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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저려왔다" 의사의 일기로 본 5·18

올바른역사,웨곡된역사

by 석천선생 2018. 4. 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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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희 입력 2018.04.01. 06:58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붙잡아 둔 모습. 당시 시위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젊은 사람이면 무조건 붙잡아 구타하고 무릎을 꿇린 채 트럭에 싣고 갔다. 2018.04.01.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뉴시스 DB) photo@newsis.com


'시민군 무장 시점 계엄군 집단 발포 이후'라고 기록
"헌혈 대열 앞서 고개를 숙인다" 저항권·대동정신도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묵은 일기를 꺼내봤다. 가슴이 다시 저려왔다. 나는 다시 5월 광주의 생명 하나와 빈 줄 하나를 맞바꾸는 일을 하고 있었다."

1일 광주시의사회가 발간한 5·18 의료활동 제1집에 따르면, 1980년 당시 전남대병원 소아과 레지던트는 '80년 오월의 일기'를 남겼다.

그는 일기에서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했다. 국가폭력에 항거한 시민 저항권과 대동정신도 기록했다.

''5월 광주'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도지는 병에 걸렸다'며 항쟁의 아픔을 오롯이 담았다.

5월18일에는 '전국 일원 비상계엄 확대. 새벽 0시, 공수부대원이 소아과 주치의 실에까지 난입해 수색했다. 낮, 공수부대들이 무차별 난타 시작. 참상'이라고 적었다.

5월19일에는 '공수부대들, 닥치는 대로 때리고 찌른다. 젊은 사람은 무조건 연행. 구석진 곳에 숨어있다 갑자기 튀어나와 행인을 두들겨 패 끌고 간다. 총칼 앞에서도 시위는 끊이지 않는다. 조대부고 학생 복부 총상'이라고 기록했다.

5월20일에는 '총상환자들이 들어오고 있다. 학생 데모에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시위대로. 모두 길거리에 나와 밥 해주고 물 뿌려주고 음료수 주고 태극기를 걸어준다'고 썼다.

5월21일에는 '병원이 소란해졌고, 사람들은 넋이 나갔다. 계엄군이 (옛 전남)도청에서 시위 군중을 향해 발포한 것이다. 헌혈자가 몰려들었다. 시민이 병원 2층에서 헬리콥터에 사격 시작. 그들(계엄군)은 전대병원 응급실에까지 최루탄을 던지고 달아났다'며 시민들의 무장 시점이 계엄군의 집단 발포 이후라는 점을 기록했다.

5월22일에는 '고립무원의 광주. 동료 의사가 운다. 피난 가려던 몇몇 가족이 난사 당했다는 소식. 헬리콥터가 계속 떠다닌다. 우리가 이길 수 없지만, 항복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틀림없다. 이제 와서 무릎 꿇기에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고 적었다.

5월23일에는 '도청 지하실에서 시체 38구 발견. 신분증 없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도록 페인트칠했다는 소문. 공수대의 조준 사격으로 들에서 일하던 시민이 맞음'이라고 썼다.

5월24일~25일에는 '비명에 간 형제들의 울음소리. 빗속에 서서 혹은 쪼그려 앉아 광주를 지키고 있는 이들을, 누가 과연 폭도라 부르는가'라고 적었다.

5월26일에는 '오후 궐기대회 때 지휘부들이 울먹였다. 시민들이여 힘을 냅시다. 돌아가지 마세요. 마지막을 예감하고 있었다. YWCA로 와주세요. 모여주세요. 시민군의 마지막 절규'라고 처절한 외침을 기록했다.

5월27일에는 '새벽 3시 잠을 깼다. 울며 호소하는 여인의 가두방송.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나와서 함께 싸워주세요. 5시경 계엄군이 시내를 장악했다. 투쟁 10일 광주의 영광은 막을 내렸다'고 항쟁 막바지를 눈물로 적었다.

그는 "여인이 '젊은분들 나와주세요. 나와서 함께 싸워주세요'라고 외친 그 때 의사이기 전에 '젊은이'였던 나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의사들의 노고는 양동시장 아줌마들이 시민군에게 물 뿌려주고 떡 넣어주던 마음, 헌혈하겠다고 몇 시간씩 줄 서 기다리던 시민의 행동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18에 대한 기억은 5월21일 헌혈 대열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나는 쓰러져도 좋아요. 내 피를 뽑아 우리 형제들을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하던 여인과 중학생들의 마음이야 말로 5·18을 규명하는 명확한 잣대 중 하나라고 믿는다. 아이들과 여인들조차도 참을 수 없었던 분노의 한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시민의 의로움을 전했다.

또 "만약 앞에 총이 놓였더라면 아이들은 분명 그 총을 들었으리라. 그리고 쏘았으리라. 저 무지한 폭력·압살·만행을 향해. 며칠 전 전두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욕하던 시민을 때렸었다. 아비의 모욕에 참을 수 없는 분노의 표현이었으리라. 그 아들에게 그 때의 심정으로, 죄 없이 찔리우고 죽임을 당한 80년 5월의 광주를 돌아봐주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사진은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 시민들의 시신이 안치된 상무관 모습. 2018.04.01.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뉴시스 DB)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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