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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땅 '교우촌'엔 오늘도 만종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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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천선생 2018. 11. 2.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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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익산=이해인 기자 입력 2018.11.02. 03:05       

전주교구 대표 교우촌과 공소

이런 산골짜기에도 마을이 있을까 싶었다. 꼬불꼬불 산길을 10여 분 자동차로 달려 다다른 마을엔 스스로 세상과 격리시키면서 지켜온 신앙이 있었다.

124년 전 전북 완주군 화산면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 되재성당. 이곳엔 지금도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70~80대 주민 신도 10여 명이 모인다. 송인환(71) 루카의 주재로 그 주 자신이 한 선교 활동 이야기를 나누고 기도를 올린다. 이곳은 주민 50여 명 중 30여 명이 천주교 신자인 교우촌(敎友村)이다.

교우촌은 19세기 천주교 박해 시기에 피란한 신자들이 산골짜기에 만든 종교 공동체다. 1836년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1400여곳의 교우촌이 있었다. 이곳'되재'라는 이름은 고개를 넘기 매우 되다(힘들다)고 해서 지어졌다고 한다. 첩첩산중 척박한 땅에 모인 신자들은 화전을 일궈 생계를 유지하며 신부도 상주하지 않는 '공소(公所)'에 모여 신앙 생활을 이어갔다. 사제가 없어 정식 미사를 드리진 못하지만 평신도 대표인 공소회장이 공소 예식을 주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인 전북 완주군 되재성당 앞에 이 마을 평신도 대표인 송인환(왼쪽)씨가 전주교구 김봉술 신부와 함께 앉았다. 송씨는 “성당 종이 마을에 울려 퍼지면 교우촌 주민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이해인 기자

전주교구 김봉술 신부는 "선교사들에 의해 교회가 생긴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 스스로의 힘으로 창설된 이례적인 경우"라며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과 그곳에서 생긴 공소가 한국 천주교의 뿌리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30~31일 전북지역의 교우촌을 찾았다.

교우촌에서는 일상이 종교였다. 전북 익산의 교우촌 성채골에서 태어나 여산성지 인근에서 자란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어릴 때 뛰어놀던 숲이 조선시대 참수형을 했던 숲정이 순교지, 목욕했던 강물이 수장형 했던 배다리 순교지, 학교 다닐 때 오가던 길이 백지사형 순교지였다"며 "그땐 순교가 어떤 의미인지도 잘 알지 못했지만 순교자들과 함께 호흡하고 자란 것"이라고 말했다. 되재성당 공소회장 송인환씨는 종탑을 올려다보며 "예전엔 종소리가 울리면 밭일을 하다가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했다. "성당의 종은 마을 대소사를 함께했죠. 불나면 사람들 모으고,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면 축하해준 게 종소리였죠." 공소는 교육의 장이기도 했다. 신자들은 "공소에서 한글을 가르쳐 시골인데도 한글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없었고 선교사들이 마을 주민에게 측량 기술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센인 교우촌인 전북 고창 호암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강칼라 수녀.


전북 지역 교우촌들은 닮은꼴이었다. 1893년 세워진 전북 정읍 신성공소. 병인박해(1866) 이후 형성된 산골 교우촌 안에 있다. 임춘남(78) 베드로는 "어렸을 땐 교리문답 틀리면 신부님한테 호되게 혼나고 공소에서 내쫓겼다"며 "부모님은 자식 잘못 가르쳤다는 죄로 고해성사에 못 나왔다. 그렇게 주민들이 신앙을 지키며 살던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는 영성체를 위한 빵을 굽던 화덕 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한센인 수용소가 있던 고창 호암마을도 교우촌이다. 종교 박해가 아닌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피해온 이들이 모여 살며 신앙 생활을 했다. 1952년 공소가 설립된 이 마을엔 이탈리아 출신 강칼라 수녀(75)가 5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한센인 후손과 외부에서 이주해 온 주민 60여 명을 지금까지 돌보고 있다. 회색 스타렉스를 몰고 다니는 강 수녀는 "오늘도 거동이 불편하신 주민을 시내 병원에 모시고 다녀왔다"고 말했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천호산 아래 천호마을은 40가구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다. 기해박해(1839) 전후 충청도에서 피란온 신자들이 모여든 이 교우촌엔 지금도 문패에 '스테파노' '안토니오' 같은 세례명이 함께 걸려 있다. 이영훈 다미아노는 "천호성지는 순교 성인들의 묘도 함께 있어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비교적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천호마을과 달리 대부분의 교우촌과 공소는 소멸 위기다. 많을 때는 400 개 넘던 전주교구 관할 공소는 농촌 지역 신자 감소로 인해 지금은 74개만 남았다. 임춘남씨는 "이젠 종을 칠 젊은이가 없다"고 했고, 송인환씨도 "내가 떠나면 누가 공소회장을 맡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교우들이 함께 모여 살며 신앙생활을 지켜냈던 교우촌과 공소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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