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제력과 전쟁수행능력. 일정 수준 이상의 국력을 갖춘 나라의 군사력을 평가하는 척도다. 전쟁이 벌어지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위협해 전쟁을 막는 것이 억제력이라면, 실전에서 피해를 줄이며 승리하는 것이 전쟁수행능력이다.
북한이 지난 6일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유사시 바다에서 한반도 남부를 핵으로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남 선제타격 또는 반격이 가능한 잠수함에서의 핵공격은 가능성만으로도 상당한 위협이다.
◆SLBM 능력 강조하며 핵능력 과시
조류와 수온의 영향을 받는 수중 환경은 잠수함이 은신하는데 최적의 조건이다. 막강한 대잠수함 전력을 지닌 국가도 탐지가 매우 어렵다. 잠수함이 출현하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잠수함에 장거리 미사일을 탑재하면, 위협은 한층 커진다. 수중에서 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사전에 발사 징후를 적에게 들키지 않고도 전략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방식으로 전술핵공격잠수함을 만들었다. 잠수함 운용의 기본 요소들을 희생, 다수의 SLBM을 탑재하는데 ‘올인’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한 ‘전술핵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6년 6월 해군부대를 시찰하면서 탑승한 로미오급 잠수함. 전술핵공격잠수함은 로미오급을 개조하면서 뾰족했던 함수를 원형으로 바꾸고, 함수의 수평타를 함교탑으로 옮기는 등의 개량을 실시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전기·동력 계통 재설치 등도 문제지만 SLBM 발사관 설치가 가장 큰 난제다. 로미오급의 직경은 6.7m. 북한의 SLBM은 이보다 크다. 함교탑 후방에 발사관을 툭 튀어나온 형태로 설치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러시아의 초기 전략핵추진잠수함도 이같은 방식을 썼지만, 함의 균형은 유지했다. 반면 북한 잠수함은 발사관 10개를 탑재했고, 크기도 매우 크다. 함교탑도 대형화됐다.
건조된 지 수십년이 지난 소형잠수함인 로미오급에 대형 SLBM 발사관이 장착되면 수중 및 수상 항해의 안정성 등에 영향을 미친다.
2019년 7월 SLBM 탑재 로미오급 개조 당시에는 옛소련 델타급 전략핵추진잠수함처럼 미사일발사관이 함교탑보다 매우 낮게 설치되어 잠수함의 수중 항해에 큰 문제가 없었다.
지난 6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열린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에 등장한 김군옥영웅함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관 모습. 노동신문·뉴스1최일 잠수함연구소장은 “(무게가 늘어나도) 500t 이상 추가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잠수함 기동성이나 선진적인 외형보다는 SLBM 수직발사대 설치에 중점을 뒀다. SLBM 발사관을 그렇게 많이 설치하면 함 내 공간도 크게 축소되고, 배터리나 기관실 공간도 줄어든다. 함 전체의 성능은 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잠수함 함수도 로미오급은 납작한 모양이었으나 원형으로 바뀌었다. SLBM을 탑재하면서 잠수함의 기존 전투기능이 오옮겨졌거나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됐을 가능성이 있다.
함수의 수평타는 함교탑으로 옮겨졌다. 한국 해군 도산안창호함과 유사한 형태다. 잠수함이 대형화됐고 중량도 늘어나면서 취약해진 함의 안정성 강화를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함수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잠수함에서 SLBM을 쏘는 것은 조만간 이뤄질 시험발사를 통해 입증될 전망이다.
잠수함은 SLBM 발사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온·고압의 열과 가스를 견디면서 함의 균형을 유지, SLBM을 수면 위로 쏘아올리는 역할을 한다. 최 소장은 “잠수함에선 SLBM에 사전에 자료를 입력하고 쏘면 된다. 관련 전투체계 기능은 유선유도 어뢰에 쓰이는 것보다는 기술적으로 쉽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함경남도 신포조선소에서 열린 전술핵공격잠수함 진수식에서 바다로 미끄러지고 있는 잠수함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켜보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북한은 이번에 만든 전술핵공격잠수함인 김군옥영웅호를 ‘기존 중형잠수함들을 공격형으로 개조하려는 전술핵잠수함의 표준형’이라고 밝혔다. 기존에 보유한 로미오급을 전술핵공격잠수함으로 바꾸면서 무장체계와 잠항작전능력을 최대로 향상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의도대로 이뤄진다면, 북한 잠수함 전력은 위상과 작전개념 등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과거 북한 잠수함은 영해 방위에 초점을 맞췄다. 일부 로미오급이 한반도 일대 바다에서 활동했지만, 다수의 작고 빠른 잠수함들은 연안에서 작전을 펼치면서 공작원 남파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로미오급이 전술핵공격잠수함으로 바뀌면, 핵 선제공격도 가능해진다.
북한이 시험발사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하늘로 상승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잠수함으로서의 능력은 떨어져도 해안과 가까운 동해 바다에서 활동하면서 ‘움직이는 미사일 발사대’ 역할을 한다면, 한국군과 주한미군 주요 시설을 사정권에 넣게 되면서 한·미에 대한 압박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유사시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해 한·미 연합군을 위협할 수 있다.
보조적 존재에 불과했던 잠수함 전력이 핵 타격력을 갖춘 전투부대로 개편되는 셈이다. 개조 및 운용과정에서 얻은 기술과 경험은 북한이 추진중인 핵추진잠수함 건조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한·미 연합군으로선 북한 잠수함에 대한 경계를 한층 강화할 수밖에 없고, 유사시 한반도에서의 해상작전 부담도 커진다.
북한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전술핵공격잠수함을 만들려면 기존 로미오급에 대한 대대적인 성능개량과 개조를 실시해야 한다.
북한이 로미오급을 도입한 것은 1960∼1970년대다. 40여년 동안 사용하면서 노후화가 심각하다. 어떤 형태로든 성능개량이 필요하다.
문제는 내부 장비를 교체할 때, 대북 제재로 외국에서 대체 장비를 수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엔진 등의 핵심 장비를 국산화하면서 SLBM을 탑재하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 쉽지 않은 과제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김군옥영웅호 진수식에서 “해군함선의 기동성을 향상시킬수 있는 선진시대의 신형함선기관들을 적극 개발생산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조선소 현대화와 생산능력확장, 강판을 비롯한 함선건조용자재와 설비의 국산화 확대 등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의 의도대로 작업을 진행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같은 로미오급이라고 해도 각각의 잠수함마다 제작 시기가 다르므로 기술적 특성이 조금씩 다르다. 개조작업이 동일하게 실시되기가 어렵다. 이는 개조 기간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전술핵공격잠수함의 표준이라는 김군옥영웅호는 개조에 얼마나 걸렸을까. 김 위원장은 “과업을 준 지 4년이 지났고 당 대회가 계획을 승인한지도 2년이 지났다”고 밝혔다. 이는 4년전인 2019년 7월 김 위원장의 잠수함 개조 현장 시찰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체제 특성상 김 위원장이 시찰하기 전에 SLBM 탑재 방안 연구와 실천계획은 이미 수립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감안하면 김군옥영웅호 진수까지 4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속함의 개조작업도 이에 못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김 위원장이 ‘공정의 급속한 추진’을 강조해도 전술핵공격잠수함 전력화가 지지부진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북극성-3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수면 위로 솟구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전술핵공격잠수함이 SLBM 운용능력을 과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바다에서 전술핵 탑재 탄도미사일을 휴전선 이남으로 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지상군의 KN-23, 순항미사일 등과 더불어 바다에서도 남한을 겨냥한 핵 전력이 추가되는 것은 한·미에 긍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북한 비핵화는 그만큼 더 멀어지고,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기대마저 사그라들게 한다.
북한이 SLBM 과시를 위해 과장이나 기만을 했을 수도 있고, 잠수함의 성능이 실제로는 매우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잠수함에서 발사된 SLBM이 유사시 한 발이라도 국내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면 경계를 해야 한다.
북한이 건조 경험을 토대로 더 우수한 잠수함이나 핵추진잠수함 제작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잠수함의 성능과 운용개념 등을 철저히 분석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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