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인 기자 입력 2021. 07. 31. 14:00 수정 2021. 07. 31. 14:04
[경향신문]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우리는 Y파일이라고 부릅니다.”
기자가 접촉한 한 인사의 말이다. 이 인사로부터 수많은 조사자료를 건네받았다. 신분은 확실하다. 정치권이나 정치권 주변의 인사는 아니다.
이른바 ‘윤석열 X파일’ 논란은 때마침 윤석열 예비후보의 장모 최은순씨가 구속되면서 처가리스크 논란으로 변질됐다.
그러나 신지호 전 의원이 ‘국회 야당의원실 목격담’을 거론할 때나 시사평론가 장성철씨가 거론한 ‘X파일’의 본류(本流)는 처가 의혹이 아니다. 검사 윤석열, 평검사에서 검찰총장 재직 때까지 검사로서 본인의 행적과 관련한 의혹이다.
지난 2019년 7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윤석열 당시 총장 후보가 제출한 ‘재직청별 대표성과’는 다음과 같다.
▲일반검사: 광주지검-2003년 대선자금 사건(대검 파견) 고양지청-파주 운정지구 택지 부정불하 사건, 현대자동차그룹 비리사건(대검 파견) ▲고검검사급 대검연구관: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파견), 변양균·신정아 사건,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범죄혐의 진상규명 특검(파견) ▲고검검사급 대검중수1과장: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고검검사급 서울지검 특수1부장: LIG 기업어음 사기 사건 ▲고검검사급 여주지청장: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파견) ▲고검감사급 대전고검검사: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 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검(파견) ▲대검검사급 서울중앙지검장: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파괴 사건.
이른바 ‘Y파일’에는 방대한 분량의 ‘검사 윤석열’ 관련 자료가 들어 있다. 모두 합쳐 1000페이지 분량 이상이다.
실제 ‘윤석열 X파일’이 존재한다면 일부 내용은 겹칠 것이다.
한겨레신문·오마이뉴스 등이 공개한 삼부토건그룹 조남욱 회장의 일정표도 이 자료에 포함돼 있다.
‘검사 윤석열’은 최소 4회 이상 조 회장의 일정표에 등장한다. 일정표에 근거해 이들 언론이 골프회동 등의 만남이 있다고 보도하자 윤석열 예비후보는 캠프를 통한 입장문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일정표’에 2011년 4월 2일 ‘최 회장, 윤검’ 기재가 있다며 제가 그날 골프를 쳤다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3월 15일 중수2과장이자 주임검사로서 200여명 되는 수사팀을 이끌고 부산저축은행 등 5개 저축은행을 동시 압수수색을 하는 등 당시는 주말에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밤낮없이 일하던 때”라며 “위 날짜에 강남300CC에서 골프를 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과 조 전 회장과 관계에 대해 “조남욱 전 회장은 알고 지내던 사이로 20여년 전부터 10년 전 사이에 여러 지인과 함께 통상적인 식사 또는 골프를 같이 한 경우는 몇차례 있었다”라며 “최근 약 10년간 조남욱 전 회장과 만나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평소에도 그래왔듯이 비용을 각자 내거나 번갈아 냈기 때문에 ‘접대’를 받은 사실은 전혀 없다”라며 “명절 선물은 오래 되어 잘 기억하지 못하나 의례적 수준의 농산물 같은 걸 받았을 것이고, 값비싼 선물은 받은 적 없다”고 덧붙였다.
그럴 수 있다. 일정표에 약속이 기재됐다고 그 약속이 반드시 실행됐다고 할 수는 없다.
윤 후보의 개인사정으로 라운딩 약속에 그가 빠졌거나, 약속 자체가 취소됐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윤 후보의 해명에는 빠진 부분이 있다. 검사와 건설회사 사장은 어떻게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됐을까. 라운딩하면서 검사 윤석열과 건설회사 사장 사이에서는 어떠한 이야기가 오갔을까. ‘조 회장과 함께 20여년 전부터 10년 전 사이에 몇차례 식사 또는 골프를 같이 친’ 지인들은 누구일까. 윤 전 총장이 스폰서나 접대는 아니라고 한다면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본격적인 검증 전에 확인돼야 하는 것이 윤 후보가 이 일정표가 ‘출처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한겨레신문·오마이뉴스 등에서는 이 일정표에 적힌 스케줄에 실제 조 전 회장이 참석한 언론보도 등을 예로 들며 “신빙성이 높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 일정표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수단도 있다.
2013년 수원지검이 조시연 당시 삼부그룹 부사장의 배임횡령 혐의를 조사하면서 회장 비서실을 압수수색한 적이 있다. 조 부사장은 조남욱 회장의 둘째 아들이다. 당시 수원지검이 압수했다 돌려준 압수물품 반환목록에 이 일정표들이 들어 있다.
당시 목록을 보면 ‘회장 달력판(1997~2012년, 수량 13)’, ‘비서 달력판(2005~2012년, 수량 8)’, ‘이사회 노트’라고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다.
실제 기자가 입수한 거의 동일한 일정이 적혀 있는 3종의 일정표 중 ‘일일표’ 형식으로 수기돼 있는 일정표를 뺀 2개를 이미 검찰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 압수수색이 일정표의 출처를 보증하는 셈이다.
검찰 수사목록처럼 일정표는 1997년부터 시작되고 있다. “약 10년간 만나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는 윤 후보의 말은 실제 일정표 기록과도 맞아떨어지긴 한다. 현재가 2021년이니 10년 전이면 2011년이다.
2011년 기록을 보면 논란이 된 4월 2일 오전 9시 54분의 골프회동, 그리고 그해 8월 13일 점심 2건만 확인된다(연말·연초 연하장 명단에는 다시 윤석열 대검찰청 중앙수사1과장이 등장한다). 2012년 일정표에서는 3월 11일 ‘윤석열 검사 화환, 대검찰청 별관 4층’ 일정만 확인된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결혼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조 전 회장이 윤 검사와 같이 만난 지인들이다.
윤 후보 측이 부인한 4월 2일 회동에는 윤 검사와 최 회장(장모 최은순)만 참석 멤버로 적혀 있다. 그런데 8월 13일 말복 점심 일정에는 윤 검사의 지인 두사람이 언급돼 있다. 심무정과 황 사장이다.
다시 주목되는 것은 윤석열 검사와 부인 김건희씨를 연결시켜준 것으로 알려진 무정 스님(심무정)이 확보된 일정표의 거의 처음부터인 1997년부터 단골로 나오는 인사라는 점이다.
황 사장의 전체이름은 2002년 6월 21일 황 사장 모친상 조의금 메모부터 나오는데, 거의 무정 스님과 함께 거론돼 있다.
조 회장의 일정표에 등장하는 검사는 윤석열만이 아니다. 오히려 윤 검사의 등장 비중은 적다.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이는 이른바 처가스토리에 등장하는 양재택 검사다.
체크를 해보면 약 80회의 일정이 나온다.
김건희씨의 이전 이름인 ‘김명신 교수’가 첫 등장하는 시점은 2003년 7월 4일이고, 두 번째로 등장하는 2005년 9월 14일에는 김명신 교수 전화번호와 함께 (“Mrs.차(cha) 453-0315”)라고 병기돼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윤 후보가 골프회동 만찬에 함께한 지인들이 누구인지 거론하지 않았지만 일정표상에는 항상 일정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앞서 언급한 무정 스님과 황 사장, 그리고 최(은순) 회장이다.
무정 스님도 마찬가지이지만 황 사장은 강원도 동해, 속초 일대에서 전기공사업을 하고 있는데, 삼부토건 회장과 골프라운딩 등을 할 어떤 과거 인연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인 황 사장이 윤 후보 관련 의혹에 다시 등장한 것은 최근이다.
“우리도 진짜 먼 친척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윤 전 총장을 삼촌, 김건희를 작은 엄마라고 불렀다. 그래서 소문이 수행담당은 윤석열의 조카가 맡고 있는 것으로 난 것이다.”
전 캠프 인사의 말이다. 6월 29일 공식 출마 선언 전 윤석열 전 총장 수행비서가 누구냐를 두고
설왕설래가 나왔다. 부동시로 군 면제를 받은 윤 전 총장은 직접 운전하지 않는다. 본인 소유의 자동차도 없다. 캠프 주변에 흘러나온 소문은 윤 전 총장의 조카가 운전하고 수행한다는 이야기였다.
황씨 성을 가진 이 인사의 아버지가 바로 조 회장의 일정표에 등장하는 동해 전기공사업자 황 사장이라는 것이 확인된 것은 지난 7월 28일 더 팩트의 보도가 처음이다. 황씨는 어떤 경로로 윤석열 캠프에 합류하게 된 것일까.
아들 황씨의 존재가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6월 29일 출마 선언 이틀 전, 선언장소인 윤봉길기념관 답사현장에 윤 후보에 바짝 붙어 수행하는 장면이 포착되면서였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천안함 모자를, 황씨는 천안함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7월 25일 윤석열 국민캠프에 청년특보로 합류한 시사평론가 장예찬씨는 과거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과 윤석열 후보 만남 자리를 주선한 바 있다.
이후 장씨는 기자에게 6월 27일 윤봉길기념관 답사 때 쓴 모자 등은 “이때 윤석열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7월 29일, 강원도민일보의 보도에서 황 사장은 다시 등장한다.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가 출마 선언하기 전 강원도를 방문했을 때, 윤 후보는 비공개일정으로 황 사장을 만나 차를 마셨다.
황 사장은 강원도민일보에 윤 전 총장과 자신의 인연에 대해 “사법고시를 보기 전부터 서울에서부터 알던 사이로 윤 전 총장이 강원도에서 근무하게 되자 더욱 친분을 쌓게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조 회장과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황 사장은 강원도 동해의 전기공사업체 대표다.
업체는 지난 2009년 주식회사로 전환됐는데, 업체 등기부등본을 보면 한때 사내이사를 맡은 것으로 돼 있는 익숙한 이름이 있다.
심무정, 무정 스님이다. 다시 신용정보회사에 등록된 이 회사의 매출 현황을 보면 2014년도 매출의 85%가 삼부토건을 통해 발생했다.
삼부토건의 특수관계회사라고 볼 수 있다. 다시 궁금한 것은 조 회장과 골프라운딩 등을 자주 가졌던 지인들이 윤석열 후보의 지인이라는 점이다.
황 사장의 아들이 수행비서를 맡고 있던 점, 그리고 역시 삼부토건의 자문역을 맡았던 정상명 전 총장의 사위가 무보직으로 캠프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점을 들어 7월 28일 이재명 캠프 측 전용기 대변인은 “삼부토건 관계자의 친인척이 윤 전 총장 캠프에 참여했다”며 “윤 전 총장과 옛 삼부토건과의 ‘특수관계’ 의혹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윤 후보 측은 “윤석열의 국민캠프에는 삼부토건 관련자 및 친인척이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서 “삼부토건과 관련해 제기되니 의혹은 모두 오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수행을 맡고 있던 황 사장 아들 황모씨는 뭘까.
관련 기자의 해명 요구에 김병민 윤석열 국민캠프 대변인은 “지적사항을 듣고 다시 한 번 캠프구성원 전체 명단을 확인해봤다”며 “국민캠프가 출범하기 전까진 모르겠으나 현재 캠프구성원 명단에 황모씨는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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