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후보기종이 각축을 벌였던 공군의 차기전투기(F-X) 사업 최종 후보로 미국 보잉사의 F-15SE가 낙점됐다.
록히드마틴의 F-35A는 가격 제한선에 걸려 탈락했고, 유럽항공방위우주연합(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은 입찰서류 하자라는 부메랑을 맞았다. 사업을 총괄해온 방위사업청은 법과 원칙에 따른 정상적인 결정임을 강변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기종 결정 시기를 수차례 연기한 끝에 내린 결론치고는 너무 허술해서다. 협상전략 부재로 전체 기종평가 항목 중 15%의 가중치를 지닌 ‘가격’에 매몰되면서 빚어진 방사청의 자승자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의 안보상황과 전력, 향후 운용 시 수반되는 문제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공군 작전본부장을 지낸 L예비역 공군 장성과 2000년대 초반 F-X 1차 사업에 직접 참여했던 무기체계 전문 S교수, 공군의 전력증강사업을 기획하고 국산 전투기 개발사업에 몸담아온 이희우 충남대 종합군수체계연구소장, 군사전문가인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방사청 결정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F-15SE가 공군 차기전투기 단독 후보다. 어떻게 생각하나.
“잘못된 결과다. 가격이 중요한 요소지만 임무수행능력과 한반도 안보환경을 고려했어야 했다. 마치 폴더형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을 놓고 선택을 강요하면서 가격이 비싸다고 무조건 스마트폰을 떨어뜨린 격이다. 20세기와 21세기 전투기를 가격만으로 단순 비교했다는 것 자체가 오류다.”(L예비역 공군 장성)
“방사청이 진행한 사업일정대로라면 F-15SE로 가는 게 맞다. 하지만 최초 F-X 3차 사업이 시작될 당시 가격은 전체 기종평가 항목 중 하나의 전제조건에 불과했다. 그랬던 것이 두 달전 부터 절대평가 기준이 됐다. 여러 평가항목은 뒤로한 채 가격에만 비중을 두고 기종을 결정한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신인균 대표)
“공군은 두 가지를 요구했다. 첫째가 스텔스를 포함한 성능, 둘째는 스텔스 전투기가 아니더라도 전력공백이 심각하니 F-X 사업을 빨리 좀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F-15SE의 선택도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F-15SE는 시제기조차 없는 설계상의 전투기다. 그것도 한국 공군을 위해 처음 만들어지는 모델이다. F-15K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F-15K에는 이전 버전인 F-15E에 없는 부품들이 들어갔다. 업체가 최신 장비라며 끼워 넣은 것이다. 하지만 이 부품들은 한국 공군만 쓰고 있고 운용유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만약 F-15SE를 들여온다면 한국에만 적용되는 부품들로 인해 향후 운용유지비가 급상승할 것이다. 우리가 이런 비용을 다 감내하더라도 그러한 부품들이 제때 들어오기나 할는지도 의문이다.”(이희우 소장)
“F-X 1차 때 도입한 F-15K에는 이전 버전인 F-15E에 없는 7개의 유니크한 품목이 있었다. 한국 공군만 사용하다보니 후속 군수지원에 문제가 발생했다. F-15K 업그레이드 버전이라는 F-15SE에 새로 장착되는 부품도 향후 우리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S교수)
―유로파이터를 복좌기 문제로 탈락시켰는데 타당한 결정인가. “제안서나 계약서 내용을 보기 전까지 어느 게 맞다고 할 수 없지만 복좌기 15대를 주기로 했다가 막판 입찰에서 6대로 바꾼 것은 유로파이터에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L예비역 공군 장성)
“명문화, 문서화하지 않았다면 방사청 입장이 군색해질 수 있다. 그동안 방사청이 윗선의 지침에 따라 수시로 방침을 바꾼 사례가 한두 번인가. 스텔스 부분도 그렇고 가격도 그렇다. 최적의 가격으로 소요군의 의사에 맞춰 무기를 구매해야 함에도 무조건 최저가격에 초점을 맞춰 기종을 결정하다 빚어진 촌극이다.”(신인균 대표)
“분명 유로파이터가 말을 바꿨다고 본다. 사업을 하면서 말은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그 때문에 물건을 사는 사람 입장에서 필요하면 상호간에 약속을 문서화해야 한다. 보잉도 꼬리날개의 설계를 변경하겠다는 말을 최근 바꿨다. 방사청이 보잉의 설계변경은 받아주고 유로파이터의 요구는 묵살한 것에 대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이번 유로파이터의 탈락 발표는 방사청과 업체의 협상 여지가 있었던 문제다. 유럽산을 떨어내고 미국산 전투기로 가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이희우 소장)
“협상에서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 복좌기 15대를 주겠다고 한 기록이 남아 있다면 유로파이터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상호간 약속한 문서도 없이 우리가 그러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맞다고 강변하는 것은 무리다. 그리고 지난 16일에는 총사업비 내 가격을 통과했다고 해놓고 이틀 뒤인 18일 탈락을 거론하는 것은 수조원대 국책사업을 다루는 정부기관이라 하기에는 가벼움이 느껴진다. 우리 기업이 EU(유럽연합) 국가에 가서 그렇게 대우받는다고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결정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S교수)
―F-X 사업 고려요소 중 성능(스텔스), 운용유지비용, KF-X 등에 우선순위를 둔다면. “우리 안보상황을 고려하면 성능이다. 중국과 일본이 스텔스기를 선택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으로 스텔스기가 절대 필요하다. 지난번 독수리훈련 때 미국의 스텔스기인 B-2 ‘스피릿’ 전폭기와 F-22 ‘랩터’ 전투기가 한반도로 전개한 뒤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다.”(L예비역 공군 장성)
“성능이 최우선돼야 한다. 그다음으로 운용유지비용이 중요하다. F-15SE가 선택되면 2065년까지 써야 하는데 부품조달은 어떻게 할 거냐. F-15를 쓰는 나라는 사우디와 이스라엘, 싱가포르뿐이다. 이들 나라와 부품을 공유하고 30∼40년간 운용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신인균 대표)
“전력공백을 늦추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공군 전력은 2017년 가면 전투기 100대가 부족해진다. 그다음이 스텔스다. 스텔스 못지않게 한국형전투기(KF-X) 120대 생산도 중요하다. F-X를 통한 기술이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F-X가 KF-X의 밑거름이 돼야 한다. 그런데 미국산은 문제가 있다. 업체는 기술을 주겠다지만 반드시 미 정부가 승인해야 한다. F-X 1, 2차 때도 보잉은 많은 기술이전을 약속했다. 지금 지켜진 것은 채 30%도 안 된다.”(이희우 소장)
“무조건 국익이란 잣대하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스텔스 뭐가 그렇게 중요하나. 세계 최강 스텔스기인 미국의 F-22는 정비지원능력 부족으로 리비아전에 참전도 못 했다. 그리고 우리의 공중작전 개념은 미국과 다르다.”(S교수)
―공군에 가장 적합한 전투기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맞서는 항공전력으로 F-35가 가장 최적의 전투기다.”(L예비역 공군 장성)
“F-35A다. 공군이 필요로 하는 기종이다. 도그파이팅(근접공중전)을 주로 하는 우리 공군 상황을 고려하면 F-15SE와 유로파이터는 과다한 운영유지비가 문제다.”(신인균 대표)
“조종사 입장에선 F-35가 가장 좋을 수 있다. 비용 대 효과 차원에서 보면 지금으로선 전투기 대수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이희우 소장)
“3개 후보기종을 모두 타봤다. 경험상으로 볼 때 F-15SE는 설계가 너무 오래됐다. F-35A가 비행테스트를 마친 실전배치 전투기라면 그 이상 좋은 선택이 없다. 하지만 아직 비용과 경험 등에서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미국이 일본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판 것도 우리 국민정서를 고려할 때 부담이다. 유로파이터는 두 기종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S교수)
―F-X 사업 재검토해야 하나. “대안을 내기가 힘들다. 그렇더라도 F-15SE 단독으로 가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다소 가격이 비싸더라도 종합평가를 해야 한다. 정해진 예산을 초과한다면 이유를 따져보고 결정하자. 이번 가격입찰 부분도 약속이지만 그것을 취소하고 원래대로 종합평가를 하는 게 맞다고 본다.”(L예비역 공군 장성)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사업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전투기를 사게 된다.(신인균 대표)
“시험평가, 사업일정 관리, 기종평가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이희우 소장)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재검토해야 한다. 국가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S교수)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의견 주신 분> ●이희우 충남대 종합군수체계연구소장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L예비역 공군 장성
●무기체계 전문 S교수
ⓒ 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세계일보 & Segye.com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