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 입력 2019.09.11. 00:04 수정 2019.09.11. 06:49
자녀의 부양 능력을 판정할 때 아들·딸 차별이 사라진다. 기초생활보장제를 시행한 지 20년 만이다. 또 자녀의 재산 기준을 대폭 완화해 부양 부담을 줄인다. 이와 별도로 기초수급자 소득을 따질 때 근로소득에서 30% 빼준다. 생계비 지원금을 늘리고 기초수급자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서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식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고쳐서 내년에 시행할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그동안 미흡하다고 지적을 받아온 분야를 골고루 개선했다
. 부모가 기초수급자가 되려면 자녀의 소득·재산을 따진다. 서울에 사는 A씨 부부(남편 67세, 아내 55세)에게 월 270만원을 버는 아들이 있다고 치자. 아들의 소득이 171만원이 안 되면 A씨 부부가 기초수급자가 되고, 287만원 넘으면 탈락한다. 아들 소득은 171만원과 287만원 사이에 있다.
이럴 때는 99만원(270만원-171만원)의 30%를 부모 부양비용으로 간주한다. 부양능력이 조금 있으니 이만큼(약 30만원)은 부모에게 생활비로 제공한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정부는 A씨 부부에게 지급할 생계비에서 30만원을 제하고 57만원가량을 매달 지원한다. 만약 아들이 아니라 결혼한 딸이라면 99만원의 15%(약 15만원)만 부모 부양비용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딸의 부모 부양 부담이 아들의 절반이다. 아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전통적 관념이 반영됐다. 2000년 기초생보제를 시행하면서 차별해왔다.
하지만 내년에는 부양비 부담을 10%로 낮추되 아들·딸 구분을 없앤다. 이럴 경우 A씨의 생계비 지원금은 57만원에서 80만원으로 오른다. 복지부는 부모 부양 책임이 모든 자식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반영해 차별을 없앴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또 자녀의 부양 부담을 덜기 위해 재산 기준을 낮춘다. 자녀의 부동산·금융재산·자동차를 소득으로 환산할 때 가액의 4.17%를 월 소득으로 잡는데, 앞으로는 2.08%로 낮춘다. 부산의 85세 노인은 57세 아들(5인가구)의 집·금융재산 등 때문에 생계비를 받지 못하지만, 내년에는 23만원을 받게 된다.
중증 장애인은 부모의 소득·재산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부모가 부양의무자가 되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
또 기초수급자나 신규 수급자가 되려는 사람(25~64세)의 소득을 따질 때 근로소득에서 30%를 빼고 계산한다. 기초수급자인 B(40)씨는 노동일을 해서 월 80만원을 번다.
근로소득을 다 반영해서 월 생계비 지원금으로 33만원을 받는데, 내년에 근로소득 공제가 시행되면 60만원으로 늘어난다. ‘탈(脫) 기초수급’이 쉬워질 전망이다.
복지부는 이밖에 기초수급자의 재산 공제 폭을 10년 만에 대폭 확대했다. 가령 대도시는 5400만원에서 6900만원으로 늘어난다. 이런 조치를 시행하면 내년에 약 7만 가구가 새로 기초수급자가 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부양의무자 제도 때문에 기초수급자에서 탈락한 극빈층이 93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기초수급자보다 더 가난한 데도 국가 지원을 못 받는다”며 “내년에 제도를 개선하면 극빈층 9만명이 매달 평균 30만원의 생계비를 새로 받게 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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