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를 음미하듯 한 걸음 한 걸음 아껴가며, 될 수 있으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호암미술관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 희원(熙園)이다. 희원은 약 6만 6,000㎡(2만여 평) 대지 위에 정자와 물이 어우러지고 석물과 꽃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거대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긴 정원 산책길 끝에서 만나는 호암미술관은 우리나라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담은 공간이다.
희원에서 바라본 호암미술관. 우리나라 고미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영동고속도로 마성IC를 빠져나와 놀이공원의 소음을 뒤로한 채 호암미술관 이정표를 따라 길을 잡는다. 호암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초록의 터널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놀이공원과는 다른 고요함 속으로 여행자를 이끈다.
삼성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자가 30년간 수집한 우리나라의 고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을 둘러싼 드넓은 정원인 희원(熙園)이 잔잔한 감호를 내려다보며 자리하고 있다.
희원으로 들어서는 입구, 보화문.
덕수궁의 유현문을 본떠 만든 보화문은 희원 여행의 시작점이다. 채도를 달리하는 전돌을 쌓아 만든 높다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벅수라 부르는 다양한 모양의 돌장승들이 짝을 이루어 서 있다. 고사리와 꽃무릇 사이에 다소곳이 서서 손님에게 인사하고 길을 안내한다. 돌장승은 예전부터 마을 어귀나 들녘에 사람들의 안녕과 소망을 담아 세워두던 것이다. 희원에는 모두 100여 쌍에 이르는 벅수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너른 매화나무 숲에 둘러싸인 초록의 공간을 지나면 담쟁이 넝쿨을 두른 담장에 둘러싸인 작은 정원을 만난다. 꽃을 사랑하는 어느 여인이 가꾸는 뒤뜰인 양 원추리, 노루오줌, 백합 들이 화사함을 다툰다. 담을 돌아가면 작은 연못과 관음정이 서 있다. 창덕궁 후원의 애련정을 본떠 만든 정자로 물에 비친 모습이 운치 있다.
우리의 정원은 그 모습을 한꺼번에 툭 열어 보이지 않는다. 애써 감추는 법도 없다. 한 걸음 다가설 때와 몇 걸음 뒤로 물러설 때의 모습이 다르다. 먼 산자락이 정원의 또 다른 담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담장 너머로 보이는 정자의 검은 기와지붕이 산이 되기도 한다. 무심한 듯 놓인 석조 하나에 빗물이 고이고 하늘이 담긴다.
보화문을 지나 매화나무 숲길을 걷고, 작은 정원과 관음정을 보고 나서야 커다란 연못을 중심으로 한 희원의 본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희원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호암미술관은 높은 석축 위에 올라앉아 있어 마치 산자락의 일부처럼 보인다.
그윽한 연꽃향이 번지는 법연지 앞에 서면 희원은 그 품을 더욱 활짝 열어 보인다. 정면으로는 석축 기단 위에 자리 잡은 호암미술관이 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호암정이, 왼편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자리하고 있다. 한눈에 모두 담기가 벅차 천천히 음미하며 책의 한 문장처럼 읽어나가야 하는 풍경이다. 법연지 주변으로는 다양한 석물과 석탑, 돌 벤치가 있어 희원을 찾는 탐방객들이 오래 머물다 가곤 한다.
신응수 대목장이 지은 호암정은 법연지와 짝을 이루며 그늘 없이 환한 정원에 기품을 더하고 있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풍경이 가득 들어오니 그대로 하나의 그림이다.
화강암 계단을 오르면 호암미술관 앞 잔디마당을 받치고 있는 석축 기단을 만난다. 모양과 크기가 조금씩 다른 거대한 돌에 무늬까지 들어가 있어 ‘꽃돌’이라고도 불린다. 전국 각지에서 공수해 와 쌓아 올린 것이라 한다. 하얀 꽃들이 피어난 듯 무늬가 선명한 돌들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이야기를 건네고, 그 틈에서 자라난 기린초와 담쟁이가 거대한 석축 기단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기단 앞으로는 석조당초문광배 등 불교 조각상들이 서 있어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희원 안을 자유롭게 노니는 공작새.
자연석 계단을 올라 만나는 호암미술관 앞의 드넓은 공간에는 또 다른 정원이 펼쳐진다.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을 연상시키는 담장이 시원하게 펼쳐진 잔디광장으로 안내한다. 다양한 얼굴과 표정을 한 벅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월대 옆으로 달처럼 둥근 읍청문이 서 있다. 각시붓꽃, 비비추가 높이 솟은 소나무 아래에서 꽃을 피우고, 공작새 두 마리가 먹이를 찾아 자유롭게 노닌다. 미술관을 등지고 서서 감호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까지 감상하자면 정작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는 걸음이 더디고 더디다.
불국사의 백운교를 연상시키는 아치형 석조 기단과 푸른색 기와가 조화를 이룬 인상적인 호암미술관은 1만 6,000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1층과 2층 전시실에서 토기와 도자기, 서화와 금속공예품, 생활공예품과 불교미술품 등을 볼 수 있다. 국보급 소장품들을 비롯해 고관대작의 안채와 사랑채에 있었음직한 품격 있는 생활공예품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의 고미술을 주제로 열리는 기획전시도 호평을 얻고 있다.
특히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안내에 따라 전시실을 함께 돌며 전시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초록의 산자락이 통유리로 들어오는 2층의 휴게공간은 전시실을 둘러보다 잠시 앉아 쉬어 가기에 좋다.
2층 강의실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토요 아뜰리에’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재료비로 1인당 3,000원을 내면 아이들과 함께 미술품을 감상하고 기념품도 만들어볼 수 있다.
정원에서 노는 아이들.
품격 있는 한국 고미술품을 둘러보고 다시 희원으로 내려서면 들어올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 발길을 잡는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보다 더 높이 하늘로 뻗어나간 소나무도 눈에 들어오고, 돌틈을 따라 졸졸 흐르는 작은 계곡에는 야생화가 만발했다. 희원에는 철 따라 다양한 야생화가 무리지어 피어난다. 울타리를 치고 가꾼 꽃밭이 아니라 벅수 옆에, 석물 앞에 피어나는 꽃들이라 자연스런 멋이 전해진다.
희원의 멋을 조금 더 여유 있게 즐기고 싶다면 대석단 왼편에 자리한 찻집으로 가보자. 정원의 초록 물결이 창으로 흘러드는 실내도 좋고, 소나무 그늘 아래 새소리가 들리고 다람쥐가 다니는 야외 공간도 추천한다. 차와 함께 간단한 토스트도 먹을 수 있다.
석인의 길 쉼터에는 대형 파라솔 밑 그늘이 있어 도시락을 먹으며 쉬어가기에 좋다.
아이들과 함께 희원 나들이에 나섰다면 ‘석인의 길’을 찾아가보자. 희원 앞 감호를 따라 이어지는 ‘석인의 길’은 문인상과 무인상이 늘어선 짧은 산책로다. 호숫가에 대형 파라솔을 꽂아둔 쉼터가 있어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며 아이들을 실컷 뛰놀게 할 수 있다.
‘석인의 길’이 끝나면 호수를 따라 천천히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 다시 이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늘이 있어 오래 머물게 되는 공간이다.
<가는 길>
* 자가운전
영동고속도로 마성IC → 에버랜드 이정표 보고 진행 → 호암미술관 이정표 보고 진행
* 대중교통
서울 좌석버스 : 5002번(강남역), 5700번(강변역), 1113번(천호동), 1500-2번(분당 경유)
수원, 용인 일반 버스 : 670번, 66번, 66-4번
※ 에버랜드 정문 앞에서 하차한 후 매시 정각에 출발하는 미술관행 셔틀버스 이용
※ 위 정보는 2013년 7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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