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입력 2018.12.23. 06:01 수정 201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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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의 밀담]
한반도 상공에서 유럽제 수송기 A400M를 볼 수 있을까. 최근 사건 때문에 이런 기대감이 커졌다. 스페인의 A400M과 한국의 훈련기인 KT-1과 TA-50을 맞바꾸자는 ‘스왑딜(Swap Dealㆍ교환거래)’ 얘기다.
이런 맞교환은 한국 방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양국의 윈-윈 게임이 될 수 있다. 스페인은 A400M 27대를 주문했지만,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13대를 운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국에 건넬 A400M 4~6대는 이 13대의 일부다. 반면 한국으로선 지난 9월 미국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탈락한 한국우주항공(KAI)에 활로를 뚫어주고, 유럽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다.
이에 앞서 공군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2022년까지 대형수송기 3대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군은 당시 “원거리 신속 전개, 재난구호, 국제평화 유지, 재외국민 보호 등을 위해 대형수송기를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유사시 대량살상무기(WMD) 등 북한의 핵심 시설을 신속히 확보하는 ‘입체기동 작전’이 국방개혁 2.0의 과제로 들어가면서 A400M과 같은 수송기가 필요해졌다. 수송기로 장갑차를 실어날라 경보병 위주의 공수부대를 엄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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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아시아 전역에 한 번에 날아가는 A400M
A400M은 유럽 합작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에서 만들었다. 프랑스ㆍ독일ㆍ스페인이 에어버스의 지분을 갖고 있다.
한국 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수송기 가운데 최신인 C-130J 수퍼 허큘리스는 항속거리가 5400㎞다. 아프리카까지 가려면 1~2개 나라를 거쳐야 한다. 과거 해외파평 때 C-130은 중간 기착해서 기름을 넣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에어버스 관계자는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원을 최대 116명까지 태울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부대원은 A400M 내부의 간이의자인 밀리터리 시트(Military Seat)에 앉는다. 밀리터리 시트에 직접 앉아보니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머리 받침대도 있어 장거리 비행의 피로감을 덜 수 있다.
보통 군용 수송기 안에선 소음 때문에 비행 중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스펀지로 만든 귀마개나 헤드셋을 꼭 써야 한다. 그러나 A400M은 주행 소음이 가장 심한 이륙 때도 옆 사람과 어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다. 진동도 거의 없는 편이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의 시작 장면에서 주인공 이선 헌트(톰 크루즈)가 비행 중인 신디케이트의 무기 수송기에 매달려 간다. 이 수송기가 A400M이다.
여러모로 보면 한국-스페인의 스왑딜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게 아니다. 넘기가 만만찮은 다섯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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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특혜 논란 비켜갈 수 있을까
잇따른 방산비리 때문에 무기 도입 과정이 아주 엄격해졌다.
방위사업법 17조 1항엔 “무기체계 등의 소요가 결정된 경우에는 당해 무기체계에 대한 연구개발의 가능성ㆍ소요시기 및 소요량, 국방과학기술수준, 방위산업육성효과, 기술적ㆍ경제적 타당성, 비용대비 효과 등에 대한 조사ㆍ분석을 한 선행연구(先行硏究)를 거친 후 방위력개선사업의 추진방법을 결정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예외 사항으로 “전시ㆍ사변ㆍ해외파병 등 방위력개선사업에 대한 긴급한 무기체계 등의 소요가 있는 경우”를 적시했다.
무기 도입 과정은 육ㆍ해ㆍ공군 등 각 군의 소요제기 → 합동참모본부의 소요확정 → 사업추진 기본전략의 수립 →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의결 → 국방연구원(KIDA)의 사업타당성 검토 → 예산 반영 등을 거쳐야 한다. 자체 개발이 아닌 해외 구매라면 비교와 입찰 등 절차가 따른다. 이런 절차를 건너 뛰고 A400M으로 사전에 정해버린다면 특혜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17조 1항의 ‘방위산업육성효과’을 제시하면서 스왑딜이 한국의 방산을 살리기 위한 조치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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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앞으로 물물교환 거래가 늘까
스왑딜이 이번만 적용하는 예외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선례로 남아 다른 거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같은 방산 후발국가의 주요 시장은 대부분 유럽과 같은 선진국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에서 국산 무기를 사면서 대금의 일부를 자국의 무기로 지불한다고 요구할 길이 놓여진 셈이다.
또 일부 국가에선 국산 무기를 수입하는 대가로 현물로 결제하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고 한다. 한국의 방산업체들이 물물교환으로 받은 현물을 제대로 현금화할지 미지수다.
핀란드는 1992년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지금은 보잉이 인수)로부터 F/A-18 전투기 64대를 사면서 대금 30억 달러의 일부를 순록 고기로 냈다. 엄밀히 말하면 당시 핀란드가 전투기 값을 순록 고기로 치른 게 아니다. 일정량의 순록 고기를 미국 시장에 판매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을 맥도널 더글러스에게 요구했다.
태국은 2008년 스웨덴 사브의 JAS-39 그리펜 전투기 6대를 냉동 닭고기와 고무, 쌀과 맞바꿨다. 아르헨티나는 2014년 러시아에서 Su-24 공격기 12대를 빌려오면서 임대료를 쇠고기와 밀로 내겠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영국에서 나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 보도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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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2022년까지 받을 수 있을까
공군의 희망처럼 2022년까지 A400M을 가져오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무기 도입절차를 밟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1년 반이다. 또 스페인이 준다는 A400M은 아직 생산이 안 된 상태다. 주문이 들어간 뒤 이를 제작하는 과정이 빨라도 1년 반이다. 모든 게 순조롭다면 공군이 2022년 A400M 1호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왑딜이 첫 사례인 만큼 최고의 시나리오로 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스왑딜 협상은 아직 초기 단계다. 엄밀히 말하자면 정식 협상의 사전 단계다. 관련 법률검토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하는 방산업계 관계자는 “협상ㆍ검토ㆍ예산ㆍ제작 등을 거쳐 우리 손에 A400M을 받기까지 기간이 최소 5년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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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성능에 만족할까
A400M에 대한 공군의 입장은 ‘마다하지는 않는다’이다. 그러나 공군이 정말 원하는 수송기가 따로 있다. 미국 보잉의 C-17 글로브매스터III다. 공군이 국정감사에서 언급한 ‘대형수송기’는 C-17를 뜻한다. 그런데 C-17은 2015년부터 생산을 그만뒀기 때문에 A400M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A400M은 C-17과 C-130J의 중간을 노리고 만든 수송기다. A400M은 C-17보다 싸지만, C-130J보다 더 많이 싣고 더 멀리 날아간다. 반면 C-17보다 수송량이 적고, C-130J보다 운용비가 많이 든다.
독일과 영국은 A400M 도입 규모를 줄였다. 물론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예산이 준 탓이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프랑스는 C-130J 4대를, 독일은 6대를 각각 주문했다. 독일과 프랑스는 A400M 생산국이다. 그런데도 두 나라는 C-130J 합동부대까지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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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대형수송기가 꼭 필요할까
A400M과 같이 멀리 날아가 많은 인원을 태울 수 있는 수송기의 필요성은 지난 10월 나왔다. 당시 태풍 ‘위투’로 사이판에 한국 국민들이 고립되면서다. 공군은 C-130H 수송기를 보내 799명의 국민을 안전하게 국내로 데려왔고, 구호품을 전달했다.
공군 관계자는 “지난 10월과 같은 재외국민 이송은 공군이 지난달 1호기를 들여온 공중급유기 A330 MRTT로 충분하다. 이 항공기엔 최대 300명까지 태울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합동참모본부는 대형수송기에 대한 소요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대형수송기 소요는 입체기동 작전 때문에 탄력을 받았는데, 입체기동 작전이 최근 국방개혁 2.0의 과제에서 사실상 폐기됐다”고 전했다. A400M으로 쏠린 분위기는 일단 잠잠해졌다는 게 정부 소식통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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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00M의 경쟁자들은 누구
군 일각에선 재검토 과정에서도 대형수송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면 다른 기종들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 과제에 ‘구호활동 및 자국민 지원 임무’를 추가하면서 대형수송기 사업의 불씨를 남겼다.
C-17의 경우 미국 공군이 추가발주를 검토하고 있다. 제조사인 보잉은 미국 공군의 추가발주량이 충분하면 폐쇄한 생산라인을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터기 등 미국의 동맹국에서도 C-17 수요가 있다면 생산라인 재가동의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한 방산업계 관계자는 “쿠웨이트(2대)ㆍ카타르(8대)ㆍ아랍에미리트(8대) 등 일부 중동국가에서 C-17을 샀는데,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고 쓸모도 많지 않다”면서 “이들 국가가 C-17을 중고로 내놓을 경우 한국이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항속거리가 짧은 C-130J은 한국 공군이 이미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운용이 편리하다. Il-76은 값이 싸고 세계적 베스트셀러이지만 북한도 이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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