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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톨릭 바로알기

by 석천선생 2018. 12. 1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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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스페인 미술관답사
가우디와 떠나는 바르셀로나 여행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으나 음악가는 음악으로 요리사는 음식으로 화가는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는 그가 남긴 건축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아직까지 현재 진행형
으로 남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얽힌 이야기를 필두로 건축물의 내부와 외부의 모습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30대 초반부터 죽
기 직전까지의 가우디의 집념이 담긴, 그 열정의 언어에 귀 기울여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가우디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Gaudi and Sagrada Familia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8대 건축가인 조르디 보넷 아르멩골이 취임하여 건설을 주도하고 있다. 1882년 3월 19일 착공식한 이
후 현재까지 8명의 건축가들이 성당 건축에 참여했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두고 마치 안토니 가우디 혼자
의 작품인 양 얘기하는 것일까? 게다가 안토니 가우디는 1대 건축가 그러니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가장 먼저 설계한 사람도 아
닌데 말이다.
그래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

① 초대 건축가 비야르와 안토니 가우디
산업화로 인해 인간이 신을 멀리한다고 여겨 속죄할 성당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성 요셉 영성회의 주최자이자 종교 서적 출판사를 운
영하던 조셉 마리아 보카베아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립을 제안한 건 1874년의 일이다. 결국 그는 1881년 기금을 모아 바르셀로
나에 땅을 샀고, 당시 교구 건축가였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이하 비야르로 짧게 표기)에게 맡긴다. 그럼 비야르란 어떤
건축가였을까? 당시에는 가우디보다도
더 유명했던 것일까?

안토니 가우디는 가정 형편 때문에 바르셀로나 건축학교를 다니면서도 건축사무소에서 일을 했었다. 이때 비야르의 건축사무소에서
도 1876년까지 조수로서 일했었다. 그러니까 안토니 가우디는 비야르로부터 일을 배웠던 셈이다. 그러나 가우디는 비야르의 건축에
대해서 항상 비판적이었다. 시기를 보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2년 착공식을 했으니 그 때의 가우디는 고작 30살의 젊은 건축
가였다. 이런 걸 본다면 초대 건축가로 당시 교구 건축가로 유명했던 비야르에게 설계를 맡긴 건 충분히 이해할만한 일 아니겠는가.


② 안토니 가우디가 2대 건축가가 되기까지
건축물을 짓는 일이 어디 한 명의 건축가로 완성되는 일이던가? 비록 초대 건축가가 비야르이긴 했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그 중에는 조안 마르토렐도 있었다. 전체 공사 감독인 비야르는 대리석으로 대들보를 만들려고 했었고, 기술 고문을 맡은
조안 마르토렐은 돌조각을 쌓은 뒤 회반죽을 칠하는 만포스테리아를 권했다. 이렇게 둘의 이견 다툼으로 공사는 중단되고, 비야르는
감독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그가 물러난 이유는 비야르의 방식이 틀려서가 아니라 비야르는 애초부터 이 성당 건축에 그닥 관심이 없
었기 때문이 크다.


결국 조셉 마리아 보카베아는 공사 감독을 조안 마르토렐에게 제안했으나, 조안 마르토렐은 이를 거절하고 대신 젊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를 추천한다. 안토니 가우디는 1대 건축가였던 비야르의 조수로 일했던 경험도 있지만 조안 마르토렐의 조수로 일했던 적도 있
다.이미 조안 마르토렐은 젊은 건축가였던 가우디의 능력을 이전부터 인정한 터라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듯.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역대 건축가들
Architect History of Sagrada Familia

안토니 가우디가 1884년 조셉 마리아 보카베아의 제안을 수락함으로써 2대 건축가가 된다. 가만 보면 1대 건축가인 비야르는 말이 1
대 건축가였지 임기가 고작 1883년 착공부터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안토니 가우디는 이후 죽을 때까지 무려 43년간
성당 건설에 참여한다. 그럼 사그라다 파밀리아 역대 건축가들의 임기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래서 정리했다.

1대 건축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델 비야르 (1882, 1년)
2대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 (1883-1926, 43년)
3대 건축가: 도메넥 수그라네스 (1935-1938, 3년)
4대 건축가: 프란세스크 데 파울라 킨타나 (1943-1966, 23년)
5대 건축가: 이시드라 푸이치 보아다 (1966-1971, 5년)
6대 건축가: 유이스 보넷 가리 (1971-1981, 10년)
7대 건축가: 프란세스크 카르도네르 (1981-1997, 16년)
8대 건축가: 조르디 보넷 아르멩골 (1997-2012, 15년)
정리해놓고 보니 안토니 가우디가 가장 오래 맡았던 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가우디의 건축물로 얘기하
는 데에는 비단 맡은 기간 때문이 아니다. 1대 건축가가 비야르라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우디는 비야르의 건축에 비판적이었
던 사람이었기에 초기 설계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가우디의 열정 Gaudi's Passion
과연 어떻게 설계했길래 아직까지 건설중일까? 그의 걸작을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럴 만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의문을 가지지 않
을 수 없다. 1882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착공식을 올린 후부터 13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건설중이니 말이다. 그는 당시로서는
매우 급진적이면서 획기적인 방식의 설계를 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회중석(신자들이 앉는 곳) 지붕의
하중을 어떻게 기둥으로 버티게 할 것이냐라는 걸 꼽을 수 있겠다.

① 구조 설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회중석 1:25 모형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외관을 보면 모르겠지만 이걸 보면 좀 달리 보일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회중석 그러니까 신자들
이 앉은 신도석의 모형인데, 대부분의 벽은 거의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고, 기둥이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이러한 구조
를 위해서는 상당히 기술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는데,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에 말이다.) 가우디는 많은 시간을 그 해법을 연구
하는 데에 투자했고, 그가 당시 만들어놓은 수많은 설계들은 그의 사후에도 건설하는 데 기반이 된다.
가우디의 계획에 따른 성당의 보울트 배치도

위의 사진은 '안토니 가우디展'에 전시된 도면인데, 안토니 가우디가 그린 도면은 아니다.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데에 따라 성당 내
에 보울트(아치 형태의 천장, 지붕 구조를 말함) 배치도를 표시해놓은 도면으로 1959년 라몬 베렝게르가 그린 도면이다. 사그라다 파
밀리아 성당이 안토니 가우디의 작품이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② 조각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사용된 모형들

가우디와 떠나는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이후에 살펴볼 작품들에서도 나타나지만 가우디는 비단 건축에만 관여한 게 아니다. 건축물에
사용되는 조각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조각들은 일단 석고 모형으로 제작을 해서 모자란 부분은 수정을 거친 후, 조각을 둘 곳에 1:1
로 제작한 모형을 갖다 놓고 최종 수정을 거친 다음에야 조각을 만들었다. 그만큼 하나하나 신경을 안 쓴 게 없을 정도다. 물론 이 석
고 모형은 가우디가 제작한 게 아니라 그의 중요한 협력자 중의 하나인 조각가 요렌스 마타말라가 제작했다.
튜브형 종 모형 (1983)

'안토니 가우디展'에 전시된 튜브형 종 모형은 1983년에 제작된 것인데, 가우디가 디자인한 종 모형에 기초해서 만들었다. 건축가가
뭐 이런 것까지 디자인하나 싶겠지만 그만큼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다.

③ 성서 연구
가우디가 직접 적은 기록으로는 거의 유일한 1878년의 '레우스의 수기'(그가 건축학도일 때 적은 일기라 생각하면 된다.)에서 건축이
도달할 최종 지점으로 성당을 언급했었다. 말이 씨가 된 것인지 결국 그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을 맡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설과 함께 숨을 거둔다. 그런데 그는 성당을 건설하면서 건축 기술의 해법만 연구했던 게 아니라 기독교의 의식이나 원리에 대
해서 연구하는 학문인 전례학도 함께 연구했다. 그러니까 단순히 멋진 성당을 만들려고만 했던 게 아니라 거기에 의미를 담은 성당을
만들려 했던 것.
아이들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한 어린이 두상 모형

이 조각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마치 실제 아이의 모습을 담은 것 같지 않은가? 이 조각은 헤롯 왕이 죽이려한 수백 명의 아이들
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조각의 석고 모형이다. 재밌는 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사용된 조각 중에 사람 조각은 공사 인부들의 가
족이나 성당 주변 이웃들이 모델이 되곤 했는데, 이 어린이 두상 모형은 죽은 채 태어난 아이를 석고에 담아 본을 뜬 것이다. 그래서
정말 실제인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외에도 가우디의 열정이 안 미친 곳은 없을 정도로 그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위해 바친 열정은 대단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란 게 그렇듯 공사가 항상 순탄하게만 진행된 건 아니다. 1910년 재정난으로 공사 진행이 어려워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5월
가우디는 류머티즘까지 앓게 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가는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몸과 마음이 지치는 건 상관없다는 듯 직
접 헌금을 모금하러 다니면서 성당 건축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가우디 전후의 성당 Before & After

그럼 가우디가 맡았을 당시의 성당 건축 모습과 가우디가 사망한 후의 성당 건축 모습은 어떠했을까?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안토니 가우디展'에는 이에 관한 사진도 함께 전시가 되어 있어 이를 사진에 담아왔다.
가우디가 성당 건축을 맡았을 당시의 상태
가우디가 사망한 후의 성당 상태

외부 External

얘기할 수 있는 건 많지만 이 지면에 모두 언급할 수는 없어, 특징적인 부분들 그리고 가우디가 직접 만들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설
명한다. 참고로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전체가 아니라 가우디가 건축한 지하 예배당과
탄생의 파사드만이다.


① 12사도를 표현한 옥수수 탑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먼발치에서 보아도 그 위엄을 빛내고 있다. 사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전 세계
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바르셀로나에서 열렸을 때다. 그만큼 바르셀로나에서 눈에 띄는 건축물. 하
늘 높이 치솟은 탑들이 다 완공된 건 아니지만(총 18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세 개의 파사드(탄생, 수난, 영광의 파사드로
파사드는 출입문이 있는 외벽을 뜻하니 결국 성당의 삼면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위에 각각 4개씩 세워져 12사도를 표현하는 옥수
수 탑(생김새 때문에 이렇게 불린다.)은 현재 8개가 완성되었다.

② 탄생의 파사드
탄생의 파사드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동쪽 즉 해가 뜨는 자리로 가우디의 숨결이 담긴 곳이다. 그가 탄생, 수난, 영광 세 개의 파사드
중에서 탄생의 파사드를 맡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시가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서쪽으로 수난의 파사드를 먼저 만들자고
했지만, 기부금 유치 면에서나 대중들에게 수난이 아닌 탄생 즉 밝은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 탄생의 파사드를 먼저 지어야 한다고
했던 것. 참고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현재 성당의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건설중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어린이 두상 모형도 탄생의 파사드에 사용할 조각을 위해서다. 전체적으로 보면 얼핏 과해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게
가우디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각 하나 하나가 상당히 디테일하게 표현되어 있음을 물론 매우 사실적이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
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이런 디테일한 조각들이 한데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예수의 탄생을 표현하고 있다. 파사드에는 세 개의 문에
있는데, 이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해당하는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한다. 그 중에 제일이라는 사랑이 중앙 문에 해당하며, 오른쪽
문은 믿음, 왼쪽 문은 소망을 뜻한다.

③ 수난의 파사드
해가 지는 서쪽에 위치한 수난의 파사드. 앞에서 언급한 탄생의 파사드와 마찬가지로 파사드의 조각 위로는 탑들이 솟아올랐으며 그
아래로는 세 개의 출입구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로 통하는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수난의 파사드에도 돋보이
는 건 역시나 조각이다. 가우디의 바통을 넘겨받아 1989년 스페인 조각가 요셉 마리아 수비라치가 제작한 수난의 파사드 조각들은 얼
핏 보기만 해도 탄생의 파사드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또 다른 매력을 가진다.
탄생의 파사드 조각이 실물 크기에 집중하여 리얼리티를 고려한 반면, 수난의 파사드 조각은 사실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추상적이며
현대적으로 비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이는 각각 탄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파사드의 특성에 기인하기도 할 것이다. 고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방문하게 된다면, 각각의 파사드를 대조해보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는 일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겠다. 덧붙여 수
비라치의 수난의 파사드 조각을 면밀히 살피다 보면 반가운 가우디의 얼굴을 만날 수 있으니 찾아보길 바란다.

④ 영광의 파사드
탄생의 파사드 앞에는 연못이, 수난의 파사드 앞에는 공원이 있는 반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남쪽인 영광의 파사드는 건물로 둘러
싸여 있다. 아직 많은 부분이 건설중이긴 하지만 가우디가 생전에 구상했던 성삼위일체 원리에 입각하여 건설되고 있는 중이다. 이 밖
에도 외부의 주요 부분으로 12사제를 표현한 종탑 위로 주교들을 상징하는 타일 모자이크의 첨탑과 성당 벽면에 새겨진 성경의 내용을 들 수 있다.


내부 Internal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안과 밖이 모두 웅장하고 섬세한 곳으로 외부만큼 내부 역시 볼거리가 풍성하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
에서 아래로 쉴 틈 없이 둘러보다 보면 이 광경을 오래도록 눈에 담아두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한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긴 기둥부
터 살펴보자.

① 기둥
성당 내부의 나무를 닮은 무수한 기둥은 이게 숲으로 착각할 정도로 많다. 지붕을 기둥만으로 지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이런 방식은 건축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기법으로 일컬어진다. 얼핏보면 마치 외계인의 우주선에
들어온 듯한 느낌마저 주는데, 웅장함에 독특함까지 더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② 보울트
보울트 중심에는 조명 기구가 달려있다. 이 조명 기구를 밝히느냐 밝히지 않느냐에 따라 그 차이가 확연한데, 조명을 밝히지 않았을
경우에는 기둥들이 화사하게 핀 잎사귀 모양의 볼트를 떠받치고 있어 나무의 모습으로 완성되고, 조명을 밝히면 위에서 내려오는 조
명이 반사되어 빛을 발하는 하늘의 별을 연상케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가우디가 끊임없이 강조했던 자연을 읽을 수 있다.

③ 스테인드 글라스
기둥과 보울트로 숲을 이룬 성당 내부가 이처럼 화려할진대 여기에 스테인드 글라스 기법을 더한 창은 더욱 아름다운 분위기를 연출
한다. 가우디가 그린 기본 계획도를 바탕으로 화가 호안 빌라 그라우가 1999년부터 제작한 것. 뚜렷한 색채와 추상적인 문양의 조화가
햇빛과 만나는 순간 영롱할 따름이다. 사실 내외부 모두 직접 가서 봐야 실감할 수 있겠지만, '안토니 가우디展'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
당 섹션에 있는 와이드 영상이 그래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잘 표현한 영상이니 가게 된다면 꼭 보길 바란다.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Completed Sagrada Familia

가우디 서거 100주년인 2026년을 완공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 때까지 완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입장료와 기부금만으로 건설
자금을 마련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건설해야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바르셀로나에 갔을
때, 우리나라 돈 만 9천원에 해당하는 15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구경하는 게 도와주는 일일 테다. 아직도 가우디가 남긴 열정의 언어를
쌓아올리고 있는 지금 우리는 CG를 통한 영상으로 앞으로 지어질 부분들과 완공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https://youtu.be/RcDmloG3tXU

We build tomorrow | Construïm el demà | Construimos el mañana[EN] Final stages of Gaudí's masterpiece. --- [CA] Recta
final de l'obra mestra de Gaudí. --- [ES] Recta final de la obra maestra de Gaudí. Production|Realit...www.youtube.com

편집,사진: 풍림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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