의 깃털은 다른 종류의 새들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발달한 형태이다. 시조새는 완전히 날 수 있는 새의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깃털로서는 조류가 파충류에서 발생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진화론에서 시조새가 파충류와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날개의 앞쪽 끝에 있는 발톱(날개 발톱)이다. 그러나 날개 발톱이 시조새가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라는 증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로 현존하는 새 중에도 날개 발톱을 가진 새가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남아메리카에 서식하고 있는 호애친(Opisthocomus hoatzin, 남미산의 뱀을 잡아 먹는 새)이라는 새는 날개 끝에 발톱 두개가 있다. 호애친은 100% 새이면서도 날개 발톱을 가진다. 그러므로 날개 발톱은 시조새가 중간 형태라는 증거로 전혀 사용될 수 없다.
생물 간의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근연관계와 그 계통을 유추하고자 하는 것이 진화론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분자수준에서 유사성은 재고되어야 한다. 분자의 생화학적 상동현상이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제껏 진화론에 근거한 생물종간 비교와 아미노산 배열의 예는 거의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으로 보고 되고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예는 진화론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러 동물의 체내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인슐린의 아미노산 차이를 한번 비교해보자. 인슐린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조가 닭, 오리, 타조의 경우에는 거의 유사하며, 생쥐와 토끼도 서로 닮아있다. 그런데 가다랭이 (bonito)라는 물고기의 인슐린 구조는 같은 어류인 복어(toadfish)보다 오히려 닭이나 오리, 사람 등과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생쥐는 가까운 돼지보다는 오히려 닭, 방울뱀, 가다랭이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예로 시토크롬 C는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효소인데 104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아미노산의 동물간 유사성을 조사해 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젖먹이 동물인 회색고래의 시토크롬 C는 같은 젖먹이 동물인 원숭이보다 오리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밝혀졌다. 또 두꺼비는 방울뱀보다 초파리와 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참치의 시토크롬 C도 같은 어류인 돔발상어(dogfish) 보다 오히려 토끼의 그것과 닮았다.
이상의 예를 통해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시각과 그들의 주장하는 근거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3. <종의 기원>의 의의 및 역할
현대 생물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나는 유추를 통하여 모든 동물과 식물은 어떤 하나의 원형으로부터 왔다고 하는 신념에 이르게 되었다"고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그 영향은 실로 엄청나게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화론의 신봉은 생물 학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질학자는 진화를 지구역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물리학자나 화학자들은 원자나 분자들이 소립자로부터 진화했다 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진화의 개념은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서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마르크스는 생존경쟁의 개념을 계급투쟁의 개념으로 적용하여 공산주의 이념을 확립하였고, 히틀러의 민족 우월사상등도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그 밖에 정치학, 문학, 철학, 심리학, 교육학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진화론의 신봉은 생물학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진화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지질학자는 진화를 지구역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고, 물리학자나 화학자들은 원자나 분자들이 소립자로부터 진화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진화의 개념은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에서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마르크스는 다아윈의 '자연선택', 혹은 '생존 경쟁'이라는 개념을 경제학에 사용한 대표자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그의 동료인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보면, 그는 자연환경에서 생물의 경쟁에 관한 다아윈의 생각은 계급들 간의 경쟁과 관련된다고 하고 있다. 그는 '생존 경쟁'의 개념을 '계급투쟁'이라는 말로 바꾼 것이다. 이런 생각은 '힘은 정의다'라는 생각을 나오게 하여, 니체의 초인사상, 히틀러의 아리안족 우월사상, 영국의 웹이 이끄는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들의 투표라 는 투쟁을 통한 점진적 사회개혁, 케인즈의 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공산주의자들의 자본주의 필망론 등은 모두 다윈의 적자 생존 개념과 마르크스의 계급투쟁 개념을 확장하여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베커(C. Becker)를 비롯한 여러 정치학자들도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원래 역사학자인 베커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르크스의 생각을 많이 사용하도록 장려했고, 현대사회에 생존 경쟁이라는 진화론적 사 고로 많은 영향을 끼쳤고, 후에 히틀러의 만행이 '힘이 정의'라는 명제의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하였다. 독일의 나치주의, 소련의 공산주의 사이에 실제적으로 철학적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레닌이 마르크스주의 를 받아들여 볼쉐비즘과 레닌주의로 발달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런던(J. London)의 소설, 버나드 쇼(B. Show)의 희곡, 심지어 테니 슨(Alfred Tennyson)의 시에서 조차 인류 진화의 영향이 나타난다. 사 실 테니슨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진화론적 입 장을 표명했다. 실제로 런던과 쇼는 영국 사회주의자였고, 페이비언 협회의 추종자들이었다. 런던과 쇼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생존 경쟁의 개념을 표현했고, 마르크스의 견해를 최상의 것으로 제시했다.
철학에서 진화론의 영향은 19세기까지 생물 분류 체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그때까지의 분류개념에 의하면 생물계에는 불변의 원 형이 존재했으나, 진화론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종으로 점진적인 진화를 일으켰다고 하였다. 여기에서부터 모든 사물을 상대적 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논리체계에서도 혼란이 일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사고원리는 다중가치 논리체계에 의해 도전을 받았다. 진화론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철학자로는 20세기 '신 철학'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미친 듀이(J. Dewey)를 들 수 있다.
어쩌면 당대 시대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종교일 것이라 생각된다. 십구 세기 초에 종교와 과학은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누리고 있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기 단지 2년 전에, 생물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루이 아가시는 생물계가 "주의 깊은 사전 계획, 지혜, 위대함"을 나타내며, 자연사(自然史)의 주요 목적은 "우리의 창조주의 생각"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아가시의 관점은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는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과학적 발견은 흔히 위대한 창조주에 대한 증거로 인식되었다. 그러나가 미묘한 틈이 종교와 과학 사이에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회의적인 태도가 뿌리 내리다 찰스 라이엘의 지질학 원리(Principles of geology)는 제1권이 1830년에 출간되면서 성서의 창조 기록에 의문을 던졌다. 라이엘은 창조가 문자적인 6일 만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물리학자 프레드 호일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주로 라이엘의 저서들 때문에 일반 세상은 성서가 여하튼 어떤 면에서는 잘못될 수 있다는, 그 당시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생각을 하 도록 설득되었다." 이런 식으로, 회의적인 태도의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과학과 성서는 더 이상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 양자 택일에 직면하여 많은 사람들은 과학 쪽을 택하였다. "라이엘의 저서는 구약의 처음 장들에 의문을 던졌다"고 프레드 호일은 기술하였다. "그리고는 다윈의 택이 라이엘의 저서를 바로 대신하게 되었다." [종의 기원]은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나 왔다. 인간과 과학 사이의 로맨스는 이미 꽃피고 있었다. 넋을 잃은 대중은 과학의 약속과 업적 에 매료되어 있었다. 정중한 구혼자처럼 과학이 인간에서 참신한 선물을 한 아름 안겨 준 것이 다. 망원경, 현미경, 증기 기관에다, 나중에는 전기, 전화, 자동차까지 가져다주었다. 과학 기술이 이미 이룩해 놓은 산업 혁명은 전례 없던 물질적이기를 보통 사람들에게도 제공하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종교는 진보의 걸림돌로 여겨졌다. 일부 사람들 생각에 종교는 사람들을 혼미 상태에 붙잡아 두어 과학의 진보를 따라갈 수 없게 만드는 존재였다. 무신론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자기들의 견해를 대담하게 천명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이쳐드 도킨스가 기술하였듯 이 "다윈은 사람들이 지적으로 충족된 무신론자가 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과학은 인류의 새로운 구원의 희망이 되고 있었다. 처음에 종교 지도자들은 진화론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몇 십 년이 지나면서 일반 교직층에서는 여에 굴복하여 진화와 창조를 혼합한 것을 받아들였다. 1938년에 [뉴욕 타임즈]지에는 "영국 교회 보고서, 진화론적 창조 사상 옹호"라는 표제가 실렸다. 그 보도 자료는 요크 대주교가 이 끄는 한 위원회가 제공한 것으로서, 이러한 내용을 싣고 있었다. "진화론에 반대하는 여하한 내용도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두 가지 창조 기록으로부터 이끌어 낼 수 없다. 그리스도인 지식층에서는 그 기록이 신화에서 기원하였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치는 역사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주교 산하의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이러하였다. "여러분은 자신이 좋을 대로 생각해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성서를 진화에 끼워 맞추어 보려는 그러한 시도는 성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그 결과 성서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가 확산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 측면도 강하다.
이렇게 진화론은 당대의 많은 논란과 비판, 영향을 주면서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것이 참이든 아니든, 분명한 건 역사적으로 인간에게 크게 의미가 있는 활동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Ⅲ. 결론
1. 느낀 점 및 끝내는 말
대학교 와서 절정으로 많은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헉헉.. ;; 책을 읽다가 시험기간이 다가오고 해서 전부 꼼꼼히는 읽지 못하고 쓰게 되어서 인지 내용상, 구성상 엉성한 것이 사실이다. (죄송합니다.^^a) 어쨌든, 이번 독후감 (사실 거의 소논문에 가까운 것이지만)을 쓰면서 예전부터 해왔던 나의 잡다한 생각들에 대한 것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진화론에 대해서 어릴 적에는 부정적이었다. “어떻게 원숭이가 인간이 되지?” 라는 의문은 클 때까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주변에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인데, 정말 납득이 안됐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게 되면서였다. 학교에서 생물시간에 진화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 이라든가, 다윈의 자연 선택설과 같은 그럴 듯한(?) 내용을 접하면서 나의 진화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깨지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대학에 와서까지 진화론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굳어져갔다. 진화론이 정설로 받아지기 시작하면서 전공이며 과학서적까지 그렇다는 쪽으로 쓰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아닌 것인지. 사실 나라는 존재 자체도 잘 모르는 것처럼 진화론 자체도 철학적 사고에서 나온 비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글을 쓰다보니 다윈은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것에 맞춰서 증거를 제시하고 객관화하려고 하는 노력이 그의 글 중간에 보였다. 억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자연선택이나 생존경쟁 측면은 동의하는 부분이 많은데 지리적 분포나 지질학적 관계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다. 진화론의 반대를 주장하는 창조론자들의 지적도
지질학적 관계에 대해서 의문을 걸고 이야기하는 것을 위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시대 과학의 미발달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한다. 부정확한 과학의 내용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면 다른 것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가장 먼저 종교에 큰 영향을 주었고, 이어 그와 관련된 철학, 과학, 정치,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영향이 크든 작든 세기를 거쳐 여전히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난 사실 진화론도, 그렇다고 해서 창조론의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밀러의 최초의 아미노산 합성 실험에서부터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의 세포내 결합도, 배의 발생이 공통적인 것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전부 진화론의 입장을 띄고 있다. 지금 배우고 있는 세포 생물학이나 식물 분류학, 모든 과목들이 진화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은 뿅~하고 나타났다는 창조론이 너무 비과학적이라고 보여 진다는 판단에 근거한, 보다 더 과학적이고 그럴 듯하다는 진화론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화론을 생각하면서 우주론에 대한 것도 고찰을 해보았다. 우주의 시작, 그리고 팽창론.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태초의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3차원이 존재하는 지구상에서 확장과 축소만의 개념이 있는데, 그럼 우주의 끝은 어디고 시작은 어디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쩌면 인간이 끝까지 풀지 못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우주론처럼 진화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끝없이 확장될 것만 같은 우주와 무(無)라는 것에서 유(有)가 창조된 것 같은 창조론, 그리고 진화론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옳고 그름은 그 시대가 반영하는 생각에 근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독후감을 쓰면서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안이하게 바쁜 생활 때문에 과학도이면서도,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이런 본연의 문제에 대하여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교과서 그대로를 가르칠 것인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칠 것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이다. 사실 선생님 중에서 진화론을 옳지 않다고 본다면 교과서를 틀렸다고 지적할 수도 있지 않은가.
어쨌든, 나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진화론도 창조론도 어디가 옳다고 보는 입장은 절대 아니다. 다만 현재의 사실적 근거에 의존해서, -물론 반론도 있지만- 진화론을 생각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내가 창조되었다든가 진화되어 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숨쉬고 있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단 한 번인 일생을 보다 값지게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종의 기원>에 대한 모든 감상문을 마감하겠다.
[출처] 찰스 로버트 다윈,『종의 기원』의 핵심 내용 |작성자 송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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