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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억마리 꿀벌 실종 미스테리.."인간 때문이다" 전문가 경고

자연생태계

by 석천선생 2022. 4. 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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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준 입력 2022. 04. 24. 08:00
지난 7일 오후 광주 서구 서창동 한 양봉장에서 한 양봉업자가 벌통에서 소비 한장을 꺼내 들고 있다. 해당 농장에서는 130통에서 사는 꿀벌이 집단폐사해 4천여만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뉴스1

“꿀벌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면, 인류는 4년밖에 살아남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말로 알려진 이 가설은 노벨문학상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책 ‘꿀벌의 생활’(1901)에 나오는 문장이라고 한다. 꿀벌의 중요성을 내다본 벨기에 작가의 글은 100년이 지나 한국 사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꿀벌이 실제로 사라지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7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겨울에만 국내에서 월동 중인 사육 꿀벌 약 39만 봉군(약 78억 마리)이 폐사 피해를 입었다. 전체(240만 봉군·약 480억 마리) 사육 꿀벌의 16%가 넘는 수준이다. 국내에 서식하는 벌은 200종 이상이며 사육 벌이 아닌 야생 벌의 개체 수는 추정이 어렵다고 한다. 그 중 꿀을 대규모로 모으고 저장하는 꿀벌은 토종벌(Apis cerana)과 양벌(Apis mellifera) 두 종 뿐이다. 꿀벌 대부분은 인간이 기르는 벌이라고 한다. 2020년 기준 국내 사육 꿀벌의 3.7% 정도인 토종벌은 사육 군수가 2009년 38만 봉군에서 2020년 9만 봉군으로 급감했다. 미국에서 2006년 처음 보고된 꿀벌 군집붕괴현상(CCD)이 북남미, 유럽에 이어 한국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전 양봉학회장인 이승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는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건 상징적인 얘기”라면서도 “식량 생산이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엔 식량 농업기구(UN FAO)에 따르면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르는 작물 종의 약 75%가 꿀벌·나비 같은 화분 매개 동물의 수분에 의존한다. 사과·수박·자두 등 과일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교수는 “인간이 집약적 농업을 하면서 경작지가 넓어지고, 상대적으로 꿀벌이 살 곳이 줄어들면서 자연 수분이 이뤄지기 어렵게 됐다”며 “현대 사회에서 화분매개 곤충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고 했다. 2008년 국제환경단체 ‘어스워치’는 꿀벌을 지구에서 대체 불가능한 생물로 꼽기도 했다.


꿀벌에 스트레스 누적…집단면역체계 약화


그는 CCD가 ‘인간에 의해’ 촉발됐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꿀벌들의 집단 면역체계에 스트레스가 누적된 것”이라며 기후 온난화와 이동 양봉, 살충제, 기생충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과학적으로 제일 가능성이 높은 건 살충제”라고 했다. 2017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꿀벌의 귀소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이 살충제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계곡 입구에서 열린 미선나무 실외전시회에서 꿀벌 한 마리가 미선나무 꽃의 꿀을 빨기 위해 날아오고 있다. 김성룡 기자
기후 온난화의 영향도 큰 걸로 입증됐다. 이 교수는 “꿀벌은 겨울을 나기 위해 봉구를 형성한다. 뭉쳐서 온도를 높이고 움직임을 줄이는 것”이라며 “그런데 갑자기 기온이 올라가면 봉구가 깨진다. 여왕벌이 알을 낳기 시작하고 일벌이 먹이를 가지러 나간다. 그러다가 다시 추워지면 얼어 죽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남부 지역에서 먼저 꿀벌 실종 현상이 보고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동 양봉도 주목받는 요인이다. 이 교수는 “원래 꿀벌은 한 장소에 있는데, 꿀을 만들거나 수분을 돕기 위해 벌집을 차에 태우고 돌아다니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귀소성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토종벌에겐 2009년부터 유행한 낭충봉아부패병이 치명적이었다. 이 교수는 “토종벌의 원산지는 동남아인데, 국내에 다양한 개체군을 들여오지 못해 ‘유전적 병목 현상’(후손들의 유전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다 보니 전염병에 더 취약해진 것”이라고 했다.

꿀벌은 오래 전부터 조금씩 줄어들어 왔지만, 최근에야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미국 정부에서 처음 이슈화를 한 뒤, 유럽과 호주에 이어 한국도 이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며 “미국은 세계 최대의 농산물 수출국으로서 농무부의 목소리가 컸다. 농작물 화분 매개가 안 되면 목초 농작물도 생산할 수 없고, 소고기나 우유도 못 만들게 된다. 낙농업과 축산업 등 식품업계가 다 무너질 수 있으니 미 정부가 나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 한 양봉농가에서 농민이 비어 있는 벌통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밀원식물과 계통 다양성 확보해야”


그는 꿀벌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녹지 공간이나 산지에 피나무, 옻나무와 같은 밀원식물을 더 심어 꿀벌이 자연에서 꿀을 채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래야 꿀벌의 수가 늘어나고, 면역력도 높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꿀벌의 세계적인 계통을 확보해 유전자은행이나 육종 연구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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