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일곱 살 난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더니 대뜸 "엄마는 착한 딸이 좋아, 아니면 공부 잘하는 딸이 좋아?"라고 묻더란다. 잠깐 고민한 친구가 "음, 공부 잘하는 착한 딸!"이라고 대답했더니, 딸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하고 다시 물었다.
친구는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 했다. 착한 딸이 좋은 게 당연한데도, 요즘 같은 세상에 착하기만 하고 공부를 못하면 살아가기 힘들 것 같아서란다. 사실 우리나라 엄마라면 누구나 둘 중 하나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을 터. 착한 아이로 크는 것도 중요하지만 1순위 자리에 '공부' 대신 다른 걸 올려놓으면 세상에 뒤처질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매년 미국 국제학교의 교사들로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는다. 그런데 강연을 갈 때마다 국제학교 교사들로부터 한결같이 듣는 말이 있다.
'한국 학생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대다수 한국 엄마들은 무조건 결과만 중요시해서 과정이야 어떻든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는 거다. 종종 아이의 커닝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문제가 되면 적당히 무마하려는 엄마들을 보면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심리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인 리처드 웨이스보드는 '부모는 아이의 도덕적인 행동의 표본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기보다 자기 자신 위주의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요즘 부모들의 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줄 때 더욱 행복해지는 법이므로, 아이에게 나만 잘되면 된다는 식의 생각을 심어주면 그 아이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웨이스보드 교수는 '아이의 자존감만 키워주면 자동적으로 도덕성 있는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전하며, 배려심 깊고 책임감 있는 아이로 키워야 비로소 자존감이 깃든다는 것을 강조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서 강연장에 온 여섯 살배기 아이가 울 듯한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엄마랑 과일가게에 가면 사과를 사면서 포도를 막 따 먹고, 반찬가게에서도 돈을 안 내고 반찬을 집어 먹었다는 것이다. 어른들에겐 당연시되는 이러한 행동이 아이의 시각으로는 도덕성이 결핍된 나쁜 행동으로 비쳐 혼란을 느낀 것. 이런 모습을 보면서 그저 웃어넘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마트에서 음식을 시식할 때는 "이건 물건을 사기 전에 살지 말지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공짜로 주는 것들이야. 그래서 돈을 내지 않고도 맛볼 수 있어"라고 설명해주자. 그래야 아이는 혼란을 느끼지 않고 도덕성이 흔들리지 않는다. 평소에도 엄마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아이에게 자주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도덕성은 다른 사람의 감정 상태에 공감했을 때 성큼 자라난다. 아이들은 감정이입이 더 잘되기 때문에 도덕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공감 능력을 키워주는 양육 태도를 취해야 한다. 책을 읽어주면서 등장인물의 마음이 어떨지 아이의 생각을 이야기해보게 하거나,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역할놀이를 하는 것도 남을 공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태도도 도덕성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 중요한 점은 이 또한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엄마의 행동을 보며 은연중에 배운다는 사실이다. 아이에게 잘못을 했을 때는 "미안해, 아까는 엄마가 너무 심하게 화를 냈어"라는 말로 잘못을 진심으로 시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좋다. 아이가 친구에게 실수를 했을 때도 엄마가 대신 나서서 사과해서는 안 된다. 아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친구에게 직접 사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걸 잊지 말자.
+ 조세핀 킴은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 지난 15년간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다니며 자녀교육으로 고민하는 부모와 아이들을 상담해왔으며, 육아서 < 우리 아이 자존감의 비밀 > 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다. 2011년 10월 현준이를 출산했다.
기획 김형선 기자 | 글 조세핀 킴(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수) | 일러스트 경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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