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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성,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

교양(특수견의세계)

by 석천선생 2012. 5. 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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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 양지에선 근엄·음지에선 게걸?

오마이뉴스 | 2012.05.26 15:43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임종국은 이 시대(주:1900년대 초)의 전반적인 풍기문란은 일본이 정책적으로 조장한 것이라며 "일제의 침략은 칼과 코란이 아니라 칼과 여자로 수행되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 이유로 "첫째는 구한말 집권층의 정치적 불만의 토출도구로써, 둘째는 유산계층의 탕재로 민족자본의 형성을 저해하기 위해서, 셋째는 청년층의 민족의식을 주색으로 마비시키기 위해서" 등을 들었다. - <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에서

우리를 매매춘을 통해 보면 무엇이 보일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인물과 사상사 펴냄)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부터 수입, 일본의 특별한 목적으로 육성되어 오늘날 다양한 모습으로 사회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의 매매춘 그 역사와 발전, 그에 따른 다양한 사회 현상 등을 다룬 책이다.

우리나라 매매춘의 효시를 신라시대에 가무를 담당하던 유녀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일치된 의견은 없다. 또한 고려시대 중국에서 수입된 관기제도에 의한 기녀나, 조선시대의 기생 등을 매매춘과 연결 짓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선 우리의 매매춘 그 시작을 일본 군대가 진주한 구한말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매매춘 제도화에 17세기 이래 공창제도를 택해온 일본의 영향이 무엇보다 컸기 때문이다.





< 매매춘,한국을 벗기다 >

ⓒ 인물과 사상사

개항(1876년) 이후 일본인 거류지역에서 시작된 일본의 매매춘 제도는 조선 전역으로 확산된다. 그리고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을 거쳐 일본인들의 침투가 가속화되면서 성적 향락 문화는 일반 대중의 삶에까지 파고들게 된다.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매춘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경무사 신태휴가 서울 남부 시동에 '상화실'이란 매매춘 지역을 만들어 이 지역 외의 지역에서의 매춘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훈령을 내린 1904년 무렵, "전답 좋은 것은 철로로 가고 계집애 고운 것은 갈보로 간다"는 속요(신아리랑타령)가 회자될 정도로 말이다.

일제통감부의 적극적인 공창화 정책에 의해 더욱 제도화되고 육성·장려된 한국의 매매춘은 해방 이후 더욱 번성한다. 책은 해방 직후부터 1950년대를 '사창굴의 전성시대'란 제목으로 1950년대의 매매춘 그 특성과 실태를 차분차분 들려준다.

일본군이 떠난 자리에 고스란히 미군이 대체된다. 여성단체들의 공창폐지 운동에 미군정은 법령 제70호를 발령해 성매매 근절을 위한 공창제를 폐지하는 등과 같은 단속을 하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든 정책이었다. 오히려 미군을 상대로 한 사창굴이 더욱 번성하는 결과만 낳게 된다.

여성단체의 공창폐지운동, 공창철폐연기운동, 사창으로 전업한 공창, 불야성을 이룬 도시의 요정, 한국전쟁의 비극, '양공주'는 '독버섯'이었는가?, 허영심에 날뛰던 나머지 매매춘에 뛰어들었다?, '서종삼'과 '이봉익', 사창 단속 하나마나, 한 달 내로 사창 근멸? 에레나가 된 순희, '창녀 유격부대'의 등장, 20만 사창 등이 2장 '사창굴 전성시대'의 주요 내용들이다.

1973년은 외화벌이를 위해 매매춘의 국책 사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해였다. 박정희 정권은 1973년부터 매춘부들에게 허가증을 주어 호텔 출입을 자유롭게 했고 통행금지에 관계없이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박 정권은 여행사들을 통해 '기생 관광'을 해외에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문교부 장관은 1973년 6월 매매춘을 여성들의 애국적 행위로 장려하는 발언을 하였다. 한국 정부의 그런 과감한 정책에 장단을 맞추기라도 하듯, 일본인 관광객 내한이 피크에 달했던 1973년에 일본의 국제 여행 알선 업체에서는 관광단 모집 명칭을 아예 '한국 기생 파티 관광단 모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나왔을 정도였다.

- <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수출·국방 정책으로서의 매매춘'이란 제목으로 1960년대부터 1970년대의 매매춘을 다룬 내용 그 한부분이다.

1967년 여성단체들은 '정치 지도자에게 보내는 건의문'이란 것으로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관리들이 요정을 출입하거나 기생파티를 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이는 처음부터 실현되기 어려운 요구였다.

책속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대통령부터 기생파티를 위해 뻔질나게 워커힐을 찾고 그 바람에 심심하면 육박전(육영수 박정희 부부싸움)을 벌이곤' 했으며,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치 보복을 하더라도 여자관계만큼은 건드리지 말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로 기생파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인을 상대로는 외화벌이란 명분으로, 미국을 상대로는 국방정책의 일환으로 매매춘을 적극 장려 육성한다. 국가의 이런 적극적인 노력(?) 때문이었는지 한국의 기생파티는 산업적 규모로 성장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게 된다. 단속을 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국가가 매매춘을 적극 권장하는 꼴이니 어찌 발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국가가 포주가 되어 매매춘을 장려하는 사회와 도덕적 분노를 앞세워 매매춘 근절을 위한 근본주의적 처벌을 남발하는 사회가 공존하는 현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은 '양지에선 근엄, 음지에선 게걸'의 이중성이 도드라지는 나라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도덕적 분노로 밀어붙였으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충분한 뒷받침이 있어야 했는데, 달랑 분노뿐이었다. 게다가 정략까지 가세했다. 무언가 보여주기 위한 전시효과로서의 의욕이 앞섰다는 뜻이다. 덕분에 오늘날 성매매는 더욱 음지를 향해 갔고, 더욱 게걸스러워졌다.- < 매매춘, 한국을 벗기다 > 맺는말에서

'매춘'이 아니라 '매매춘'이어야 하는 이유

매매춘이란 말이 의아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통상적으로 매춘(賣春)이라고 해왔기 때문이다. 이때의 '매'는 '판다'에 해당하는 한자로 '매춘'은 몸을 파는 사람에게만 무게를 실은 말이자 책임을 지우는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남창, 즉 남성을 파는 사람들과 그 업소도 있다지만, 매춘부는 지난날에도 지금도 몸을 파는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다.

매춘은 몸을 파는 사람(賣)과 몸을 사는 사람(買)이 동시에 있어야 성립된다. 그러니 매춘부(賣春婦)와 매춘부(買春夫)를 같은 문제로 다뤄야 한다. 이에 매매춘(賣買春)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 기존의 매춘이란 말과 달리 몸을 사는 쪽에도 무게를 지우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마땅히 매춘이 아닌 매매춘으로 불러야 한다. 이 책이 다루는 우리 사회 매매춘 문제는 이런 올바른 시각부터 정리하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책 참고하여 정리)

이 책의 부제는 '국가와 권력은 성을 어떻게 거래해 왔는가'이다. 책은 우리의 매매춘 역사와 그 현장들을 개화기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별로 구분해 들려줌과 동시에, 앞에서는 '엄정단속'을 외치는 한편 뒤로는 매매춘을 거래하거나 박정희 정권처럼 적극 권장 육성하는 등과 같은 국가와 권력의 이중성을 들려준다.

미국 국무부가 한국을 '성(性) 수출국'으로 분류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일컫는 '코리안 비즈니스'라는 명예롭지 못한 말도 세계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 오지인 몽골조차 이 코리안 비즈니스 때문에 골치를 앓을 정도라니 지나쳐도 대단히 지나치다 싶다. '매매춘 공화국'이란 말도 회자되지 싶다.

매매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같다. 당연히 우리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날 매매춘 관련 이와 같은 불명예스러운 모습으로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왜일까? 무엇들이 우리를 매매춘 공화국으로 만들었을까? 매매춘 근절을 위해 우리는 지난날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가. 과연 노력을 하긴 한 걸까? 혹자들의 말대로 매매춘은 과연 필요악인가? 매매춘, 그 끈질긴 생명력은 무엇을 양분으로 하고 있을까? 우리의 매매춘이 걸어온 길을 찾아 떠나보면 우리의 매매춘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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