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지난 글('경제교과서에도 없는 비정상적 조치를 하다…동서독 화폐교환')에서 독일의 화폐교환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독일의 경우를 보듯 경제 격차가 큰 두 체제가 전격적으로 통합돼 화폐교환이 이뤄질 경우 많은 충격을 수반합니다.
[ https://bit.ly/3DM4G47 ]
화폐교환 비율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충격의 정도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두 체제의 경제 격차가 크다면 어떤 방식이든 충격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한의 경우 독일보다 두 체제의 경제 격차가 크기 때문에 전격적인 화폐통합의 충격은 훨씬 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독일처럼 북한 화폐의 가치를 과대평가해 주는 방식의 화폐교환을 실시하게 되면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물건값이 실질가치보다 대폭 인상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북한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폐쇄적인 북한 경제 체제에서 선진 기술과 교육을 전수받지 못해 남한 노동자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들의 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기업 경영 능력도 부족한 북한 기업들이 버텨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북한 제품들의 가격까지 대폭 올라가면 품질도 조악한 대부분의 북한 제품들은 시장에서 외면받게 될 것입니다. 임금 인상으로 생산비용은 높아지는데 판로마저 막히면 북한 기업들의 줄도산은 시간문제입니다. 기업 도산으로 북한 지역에서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면 북한 노동자들은 남쪽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남북한 경제의 생산성 차이를 고려한 화폐교환을 실시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생산성을 고려한 화폐교환이란 북한 화폐가 남한 화폐에 비해 낮게 평가된다는 것이고 북한 노동자의 실질임금이 남한 노동자에 비해 낮아진다는 얘기인데, 북한 지역에서 받는 임금이 남한 지역보다 낮다고 하면 이동이 자유로운 단일경제권 하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 지역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북한 화폐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남북한 화폐의 적절한 교환비율을 찾기 어렵습니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으로 북한에서 시장환율(공식환율이 아님)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미화 1달러당 북한돈 5,500원 선입니다. 남한의 환율은 미화 1달러당 남한돈 1,180원 선인데, 이 기준에 따르면 남한 화폐 대 북한 화폐의 교환비율은 1:4.7 정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쌀 가격으로 따져보면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역시 데일리NK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북한 쌀 가격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1kg당 북한돈 4,500원 선입니다. 20kg 기준으로 하면 북한돈 9만 원 선인 것입니다. 반면 남한의 쌀 가격은 20kg 기준으로 남한돈 6만 원 안팎입니다. 쌀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남한 화폐 대 북한 화폐의 교환비율은 1:1.5 정도가 맞는 것입니다.
따라서 남북한 화폐통합은 남북의 경제 시스템이 분리돼 있는 기간 동안 당국이 화폐교환에 필요한 여러 자료들을 수집해 면밀히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 뒤 이뤄져야 합니다. 아마도 이런 자료 수집이 이뤄지는 동안 북한의 경제 개혁이 어느 정도 진행돼 시장경제가 전반적으로 안착돼야 할 것입니다. 수요 공급에 의한 가격결정이 이뤄지고 물가도 안정을 찾는 등 북한 경제가 전반적으로 궤도에 올라야 남북한 화폐통합을 위한 의미 있는 자료들이 축적되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 화폐통합을 하기 전 남북한 간 교역을 위한 화폐거래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도 자료 축적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남북한 화폐거래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남북한 지역이 별도의 화폐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두 화폐를 매개할 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미국 달러로 임금 지급이 이뤄졌지만 남북이 통일되면 달러를 베이스로 교역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므로 별도의 거래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북한 지역의 물가가 안정화되기 전까지는 남북한 간 별도의 회계단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남북한 화폐와는 별도로 남북한 간 거래대금 정산을 위한 별도의 회계단위를 도입하자는 것입니다.
이는 경제 개혁에 들어간 북한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남한 화폐와 북한 화폐를 직접 교환할 경우 남한 기업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한 기업이 북한 기업과 매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 당시 남북한 화폐의 교환비율이 남한 화폐 1원 때 북한 화폐 5원이었다고 합시다. 계약 이후 실제 대금 지급은 6개월 뒤에 하기로 했는데 그 기간 동안 북한 지역의 인플레이션으로 북한 물가가 2배 올랐다고 하면 남한 기업이 북한 화폐 5원을 받아도 실제 받은 가치는 6개월 전 화폐가치 기준으로 2.5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계약 당시에 비해 물가가 2배 오르면서 남한 기업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남북한 간에 별도의 통합회계단위를 도입하면 이러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편의상 통합회계단위를 1unit라고 명명하면 남북한 간의 거래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남한 기업이 1unit당 북한 화폐가 10원일 때 계약을 체결하고 6개월 뒤 돈을 지급받기로 했는데, 6개월 뒤 북한 지역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두 배 올라 1unit당 북한 화폐가 20원이 됐다고 해도, 남한 기업은 어차피 1unit로 정산을 하게 되기 때문에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북한 지역의 물가 수준이 통합회계단위인 1unit에 실시간으로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통합회계단위는 남북한의 대표적인 소비자가 구매하는 재화와 서비스로 구성해 수시로 업데이트해야 하며, 통합회계단위를 사용하게 되면 남북한 간 공동지급결제시스템 구축이 필요해집니다.
북한 경제가 안정화되면 북한 원화와 1unit 간 교환비율이 안정화될 것이고, 이를 남한 원화 대 1unit 간 교환비율과 비교해 보면 남북한 화폐의 적정 교환비율이 산출될 것입니다. 이후 새로운 화폐를 도입하든지 남한 원화를 단일화폐로 정해 북한 원화를 남한 원화로 교환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통합회계단위를 통한 남북한 화폐교환비율과 외환시장에서 형성되는 남북한 화폐 간 가치 비율의 차이 등 조정해야 할 문제들이 일부 있기는 합니다. 통합회계단위로는 1unit당 남한 화폐 1원 대 북한 화폐 2원의 비율이었는데, 원-달러 외환시장에서 미화 1달러당 남한 화폐 1,000원 대 북한 화폐 1,500원의 비율이라면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뚯입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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