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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활력소는 무었입니까?

세월아 ! 너만가거라

by 석천선생 2014. 6. 2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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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활력소는 무엇입니까?

살다 보면 힘든 일이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 뜻하지 않은 사업 실패,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때때로 믿고 싶지 않은 사건·사고들을 경험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빠져 끝없이 나약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친 일상에 힘이 되는, 35인의 활력소를 들어보았습니다. 누군가의 작은 기억, 소중한 무언가가 당신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엄마의 편지

김미경(50, (주)더블유인사이츠 대표)

엄마와 나는 잊을 만하면 편지를 주고받는다. 내 생일이나 명절 때는 물론이고, 김치나 고춧가루를 보낼 때도 엄마는 늘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다. 객지 생활을 시작한 것이 고등학교 자취할 때부터니까 벌써 30년 이상 계속된 일이다. 매일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질 못하니 대신 편지로나마 딸을 관리해온 셈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엄마는 편지의 마지막에 늘 이렇게 썼다. ‘질서 있게 살고 돈 아끼며 살아라.’

엄마의 편지를 받고 나면 며칠 동안은 정말 질서 있게 살았고 돈도 아껴 썼다. 하지만 그때만 지나면 나사가 풀린 듯 늦게 일어났고, 늦게 들어왔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택시를 타고 다녔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즈음부터 엄마의 편지 마지막 줄은 이렇게 달라졌다. ‘고생돼도 참아라, 금방 지나간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다. 울 엄마는 팔십이 됐다. 예전의 그 씩씩한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더 이상 훈계도 협박도 할 수 없을 만큼 엄마는 늙고 병들었다. 엄마의 편지는 또다시 마지막 줄을 바뀌었다. ‘고맙다 미경아, 병든 엄마가 의지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엄마는 작년부터 세상에서 가장 긴 편지를 준비하고 있다. 하루에 10분씩 다섯 번, 몸이 힘든 날에는 5분씩 세 번,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조금씩 정리하고 있다. 얼마 전에 물으니 A4 용지로 2백 장을 넘겼다고 한다. 투병 중에 쉽지 않을 텐데 고생스럽게 글을 쓰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엄마는 쑥스러운 듯 이렇게 말했다. “영원히 미경이의 엄마로 살고 싶어.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긴 편지에서.” 늘 나에게 힘이 됐던 ‘엄마의 편지’를 오랫동안 받고 싶다. 그 속에서 나 역시 영원히 엄마의 딸, 미경이로 존재하고 싶기에.

화초

이수경(59, 주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일이 있다. 바로 화초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예전에 TV에서 식물들도 사람들과 교감을 한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뒤로 빼먹지 않고 “잘 잤니?”, “오늘 날씨가 참 좋다”같은 말을 건네곤 한다. 날마다 조금씩 커가는 화초들을 보고 있으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화초의 싱그러운 초록빛은 힐링이 된다.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게 하는 화초들과의 아침 인사. 이제는 학교와 직장 문제로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하는 자식들보다 더 가까운 친구가 됐다. 때로는 남보다 못한 남편보다 더 든든한 안식처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다는 일은 참 즐거운 일이다.

수다 정지은(21, 숭실대학교 국제법무학과 2학년)

나는 힘들 때는 친구에게 솔직하게 감정을 털어놓는다. 왜 힘든지, 무엇이 힘들게 하는지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머리도, 감정도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그러고 나면 나를 힘들게 한 그 감정을 돌아보게 되는 용기도 생기고,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의 조언도 들으면서 완전히 회복된다. 아, 그럼 나의 활력소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되는 건가?

참지 말고 힘들다고 말하라

누구나 상실의 슬픔은 아프고 두려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떻게 아프지 않겠는가. 아파야 정상이다. 아프다는 것은 내 마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증거다. 내가 살아 있기 때문에 아픈 것이고 살고 싶기 때문에 더 아픈 것이다. 생명(生命)이란 말 그대로 살아 있으라는 명령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좀 더 견디고 살아만 있어도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도망치며 피하는 것이 살아 있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이 죽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피하지 않고 아픔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잠시 아픔의 터널에 들어가 있다고 내 인생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터널의 끝에는 반드시 밝은 빛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한다.

채정호 카톨릭대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

들꽃

김미화(50, 방송인)

신영복 선생의 말씀 중 ‘100km로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코스모스는 작은 점이지만 천천히 걸으며 보는 코스모스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서울에 살다 용인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10여 년. 힘들고 지칠 때 집 앞 들로 나가 느린 걸음으로 산책을 한다. 이름 모를 들꽃, 작은 들풀들에 눈길을 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미워하는 마음, 나를 괴롭히던 노여움은 사라지고 자연이 전해주는 에너지에 축 처져 있던 몸을 일으키게 된다. 자연 속에서 살다 보니 잡초라는 게 없다. 전에는 농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 풀꽃들을 모두 잡초라 생각했는데 이름 모를 풀꽃 하나하나가 귀한 생명들이다. 모진 계절을 이겨내고 마침내 꽃망울을 터뜨린 그 강인한 생명들을 보며 내게 오는 시련과 고난도 꿋꿋이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판에 핀 저 작은 들꽃처럼 말이다.

창조적 마인드

이승훈(45, 삼청동 본 갤러리 대표)

나를 힘내게 하고 생기 돋게 하는 무언가는 역시 ‘창조적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항상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하며 그리는 것은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창조적 마인드’를 추구하는 데 다양한 문화적 공감대는 큰 도움이 된다. 감동을 주는 작품들과 음악, 영화 등 창조적 예술과의 만남 속에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삶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 여행을 통해 세상과의 많은 대화와 경험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성찰과 사회와 소통하는 데 좋은 자양분이 된다.

노래

최민아(48, 자영업)

부끄러운 과거다. 10년 전 집에 소홀하던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던 아이들이 혹여 엇나갈까 봐 얼마나 모질게 굴었는지…. 남편에게 쌓인 감정들을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들에게 풀었다. 돌이켜보니 참 많이도 울었다. 그 즈음 성당에서 성가대를 모집한다는 공지를 봤다. 일주일에 두 번씩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만큼은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안에 있던 화를 그렇게 분출하게 된 것 같다. 바르게 커준 아이들에게 무척 고맙고, 또 늘 좋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마음공부

민진희(45, 자이요가 원장, 「마음의 주인으로 살아라」 저자)

믿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의 기대치에 어긋났을 때, 우리는 좌절을 경험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망감과 허탈함은 물론이고 심한 경우 배신감까지 느끼며 속으로 이를 갈기도 한다. 그 친구는 이렇고 저렇고 판단하고 평가하면서 원망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 친구를 그렇게 믿었던 나 자신이 바보스럽다는 생각에 자책감으로 한동안 괴로웠다. 마음공부를 하기 전에는 이런 절망의 순간이 오면 나는 나의 ‘욕망’을 활력소로 사용했다. 무조건 잘하고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이 상황이 나의 미래에 손해나 지장을 주지 않도록 ‘잊어버리자. 생각해봤자 나만 손해다. 나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철저히 덮고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결국 나를 더욱더 공격적이고 의심 많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마음공부를 통해 나의 행복과 주변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부터는 마음이 활력소가 됐다. 내가 이기고 옳은 것보다 나와 주변을 아끼는 마음이 더 중요해졌고, 절망의 순간 불신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보다 그것을 통해 더 배우고 성장해 사랑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절망을 그저 덮어버리지 않게 됐고 씻어버리고 빠져나오게 됐다. 결과적으로 절망의 순간이 나를 한 단계 더 지혜로운 사람, 나 자신과 남을 좀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고 나는 그런 내가 기특해서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가면

옛 사진을 천천히 스캔해 찬찬히 보다 보면 참 미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어제일 수도, 10년 전일 수도 있는 세월이라는 놀라운 이름. 우리가 나날이 보낸 오늘 이 하루도 언젠가는 모두 지나간 장면들이 되겠지. 사진은 녹록한 시간을 켜켜이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사진들은 나에게 수백 년 된 유물처럼 다가온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내 젊은 시절의 꿈과, 희망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기도

김창래(53, TBS 보도국 생활정보센터 근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온 대한민국 국민이 한순간에 큰 슬픔에 빠졌다. 돈이나 시간 등 세상의 것으로 이 시대적 슬픔을 이겨낼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기도한다. 내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힘들 때마다 기도하며 내가 작은 존재임을 인정한다. 나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모든 영혼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에.

여행

손경희(41, 파주 문발초등학교 영어전담교사)

여행 역마살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베프’였던 친구와 무작정 기차역으로 가 처음 오는 기차를 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전주! 역 앞에서 비빔밥 한 그릇을 사 먹고 걷고 또 걸었다. 대학에 간 후 나의 여행 역마살은 그 스케일이 한층 커졌다. 첫 해외 여행지였던 영국 런던의 지하철역에서 열렬히 키스하던 커플을 보고 받았던 문화적 충격은 대단했다. 그리고 경험이 무엇인지 눈뜨게 해주었다. 괴테의 바이마르에서 동독의 흔적을 느끼고 괜히 우울해져 보기도 하고, 카사블랑카의 맥도날드 사하라 버거는 평생 잊지 못할 대서양의 추억을 남겼다. 여행은 준비하는 과정부터 내게 카타르시스나 오르가슴 못지않은 쾌감을 준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여행을 가지 못할 때는 인천공항에라도 가 밥을 먹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커피를 마신다. 공항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흥분을 대신해본다. 여행은 내 안의 나를 살아나게 하는 내 삶의 활력소다. 어쩌면 유일하다고 하리만치 소중한!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

권혁민(55, 자영업자)

벌써 16년 전의 일이다. 1998년 IMF로 세상이 떠들썩할 때 나 역시 사업을 하는 친구의 보증을 섰다가 빚더미에 앉았다. 자식들의 나이도 비슷해 가족끼리도 왕래가 잦아 친형제보다 가까이 지냈던 사이였기에 보증을 서달라 했을 때 두 말 않고 그렇게 하겠다, 했는데…. 결국 그 친구는 야반도주하다시피 떠났고 지인들의 원망과 사채업자들의 횡포는 내 몫으로 남았다. 어렵게 연락처를 수소문해 다시 만난 그는, 생판 모르는 남보다도 못한 존재가 돼 있었다. 돈을 잃었다는 슬픔보다 사람을 잃었다는 아픔이 더욱 컸다. 금전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살고 있던 집을 내놓아야 했는데 가장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모습에 실망해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때 힘이 돼준 것이 바로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 나보다 더 마음고생이 컸을 아내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더 열심히 살면 된다”라고 기운을 북돋아주웠고, 평소 철부지로만 느꼈던 두 딸 역시 “아빠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해줬다. 이런 가족을 보면서 부끄러운 마음을 먹었던 내 자신을 돌아보고 기운을 차리게 됐다. 그 후로 몇 년간 아내와 함께 더 열심히 일해 빚을 모두 갚았다. 얼마 전엔 둘째 딸 결혼식도 치렀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밖으로 돌지 말고 내 사람, 내 가족에게 의지해보길 바란다. 정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

박경림(35, 방송인)

지치고 힘들 때 책을 읽는다. 물론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떨거나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책을 읽을 땐 나의 현실에서 완전히 벗어나 책 속의 상황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한다. ‘자!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최근 읽은 호아킴 데 포사다의 「난쟁이 피터」는 어려운 순간, 좌절의 순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깨달음을 줬다.

남자친구

박세연(34, 회사원)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남자친구가 있다. 20대 초반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 이 친구가 있어서 더 빨리,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사실 빨리 괜찮은 척해버려서인지, 지금도 가끔 아버지 생각을 하면 울컥울컥하는데, 그때마다 남자친구가 힘이 돼주고 있다. 존재 자체가 든든하고 딱히 뭔가를 해주지 않아도 그냥 기대 울어도 되는 그런 사람이다. 그 남자친구와 마침내 6월 1일 결혼한다.

긍정적 사고

오태경(32, 배우)

20대 중반에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살이 많이 빠졌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외모가 좀 변했다. 처음에는 갑작스레 변해버린 얼굴과 치료를 하며 생겨버린 공백기가 나의 배우 생활에 해가 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미 벌어진 일에 신경 쓰고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어떤 역할이라도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는 것에 행복해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자’라고.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변한 얼굴 덕분에 오히려 더 다양한 역할을 맡아 연기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긍정적인 사고가 나를 조금은 편하게 만들어준 건 아닐까?

김미진(45, 방송작가)

정말 힘들었던 한 달.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나흘 만에 ‘취재파일K’ 특집 편을 위해 진도를 찾았다. 그곳에서 자식 잃은 부모의 참담한 모습을 취재하면서 몸도 마음도 온통 눈물로 푹 절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특집 방송이 끝난 후로도 시사 프로그램 제작진의 특성상 연일 슬픈 사연들을 목도해야만 하는데, 솔직히 지금도 기사를 볼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곤 한다. 아는 심리학과 교수님은 나에게 “약하나마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디 나뿐이랴. 온 국민이 상주가 돼 우울감에 빠져 있는 상황인 것을. 이렇게 힘들고 우울할 때 내게 힘을 주는 것은 가족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딸내미’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나와 얘기할 때마다 토를 달고 쌀쌀맞게 굴어 배신감에 몸을 떨지만,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 어느새 내 키를 따라잡는 중1짜리 딸아이. 세월호 사고로 아이도 어른들에 대한 불신감을 토로하고 힘들어했지만, 탄성력이 좋아서 그런지 어느새 평상심을 찾고 헤헤거린다. 그런 철없는 모습에 내 마음도 무장 해제되는 느낌이다. 아이를 통해 힘을 얻고 그 힘을 다시 방송에 쏟아 다른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으니 이 ‘힐링의 선순환’이 조만간 우리 모두의 우울함을 다 날려버릴 수 있지 않을까?

공동체

방종운(56, 금속노조 인천지부 콜트악기지회 지회장)

정리해고와 폐업, 장기 투쟁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을 비롯해 내 옆을 지켜주는 친구, 동지, 동료 등등의 많은 단어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힘이 됐다.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도 지금의 2,738일을 버티게 해준 것은 가족과 함께 공장의 예술가와 인권운동가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 목사님, 스님 등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자며 옆을 지켜주신 분들 덕분이다. 외로움은 나를 가장 나약하게 만드는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속하게 해주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큰 용기를 주었다. 누군가를 의지하면서 사람에 대한 신뢰가 다시 싹텄고, 극한 상황에도 버티게 해주었다. 1970, 80년대 암울한 시절 군부독재와 맞서던 노동 선배님들의 삶을 떠올리며 오늘도 유선을 타고 나의 건강과 안부를 물어오는 많은 이들의 말에 깊은 내 마음의 상처가 나아짐을 느낀다. 새살이 돋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친구

김성민(41, 배우)

힘든 시기가 있었다. 홀로 지내던 그 시간 85일 동안 매일같이 나에게 와주었던 친구의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왜 매일 날 만나러 오느냐고 물었다. 친구는 “너 심심할까 봐”라고 답하고는 씩 웃어줬다. 힘든 시기는 그게 시작이었다. 내 잘못의 대가이기에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번은 지갑을 달라더니 지갑 안에 자신의 신용카드를 넣어줬다. 너무 힘들어 포기하려던 나에게, 술 취해 울면서 잠든 나를 위해, 밤새 침대 곁에서 다음날 오전까지 뜬눈으로 지켜주었던 친구 덕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용기를 갖게 됐다. 4년이 지난 지금, 아내가 내게 말한다. 참 좋은 친구를 둬 부럽다고. 어머니도 말씀하신다. 나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친구 녀석이 좋다고.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살다 보니 내가 그를 도울 기회도 있었다. 행복했다.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됐다. 포기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도움을 조금도 돌려드리지 못할 뻔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밤이 깊으면 곧 먼동이 튼다는 말. 전진을 위해 몇 걸음 뒤로 가야 한다는 말. 기준을 작게, 아주 작게 정한다면 분명 희망은 온다. 그 모든 것을 깨닫게 해준 친구 녀석에게 오늘도 안부 전화를 걸어 이렇게 외친다. “베프, 밥 먹었냐?”

늦둥이

이광기(45, 배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절망에 빠져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때, 어두운 사막 한가운데 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건 아이가 좋은 곳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는 믿음, 나에게 남겨주고 간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다시 일어나 살다 보니 또 하나의 기적 같은 생명이 내게로 왔고 이제 그 기적은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 마흔을 훌쩍 넘어 만난 늦둥이, 28개월 된 아들 준서는 지치고 힘들 때 나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주는 활력소다. 세상의 모든 근심을 사라지게 만들고 오늘 하루도 힘을 내 살아가게 하는 나의 비타민. 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만날 아이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하늘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아빠, 잘하고 있지? 나중에 보자.”

아이돌

이마이 토모코(73, 주부)

남편은 퇴직 후 건설사 주재원으로 해외로 떠나고 아이들은 이미 결혼해 각자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 내 옆에 남은 건 고양이 두 마리뿐. 적적한 일상의 나날들, 우연히 씨엔블루의 노래, ‘외톨이야’를 듣게 됐다. 그들의 포크 록은 내가 20대 때 즐겨 듣던 일본의 노래와 비슷해 노스탤지어를 느꼈다. 씨엔블루의 노래는 내 청춘과도 같다. 지금까지 일본 투어, 한국 투어를 포함해 30회가 넘는 공연을 즐겼고 작년에는 미국 LA 공연도 다녀왔다. 공연 내내 스탠딩도 거뜬! 젊은 기를 받고 돌아온다. 진정한 나의 활력소, 씨엔블루!

경향신문 페이스북 독자들이 꼽은 내 인생에 위로가 된 책

강산님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힘들 때마다 한 번씩 읽는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진정 중요한 건지, 행복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다.

강경록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지칠 때 책 속 ‘마크툽’이란 단어를 떠올려본다. 그럼 왠지 모르게 어떻게든 흘러갈 삶에서 아등바등하는 게 창피해지면서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Byungdo Choi님 닉 부이치치의 「허그」. 팔다리 멀쩡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것에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는 이유임이 느껴진다.

Mari Kim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삶은 목적지 없는 방황. 하지만 늘 부딪치며 넘어가야 하는 것. 결과는 상관없다. 도전하고 깨우치고 거듭나는 것. 고등학교 때부터 내게 힘이 돼주는 책이다.

이예원님 김윤탁의 「꽃은 져도 향기를 남긴다」. 향기에 대한 짧은 에세이인데 다 읽고 나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 가끔 찾아 읽는 책이다.

김병진님 모건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거나 난관에 직면했을 때 자기 훈육을 통한 극복 방법을 임상 경험을 토대로 기술한 자기계발서다. 인생은 원래가 고행이다, 라는 중요한 명제를 안겨주고 고행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워준 책이기도 하다. 수사적이고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일관된 보통의 자기계발서와 달리 정신과 의사인 작가의 치료 경험을 토대로 기술된 책이기에 좀 더 신빙성 있게 다가온다. 개인적인 고행을 겪는, 혹은 겪었던 사람에게 추천하는 서적이다.

이보미님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감에 대한 담담한 이야기가 내게 도움이 됐다.

부모님

이정영(34, 고양어울림누리 아이스링크 스케이트 코치)

나는 또래의 다른 선수들보다 조금 늦게 운동선수의 길에 들어섰다. 운동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형편이 어려웠다.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부모님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3남매를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시는 부모님께 운동선수로 성공해 꼭 보답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한 명, 한 명을 제치고 성장해갈 때, 훈련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때 나는 언제나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러면 어디선가 초인적인 힘이 나왔고,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힘든 훈련을 모두 소화해낼 수 있었다. 아마 그런 걸 정신력이라 할 것이다.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텨낸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인내심을 기를 수 있었다. 활력소는 아니더라도 나를 지탱해주는 강한 버팀목이다.

봉사활동

김영득(65, 택시 기사)

7년 전 군 복무 중이던 아들 녀석이 휴가를 나왔다가 교통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 애지중지 키운, 참 바른 아이였는데…. 그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술로도 달래봤고, 아내와 여행도 다녀봤지만 하나뿐인 아들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잊지 못할 거다.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 건 지난해부터 아내와 함께 다니는 봉사활동 덕이었다. 장애인 시설에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그곳에서 아들 또래의 아이들을 돌본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목욕을 시켜주고 청소를 해주는 일이 전부다. 어쩌면 그 아이들보다 내가 더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삶은 살아진다. 이번에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섬진강

조은(31, 기자)

복잡한 도시에서 일과 사람 속에 파묻혀 살다 지칠 때면 난 버스에 몸을 싣고 섬진강으로 달려간다. 아슴아슴 꿈결처럼 어리는 섬진강 고운 물빛을 바라볼 때면 엄마 품에 안긴 듯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유유히 흐르는 은빛 강물에 꾹꾹 담아두었던 근심과 걱정들을 흘려버리고 막걸리 한잔 마시며 너른 악양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만석지기 최부자가 부럽지 않다.

다시 발견한 나

정진영(43, 주부)

안산 단원구에 살고 있다. 이번 세월호 사고로 나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또 희생자의 가족들, 지인들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큰 슬픔을 안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족을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이 과연 있을까. 4년 전 봄날, 기나긴 투병 생활 끝에 친정엄마께서 우리 3남매 곁을 떠나셨다. 어렸을 적, 또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엄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갑자기 급성신부전증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신 엄마께 생각지도 못한 병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기 시작했다. 힘들게 투석을 하셨고, 입원 중 위암수술까지 받아야 하셨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금 괴롭다. 허망한 죽음. 5년 동안 습관처럼 주말이면 엄마가 계신 병원에 가던 일과가 중단되고 나니 도무지 생활에 적응이 안 되고 허전해 한 5개월 즈음을 아무것도 못하고 정신은 반쯤 나간 상태로 지냈다. 남편과 아이들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문득 거울을 보게 됐는데 영 사람 꼴이 아니었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날로 바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을 찾았다. 1년 코스의 간호조무사 과정. 무작정 학원 등록을 하고 하루 6시간의 학원 수업을 들으며 5개월가량의 병원 실습도 마쳤다.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는 아이들 돌보며 인터넷 강의를 통해 사회복지사와 보육교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정신없이 1년 반을 보내고 나니 무기력하고 우울감에 젖어 있던 내 모습은 없어지고 예전의 긍정적이고 활기찬 엄마, 아내의 나를 발견하게 됐다. 지금은 개인 병원에서 근무를 하며 워킹 맘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 영혼 없는 눈빛의 내 모습을 거울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계속 우울감에 젖어 있는 엄마, 아내의 모습으로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절망의 시간들에서 벗어나려면 처음엔 조금 힘들고, 과연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미안한 맘이 들지라도 과감하게 털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운 음식

김샤론(22, CPA 수험생)

수험생인 나의 주 생활공간은 독서실이다. 하지만 어떤 날은 아무리 앉아 있어도 책의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불안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무조건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간다. 엽기떡볶이나 매운 라면, 불짬뽕 등 맵기로 이름난 것들을 찾는다. 눈물이 날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다 보면 고민이고 뭐고 물부터 마셔야지 하는 생각만 든다. 스트레스가 일순간에 해소된다. 정말 단순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단순해야 하는 수험생 신분의 내게는 힘을 내기에 딱 좋은 방법이다.

조리복

최석원(43, 요리연구가)

낮에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직장인으로, 밤에는 격투기 선수로 살던 내가 얼마 전 뜻이 맞는 사람들과 ‘인리원’이라는 요리학원을 차렸다. 이전까지는 스스로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드러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요리학원을 차리며 사람들에게 요리도 가르치고 좋아하는 요리 연구도 마음껏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매일 아침 학원에 출근해 걸려 있는 조리복을 볼 때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힘이 샘솟는다. 옷깃에 새겨 넣은 ‘God Bless You’라는 말처럼 누군가 내 삶을 축복해주고 있는 느낌이다.

대화

손홍미(51, 서양화가)

마음이 텅 비어 있다고 느낄 때, 그 비어 있는 것을 채우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으로 텅 빈 마음을 채워왔을까. 난 힘들 때마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슬퍼해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아왔다. 그 안에서 사랑이란 걸 느꼈다. 날 소중하게 여겨주는 마음을 말이다. 텅 빈 것을 채울 수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닌 모두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파스칼은, 사랑한다는 그 자체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했다. 난 오늘도 누군가의 사랑 속에서 이야기하고 싶다.

봄나물

손경희(37, 드라마 작가)

시댁이 강원도 하고도 깊은 산골인 덕에 결혼 후 봄나물 맛에 눈을 뜨게 됐다. 그곳의 봄은 나물로 시작된다. 강원도의 자랑인 두릅으로 시작해 곤드레에 곰취, 나물취, 참나물, 삽주싹, 미나리싹, 잔대잎, 오가피잎까지 그야말로 서울 사람도 알 만한 흔한 잡초를 제외하고 대지 만물 푸르른 모든 것을 먹는 것 같다. 걔 중에는 입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풀일 것 같은 의심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있다. 어찌됐건! 시어머님을 따라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소쿠리 하나씩 챙겨 양지바른 뒷산으로 올라가 ”어머니! 이건 뭐예요?”, “너 이거 모르지? 옛날엔 이것도 먹었다” 몇 마디 주고받으면 금세 바구니가 한가득이다. 자작하게 장을 끓이고, 흐르는 산골 물에 살살 흔들어 봄나물을 씻어 어떤 것은 데쳐 무치고, 어떤 것은 쌈을 싸 먹게 채에 담아 상을 차린다. 눈으로 보기엔 가짓수 몇 안 되는 소박한 시골 밥상이지만, 입으로 먹기 시작하면 배가 터지리만큼 행복감을 채워주는 요술 밥상이다. 강원도의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아직 찬 공기가 가시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불어오는 봄바람을 기억해내고 기어이 살 언 땅을 비집고 올라와 싹을 내는 봄나물. 그 푸른 기운을 한 접시 먹고 나면 언제나 거짓말처럼 힘이 났다. 크게 한 쌈 싸서 입이 터져라 씹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내 안의 삶의 의지가 싹을 냈다. 봄나물 한 접시면 살아지는 인생, 뭐 별거 있으랴! 고단한 하루에 힘찬 콧방귀가 절로 뀌어진다. 겁도 없이 말이다.

 

 

청량리 재래시장

김정선(37, 번역가)

이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 가고 뭐 했나 자괴감에 빠질 때, 오늘 하루도 의미 없이 보냈구나 하며 헛헛할 때,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의욕이 떨어질 때 습관처럼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청량리 재래시장. 골목 어귀부터 풍기는 순대 국밥집 육수 냄새처럼 비릿한 삶의 내음이 가득한 곳이다. 늦은 밤에도 “떨이요” 하는 상인들의 아우성과 더 싼 곳을 찾아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면 각자의 애환 속에서도 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과 열정이 느껴진다. 그런 시장 사람들 사이를 휩쓸려 걷다 보면 나의 투정은 치기 어린 허세로 여겨지고, 삶의 장난에 놀아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야겠다는 의욕을 다시금 얻게 된다. 1천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과자 한 봉지 못 사 먹는 요즘이지만, 청량리 재래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발 가득 양이 푸짐한 팥죽이 1천5백원! 투박하고 정직한 할머니의 손맛과 함께 찹쌀 옹심이가 알차게 들어 있다. 1천원의 행복에 마음까지 데워진다.

요가

김지수(34, 요가 강사)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녔다. 과거의 기억 속에 나는 늘 당당했고 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회사를 그만두게 됐는데, 2년이나 재취업을 위해 다시 세상과 마주한 순간 나는 또 다른 벽을 만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이 만만치 않았다. 수백 통의 이력서를 내봤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내 능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자괴감에 빠졌고 사람들을 향한 원망에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 속도 모르고 “집에서 쉬니까 좋지”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미웠다. 체중도 늘어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런 나를 보던 남편이 요가를 권했다. 한 달 두 달 배워가면서 조금씩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결국 취미로 시작했던 요가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삶의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 바라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나처럼 의의의 길이 보일 수도 있다.

시간

이주현(30, 회사원)

대학교 졸업반 시절,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외동딸로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온 내가 느꼈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니 슬프면 슬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당시 슬픔을 제대로 치유할 방법을 몰랐을뿐더러 나보다 더 힘들어하시는 친정어머니를 위로하느라 상처를 키웠다. 잠깐의 틈이라도 생기면 생전에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나를 괴롭혔고, 또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볼 때마다 내가 이래도 될까, 하는 미안함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일으킨 건 ‘시간’이었다. 몸과 마음이 처져 있으면 있을수록 잡념이 나를 괴롭혔기에 최대한 바쁘게 살려고 노력했다. 취업 준비를 위한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빈틈없이 살았다. 몰입해야 할 대상이 생기니 조금씩 나아갈 방향이 보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웃음도 되찾게 됐다. 덕분에 1년 만에 취직이 됐고 그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결혼에도 골인했다. 가끔씩 아버지가 보고 싶지만 이제는 죄송한 마음보다는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앞선다. 아픔을 극복하는 데에는 시간이 최고의 약이다.

 

 

 

솔섬과 북두칠성

나종민(51, 장애인 전용 바라봄 사진관 대표)

얼마 전 사진 저작권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던 솔섬은 대한민국에서 사진 좀 찍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보는 유명한 곳이다. 나 역시 20여 년을 근무했던 회사를 퇴직하고 처음 사진 봉사를 시작했을 무렵, 자주 솔섬을 찾아 그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특히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솔섬 위로 북두칠성이 보이는 이 사진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사진을 찍은 후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재능기부 사진사로서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하게 됐고, 그로부터 1년 뒤 장애인 전용 사진관인 바라봄 사진관을 열게 됐다. 인생의 전반기를 끝내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무렵, 잠시 쉴 수 있는 솔밭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북두칠성을 얻은 셈이다. 삼척시에 LPG 저장소가 들어선 후 솔섬 주변 풍경이 달라지며 더욱 의미가 깊어진 사진이기도 하다. 요즘도 가끔 이 사진을 보면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초심을 생각하게 하는, 내 인생의 북두칠성 같은 사진이다.

은퇴

김정배(49, 회사원)

하루하루 다가오는 은퇴 이후의 삶.

제2의 인생이 내 삶의 활력소다. 살아내야 하는 인생 말고, 진짜 내가 살고 싶은 인생 그리고

그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껏 그리는 생각들에 흥이 난다.

이수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조언하는

심리 문제 극복법

삶 앞에 놓인 산을 넘으려면 그 높이를 누구든 어떻게든 거쳐야 합니다. 힘에 겨울 땐 가파른 절벽을 피해 경사가 완만한 길로 우회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좌절의 순간, 지혜롭게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안에 과도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전상 후퇴라는 말을 기억하고, 현실 적응을 가장 큰 목적으로 둡니다. 자살 생각이 들거나 정상적인 사회 및 직업 적응 기능이 상실됐다 싶으면 반드시 전문의의 치료를 받고, 술, 약물, 게임 등 습관성 수단에 의지하지 않도록 합니다. 다음은 각각의 심리 문제에 따라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입니다.

이별로 인한 불안 Do! 이별 대상을 건전하게 대신할 대체물을 찾는다. 호흡 조절과 이완 훈련 등을 통해 불안 자체를 완화시킨다. 불안을 최소화할 환경을 조성한다. Do Not! 억지로 잊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무기력한 삶 Do!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한다. 운동 등 생활에 활력을 줄 여가 활동을 한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를 실천한다. Do Not! 무기력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삶의 이유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기시키도록 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 Do! 상실, 학습된 무력감, 에너지 소모와 관련이 깊다. 삶의 에너지를 빼앗긴 이유를 알아내 해소한다. 긍정적인 시각과 객관적인 평가를 유지한다. Do Not! 부정적인 과거에 매달리지 않는다.

사회에 대한 분노, 죄책감, 좌절, 열등감 Do! 건강한 분노 해소법을 개발한다. 자신의 역할을 찾아 건설적으로 해결한다. Do Not! 마녀사냥을 하지 않는다. 부분을 전체인 듯 성급하게 일반화시키지 않는다. 자기 학대, 흑백논리 혹은 감정에 의한 억측을 자제한다.

Especially

세월호 참사로 마음을 다친 이들을 위한 조언

1 도움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2 사고에 몰두하지 말고 일상생활에 임한다.

3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하기가 힘들다면 치료를 받도록 한다.

4 긍정적이고 건설적으로, 해결과 대안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한다.

5 충격적인 일이 자신의 마음과 삶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더라도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를 기억한다.

Hug 모든 것을 아우르고 보듬는 마음, 허그. 인간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박형진 작가의 그림이다.

※ 기사에 사용된 들꽃 그림들은 「들꽃 편지」(여성신문사)의 김정란 작가가 제공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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