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목적을 가치관의 정립에 둘 정도로 가치관은 철학의 주요 주제이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즉 세상과 나 사이의 접점을 찾는 것이다. 세상이 이렇게 나오면 나는 이렇게 맞선다는 식의 세상을 상대하는 나만의 방법을 정하는 것이다.
유사한 개념으로 세계관과 인생관이 있다. 세계관과 인생관은 그 가치관을 형성하는 전 단계들이다. 세계관은 과학의 지식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세계는 본래 그 모습이 정해져 있고, 이것을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세계관이 결정된다. 인생관은 출신 배경에 따라 결정되며, 이것은 자신의 현재 위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가치관, 인생관, 그리고 세계관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세계관이란, 신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 세계의 질서는 일원(一元)인가, 이원(二元)인가? 모든 역사과정이 어떤 하나의 원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정론이 옳은가, 아니면 상대론이 옳은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가, 아니면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갖는 것이 세계관이다. 다음으로 인생관은 나는 고아인가 아닌가? 나는 부자인가 가난한가? 미남인가 아닌가?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나는 누구편인가? 등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치관은 세계관과 인생관을 토대로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적당히 시류의 흐름에 타협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떤 가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 세상과 맞서면서 살 것인가? 등을 결정해 주는 인생의 좌표, 잣대, 무게중심이며, 더 나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만약 당신이 장애인이라면, 부자라면, 못생겼다면, 외국인이라면, 여성이거나 남성이라면, 키가 크거나 작다면, 당신의 세계관과 인생관은 쉽게 정해지곤 한다. 그러나 가치관은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살아갈 지 그리고 어디로 나아 갈 지를 제시하는 방향키와 같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세계관은 서로 같을 수 있다. 그것은 세계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이 그 세계를 이해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더 많이 이해한 사람이 더 멀리보고 더 높이 난다. 또 과학의 발전에 따라 세계관은 달라질 수 있다. 한편 인생관은 같을 수 없다. 사람마다 환경이 다르고 출신과 성장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치관 역시 같을 수 없다. 65억 명 지구인 모두 60억 가지 가치관이 있을 수 있다. 비록 가치관은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같은 사회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은 크게 볼 때 유사성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의 가치관은 전통적으로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그 변화를 전통소설 속에 나타난 한국인의 가치관을 검토함으로써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소설 속에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 그리고 무격(巫覡) 사상의 흐름이 있다. 대개의 작품은 위 네 가지 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사상을 아울러 그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심청전, 사씨남정기 등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 조상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 자연은 매우 신비로운 존재였다.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과 마력(魔力)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것은 본래 우리 조상들 마음 한 구석 깊이 태곳적부터 깃들었던 샤머니즘 사고방식이다. 그 샤머니즘이 다른 종교나 관습 즉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 사상과 잘 소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조선시대의 소설을 보면 조상들은 인간을 자연 속에 포섭되는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연은 경외와 신앙의 대상이었으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천명(天命) 또는 천수(天壽)에 달려 있다고 보았던 까닭에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숙명론적 인생관이 퍼져 있었다. 팔자를 탄식하고 국운을 한탄하는 형식의 내용들이 소설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숙명론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시대 가치체계를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인생의 소망 및 이상은 높은 가문, 고관의 지위(地位), 유덕한 인품(人品), 명성(名聲) 그리고 지존(至尊)이었다. 동시에 사람들이 강하게 추구한 가치는 건강과 장수(長壽), 자손의 영달(榮達), 안락한 죽음이었고 이것이 다름 아닌 행복의 조건이었다. 처자와 더불어 물심양면으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하며, 단란한 가정생활을 누리며, 자손 대대로 번창하고, 대가 끊이지 않는 일 등이 행복의 잣대였던 것이다. 그 이상의 가치들은 안으로는 입신양명을 통해서 가문을 더욱 빛내는 것이었고, 밖으로는 사람의 지킬 바를 반드시 지킴으로써 명예롭고 깨끗한 삶을 유지하여 지조, 정조, 의리의 사람으로 칭송을 얻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날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양반과 고관들이 말로는 재물을 가벼이 여기는 듯이 하면서 행동으로는 몹시 그것을 탐내는 모순도 범하였다. 이러한 이중적 가치관을 폭로하는 소설이 많이 등장한 것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실학이 부상하여 선각자들이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하게 되었지만, 이것은 결코 정신적 가치의 막중함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양반들의 무능과 위선을 미워하고 폭로한 것이다. 이렇듯 조선시대 가치관의 문제와 현대 우리 사이의 연속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가치관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자기중심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높은 관직에 올라 영화를 누리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고위 관직에 오르기 위한 경쟁, 당쟁에 쉽게 빠지게 되었고, 그 결과 세도정치, 당파정치를 통해 자기사람을 편파적으로 우대하는 파벌정치를 낳게 되었다. 또한 신분제로 인한 숙명론적 사고가 또 하나의 중요한 특성이다. 조선시대의 신분제 즉 양반, 중인, 상민, 천민 등으로 나눈 것은 일반인의 사회적 상승을 가로막는 불공평한 사회적 제도이며 장애물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를 팔자 혹은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국가에 소속된 백성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참여하는 권리의식이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궁극적으로는 마을공동체를 넘어서는 더 큰 공동체 의식, 즉 국가관을 이루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국가 경계를 넘어 세계시민으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에게도 극복해야 할 유산으로 남게 되었다.
인간은 현실 삶 속에서 끊임없는 가치충돌의 긴장 속에서 살아 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크게 두 가지 가치를 지향하며 살게 된다. 그 하나가 외면적 가치로서, 금전, 권력, 지위, 명예, 향락 등을 포함한다. 다른 하나는 내면적 가치로서 인격, 지식, 예술, 자유, 우정, 정의 등을 포함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외면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적 강자나 부자들이 내면적 가치의 실현보다는 외면적 가치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를 독점하기 위해 공평하지 않는 방법을 동원한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내면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을 강조하며, 일반인의 계몽을 꾀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사회 지도층 심지어 지식인들마저도 이중 잣대를 갖고 위선적인 언행불일치를 일삼고 있다. 결국 이러한 위선과 허위의식은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어 사회 전체가 외면적 가치만을 추구하게 된 결과, 경쟁, 시기, 질투, 쏠림, 모방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최근 들어 명품 구매가 계층, 세대, 지역에 상관없이 확산되는 것은 이러한 외면적 가치 추구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한 사회나 국가가 외면적 가치만을 추구한다면 그 사회성원들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나 존재감을 쉽게 망각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지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서 사유, 자유, 창조의 능력을 가진 이성적 존재로서 그 존재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내면적 가치를 우위에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 존재가치가 상실된다면 인간은 곧 비인간화, 자기소외, 자기상실감 등에 빠져 사회 전체적으로도 화합과 조화, 상생의 모습은 약화될 것이다. 반면에 외면적 가치에는 강한 경쟁성이 그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외면적 가치를 최우선의 가치로 추구하게 될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그 가치체계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그것을 향해 열심히 행동하는 풍조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적 혼란과 욕구불만은 더욱 심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자신의 한계와 상대방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외면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부당성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특권적 지위를 상실할 지라도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하고 상생과 공생발전을 꾀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한다면, 이것은 내면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한국인의 가치관 결여의 또 다른 현상은 사사로운 인간관계로 인하여 중요한 도덕 의무를 뒷전으로 미룬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는 근대화가 급속적으로 진전되면서 생명, 건강, 자유, 사회정의, 평화, 도덕적인 인품, 탁월한 예술, 지식, 우정 등과 같은 공공적 가치를 우선시하기 보다는 사사로운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인정과 인간애가 풍부했고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그것을 추구하였다. 때로는 개인적인 손해를 보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고, 검소와 소박한 삶이 미덕이던 사회가 이제는 극단적 개인주의로 치달아 자기 식구, 자기 학교, 자기 조직, 자기 고향을 중심으로 강한 집단의식(collective consciousness)을 형성하는 이기적 공동체를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사회 자화상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게 변하고 있다. 돈과 개발이 주류가 되는 ‘욕망의 정치’가 사회 공동체의 유대관계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사회에는 자살과 범죄, 몰염치, 소모적 경쟁, 권력과 연줄에의 집착 같은 현상들이 확산되고 있다. 상식은 무너지고 편법의 힘이 곧 능력 있는 자로 평가받는 사회가 되었다.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과 방향의 부재 현상 속에서 무작정 남을 쫓아 흉내 내는 쏠림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뉴타운, 대박, 부자 되기, 조기유학, 명품족 등이 한국 사회를 묘사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은 결국 대혼란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제 성장을 향한 일방적 질주와 몰가치적 욕망의 정치는 사회정의와 복지, 공정사회, 민주주의, 평등에 대한 대중들의 새로운 관심으로 바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가의 문제이다.
한국 사회는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분명 갖고 있다. 민주화와 근대화(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는 그리 흔하지 않다. 일본과 중국사회가 부러워할 만한 민주화의 길을 한국 사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걸어가고 있다. 올바른 가치를 어려서부터 내면화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그것이 상상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일관되게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경험할 때 한국 사회의 미래는 밝은 것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고,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시되고, 사회 전체보다 개인이 우선시 되고,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시될 때 우리 사회는 경쟁, 배타성, 그리고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생명, 정의, 민주주의, 복지와 평등과 같은 내면적 가치를 나눔의 실천 속에서 체득될 때 비로소 한국인의 올바른 가치관을 이웃 국가에 자신 있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때로는 공동체주의로, 때로는 금욕주의로, 때로는 인도주의로, 때로는 다원주의, 때로는 조합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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