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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 마음 짓밟는 한-일 우호 원하지 않아"

독도,위안부,강제징용,경제도발

by 석천선생 2017. 2. 20.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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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윤형 입력 2017.02.19 19:06 수정 2017.02.19 19:46

[짬] 재일동포 2세 김부자 도쿄 외대 교수

[한겨레]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지난해 말 부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문제를 재일동포 사회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에서 다양한 학문적·실천적 활동을 해온 김부자(58) 도쿄외국어대 교수는 지난 11일 도쿄 진보초의 한 찻집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동포 사회 내부에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민단과 한국 대사관이 한-일 우호를 원하는 동포들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차별을 당한다고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원치 않는 해결을 받아들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부산 소녀상 철거가 동포 바람’
민단 단장 발언에 지난달 항의문
“철거에 동의않는 동포들 많아
피해자 원치않는 해결 강요안돼” 90년이후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
젊은층에 정확한 정보제공 공들여

부산 소녀상 문제를 둘러싸고 재일동포 사회에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은 지난달 12일 오공태 재일본대한민국민단(이하 민단) 단장이 민단중앙 신년회에서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재일동포들의 공통되고 간절한 바람”이라고 발언한 뒤다.

“오 단장의 발언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저희가 가장 놀란 부분은 ‘공통되고 절실한 생각’이라는 부분이었어요. 동포 사회에도 이 문제를 보는 다양한 의견이 있어요. 철거가 좋다는 의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철거하면 안 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그러니 철거를 동포의 공통된 의견이라고 단언하면 안 되지요. 민단이 동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단 얘길 들은 적도 없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히 활동을 한 것도 없어요. 이 문제에 대해 뭐라 할 자격도, 대표성도 없지요.”

민단의 발언이 나오자 일본 언론들은 ‘소녀상 철거’가 동포들의 전체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대대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김 교수는 발언 직후 이 발언에 비판적 견해를 가진 동포들과 함께 지난달 18일 민단 본부와 대사관에 ‘항의문’을 보냈다. 사흘간 찬성인을 모았을 뿐인데 100명이 넘는 동포가 뜻을 함께했다.

재일동포 2세인 김 교수가 위안부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990년 12월로 거슬러 오른다. “그때 윤정옥 당시 정대협 공동대표가 일본에서 강연을 했어요.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나. 거기에 한국의 가부장제 문제가 있다’는 말씀을 했죠.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죠. 이후 피해 할머니들과 만나면서 식민지 조선의 여성사를 연구하기 위해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위안부 문제가 제 인생을 바꾼 셈이죠.”

강연 이후 김 교수 등 동포 여성 4명은 윤 전 공동대표가 1990년 <한겨레>에 연재해 화제를 모았던 4차례의 위안부 관련 기획 기사를 번역해 ‘우리는 잊지 않는다, 조선인 종군위안부’라는 팸플릿을 제작했다. 이후 <조선인 여성이 보는 위안부 문제>(1992)라는 책도 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종군위안부 문제 우리 여성 네트워크’(여성넷)라는 이름의 동포 여성 모임이 결성됐다. 재일동포 사회는 남북으로 나뉘어 있으니 이를 포괄하기 위해 ‘우리 여성’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이 무렵 위안부 문제에 대한 동포 사회의 관심과 열기는 대단했다.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힌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12월 도쿄에서 증언 집회를 열 땐 150명이면 꽉 차는 도쿄 한국와이엠시에이 9층 강당에 450명이 몰려들었다.

김 교수는 1998년에 마쓰이 야요리 전 <아사히신문> 기자(작고), 니시노 루미코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바우락) 공동대표 등과 함께 ‘전쟁과 여성의 폭력 일본 네트워크’(바우넷 재팬)를 만들었다. 이 모임이 주체가 되어 2000년 연 것이 ‘일본군 성노예제를 재판하는 여성 국제전범 법정’이었다. 바우넷 재팬은 2011년에 현재의 ‘바우락’ 체제로 발전한 상태다.

현재 가장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활동은 일본 사회에 위안부 제도와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다. “대학에서 가르치다 보면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느낍니다. 학생들에게 질문지를 받아 보면 ‘위안부는 날조다. 매춘부였다. 상행위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를 위해 2013년 8월 젊은이들이 인터넷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파이트 포 저스티스’(fightforjustice.info)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었다.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 등 위안부 문제 전문가들이 명확한 사료적 근거를 통해 여러 쟁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등으로도 자료를 읽을 수 있다.

그가 다시 강조한 것은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사죄와 배상이 필요합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자신의 언어를 사용해 공공장소에서 사죄하지 않았어요. 또 일본 정부는 10억엔은 ‘배상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배상으로 피해자들에게 지급되어야 합니다.” 이어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국가 범죄였다는) 사실 인정과 기억의 계승을 위해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기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한 것은 한-일의 우호였지만, 오 단장이 주장하는 우호와는 맥락이 크게 달랐다. “일본이 피해국인 한국 국내에 설치된 기념 시설을 철거하라고 요구할 권리가 없죠. 오히려 소녀상은 일본에 만들어야 합니다. 동포들은 물론 한-일 우호를 바랍니다. 그러나 피해 할머니들의 마음을 짓밟으면서까지 우호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네요.”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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