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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은..채워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세월아 ! 너만가거라

by 석천선생 2016. 10. 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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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은.. 채워지고 깊어지는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노인-오랜 경험, 깊은 지혜'전세계일보 | 강구열 | 입력 2016.10.20. 21:27

 

전시장 입구, 관람객을 처음 맞는 건 지팡이와 무임교통카드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76)씨는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면 무릎이 아파 지팡이도 생각나고…. 국가에서는 65세부터는 노인이라고 교통카드 등 여러 혜택을 줍니다.”

육체의 쇠락이야 만고불변의 진리이고, 경로우대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바겠으나….

“노인이 되면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늙으면 힘도 없고 둔하고 일도 못하고 고지식하고 쓸모없어진다는 사회적 편견들이 굳어지는 듯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노인-오랜 경험, 깊은 지혜’를 찾은 한 관람객이 전시품을 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노인이 이런 존재로 인식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국립민속박물관의 ‘노인-오랜 경험, 깊은 지혜’ 특별전은 노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노인 4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인들은 제대로 하지. 젊은이들이 제대로 보지 않는 게 문제야.” 그들의 주장이고, 세대 간 소통을 도모하는 전시회의 속뜻이겠다. 

임대규씨가 59년간 작성한 농사일기.
농부 임대규(82)씨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기록하는” 노인이다. 그는 59년간 자신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했다. 처음에는 농사일기였다. 그날그날 했던 일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기록해 두었다. 그것이 이어지다보니 재밌어졌고, 기록의 대상은 국가의 중요행사로까지 이어졌다. 1995년 6월의 달력 한쪽에는 삼풍백화점 붕괴 상황을 적어두었다. “A동 5층부터 무너지기 시작. 쾅 소리와 함께 붕괴.”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적은 일기는 “8.14 교황 프란치스코 방한 25년 만에 교황이 한국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택했음”이라고 전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발생해 주변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뉴스도 관심을 끌었던지 같은 날짜로 기록해 두었다. “늙는다는 건 역사”라고 강조하는 임씨에게 기록은 삶의 지침이고, 다르게 사는 계기였다. 그날그날의 기록을 위해 술, 담배를 끊었고 정확하게 적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시계수리공 오태준(82)씨와 대장장이 박경원(79)씨. 두 사람 모두 60년 넘게 자기 일을 하고 있다. 6년만 일해도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거들먹거리거나, 지겨워서 못해먹겠다고 푸념하는 이들이 많건만 그들은 여전히 열정이 가득하다. 오씨는 “딴 사람들이 못하는 걸 해냈을 때 그 희열감은 말도 못한다. 지금도 재밌다.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박씨는 “나는 60년을 더 했는데도 완성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배우는 게 많다. 대신에 오래된 사람은 만드는 데 응용하는 기술이 많다”고 말한다. 

지성무식(至誠無息)은 재단사 이경주(72)씨의 신조다. 정성을 다하는 것은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대에서부터 100년을 이어온 양복점의 비결이겠다. “내가 양복을 아무리 잘 만들어줘도, 주인이 싫어하면 잘못된 거다. 손님이 돈을 주고 입는 건데 손님에게 맞게 해줘야지.” 그는 아직도 손님이 양복을 찾으러 오는 날이면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긴장한다.

노인에 대한 전시회이자, 노인을 위한 전시회이다. 조용문씨는 객원큐레이터로 참여해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이 젊기 때문에 가지는 노인에 대한 편견을 수정하는 역할을 했고, 전시품은 모두 임대규씨 등의 물건이다. 전시장 내 영상실에서는 노인들이 직접 제작한 영상도 감상할 수 있다. 92세 조용서씨의 작품 ‘집념’은 2012년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주제를 찾아가는 노인 감독의 고민을 유쾌하게 그렸다. ‘어머니! 오야!’는 노인이 된 아들의 시선으로 거동이 힘들 만큼 노쇠한 어머니의 일상을 다룬 박종익(65)씨의 작품이다.

관람객들이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에필로그 영상은 늙음이 무엇인지를 전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은 약해지고, 어떤 것은 더 단단하고 깊어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죠. 흐르는 세월만큼 몸은 약해지지만, 그만큼 의지는 굳건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넓고 깊어집니다. …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 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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