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일본 그리고 미국의 속내

독도,위안부,강제징용,경제도발

by 석천선생 2019. 2. 22. 19:30

본문

2013.02.23 17:55        


독도는 어느 나라 영토인가?

2013년 2월 22일, 일본 정부가 주도한 ‘다께시마의 날’ 행사가 일본 전국적으로 치러졌다. 일본 우익의 광기와 우리 국민의 규탄 함성이 모두 높고 거칠다.


우리는 독도, 미국은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 일본은 다께시마라고 부르는 이 섬의 영유권은 어느 나라에 있는가? 

국제법에 의하면 "임자 없는 섬(땅)은 먼저 점유하는 나라가 영유권을 갖는다."고 되어 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이 발간한 객관적 사료를 중심으로 아래와 같이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냉정히 판단할 때 이 섬은 어느나라 영토일까?

 

*1877년 3월 29일, 독도영유권에 관한 일본 내무성의 질의에 대한 태정관(당시 일본정부의 최고권력기관)의 지령문-“죽도(당시 울릉도의 일본식 이름)외 1도(독도)는 본방(本邦-일본)과는 관계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1877년 일본육군참모국에서 제작한 ‘대일본전도’에 독도는 포함되지 않았다.

* 1899년 일본육지측량부가 제작한 일본지도에도 독도는 없다.

*1900년 10월 25일, ‘울도와 석도(독도)는 울릉군수 관할’이라는 대한제국 칙령 41호가 제정·반포 되었다.

*1905년 2월 22일, 일본은 독도를 ‘다께시마’라는 이름으로 ‘시마네현’에 편입. 해군의 주요 작전기지로 활용, 5월 29일 일본 연합함대는 러시아의 태평양제2함대를 궤멸시켰다.

*1905년 7월, 태프트-가쓰라밀약, 9월 포쓰마쓰 러일강화조약, 11월 을사늑약 강제조인, 대한제국은 외교 국방권을 일본에 넘기고 그 보호령이 됐다.

*1954년, 한국이 독도에 상륙,  실효지배(?)를 시작했다.

*2005년 3월 16일,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는 2월 22일을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

*



미국 CIA의 '월드 팩트북'의 해괴한 기록

 

* 세계 주요기관들이 국가정보를 표기할 때의 기준 자료인 CIA의 '월드 팩트북'에 동해는 SEA OF JAPAN, 즉 일본해로, 독도는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로 표기.

* '월드 팩북'은 1954년 한국에 점령당한 ‘리앙크루암’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기록.

* 국제분쟁의 근거가 되는 것이므로 시정해 주도록 우리가 많은 노력을 들였으나 미국 정부는 한마디로 요지부동.

* 리앙크루암 표기 옆에는 ‘독도와 다케시마를 함께 표기’해 마치 분쟁지역이라도 되는 양 일본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

 



 러일전쟁 중인 1905년에 어떤 일이 또 일었던가?

더보기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특명을 받은 육군장관 태프트가 일본 총리 가쓰라와 만나 “필리핀은 미국이, 조선은 일본이,” 차지하기로 밀약하였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미국의 공조 덕에 을사늑약을 쉽게 강제 체결하였다. 외교권과 국방권을 빼앗긴 일제총감치하에서 시마네현 강제편입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주장할 수 없었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격렬히 규탄하는 우리 애국자나 정부가 다 같이 미국에게는 한 마디 말이 없다. 왜 그런가?

태평양전쟁을 종결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산프란시스코 강화조약'(평화조약)에서 독도의 한국령 귀속을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억지 주장에 힘을 실었는데도 아무 말이 없다. 왜 그런가? 

굴욕적 한일협정에 미국의 압력이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아는데도 미국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왜 그런가?

태프트-가쓰라 밀약은 한낱 과거사가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목줄을 죄는 검은 손이다. 똑바로 알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바보 노예가 된다.

 



출처: https://ohjr.tistory.com/221 [오종렬의 대장간]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