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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 길들이려 협상 거부.. '죽창가' 탓은 위험한 진단"

독도,위안부,강제징용,경제도발

by 석천선생 2021. 7. 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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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 길들이려 협상 거부..'죽창가' 탓은 위험한 진단"

 

박민희 입력 2021. 07. 07. 05:06 

 

박민희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남기정 서울대 교수

일본서도 수출규제 반성..한국에 책임 지우는 건 자기비하
우리 정부 '여러 카드' 내놨는데 일본 '청구권 협정'만 고수
강제동원 판결 직후 해법 진전시킬 타이밍 놓친 건 아쉬워

한일관계 '저강도 복합갈등'..서서히 체질개선 '한방 요법' 필요
문 대통령 올림픽 참석 매달릴 이유 없지만 보이콧은 역효과
처음으로 한국 선망하는 일본인들 등장..당당하게 다가서야

 

남기정 서울대 교수가 지난 1일 오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에서 한일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7월1일로 일본이 한국을 겨냥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규제 조치를 한 지 2년이 흘렀다. 한일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치·외교와 한일관계를 깊이 연구해온 대표적 학자인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지난 1일 인터뷰에서 “한일관계가 대전환 시대에 맞게 업그레이드 되지 못했고, 일본이 동북아 질서를 둘러싸고 ‘한국 길들이기’를 하려는 것이 원인”이라며, “한일관계가 장기적인 저강도 복합 갈등의 시대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

남 교수는 저서 <기지국가의 탄생>을 통해 한국전쟁 기간에 ‘기지국가’로 변신한 일본이 냉전의 형성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논증했는데, 그 연장 선상에서 대전환 시대를 맞은 지금 한·일이 신냉전을 앞당기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이 새로운 국제질서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돼 대중국 군사적 대결의 전위에 서지 말 것,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과정에서 일본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죽창가로 상징되는 반일감정이 한일관계를 악화시켰다’는 윤석렬 전 검찰총장의 주장에 대해서는 “위험하고 잘못된 진단”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일관계가 이토록 오랫동안 개선의 계기를 찾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현재의 대전환 시대에 맞는 한일관계로 업그레이드를 못하고 있는 상황 때문이다. 현상적으로는 일본이 역사 문제 갈등에 대한 기술적 해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 원인이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2015년 12.28합의 이후 한국은 역사적 기본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몇차례 제안을 했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을 흔드는 어떤 것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이행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1965년 체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분히 정치적 주장이고 역사적인 경위나 국제법 법리로 봐서도 맞지 않는 이야기인데, 일본이 그런 주장을 앞에 걸어놓고 협상을 하려 하지 않는 것이 지금 가장 큰 문제이다.

 

일본이 그런 ‘기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한국 길들이기’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동북아 질서 인식과 구상에 한국이 따라올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정학적 대변동 속에서 일본이 그리고 있는 구상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인해 어그러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본의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갈등은 역사적 연원이 깊고 지정학적 넓이가 크다.”

 

―윤석렬 전 검찰총장은 ‘죽창가’로 대표되는 한국의 반일감정 때문에 한일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했는데.

“진단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원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문제의 원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있고 일본에서 풀어야할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카드로 내놨다.

 

그것으로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데 과연 누구한테 문제가 있는가. 이에 대한 진단을 잘못하면 대일외교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17년 말 12.28 합의에 대한 검증을 둘러싸고 한일 사이에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지만, 2018년 한일 왕래는 연간 1000만명 시대를 맞이했고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하기 이전까지 시민 교류는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상황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였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수출규제 조치는 일본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그에 대한 정당한 고려 없이 마치 모든 책임을 한국에 지우려 하는 것은 자기비하다. 그런 사람이 우리 보수의 주목 받는 대선 후보라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를 돌아본다면,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역사 문제를 현관에 두고 ‘이것을 풀지 않으면 아예 못들어간다’고 한 (박근혜 정부의) 원트랙 전략이 결국 12.28 합의라는 실패작을 만들어냈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현안 협력과는 분리시키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갔는데, 나름대로 성과도 거뒀다.

 

미묘한 균형이 깨진 것은 2019년이다. 일본이 원트랙을 고집하면서 악화한 한일관계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한일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사이 일본이 마음 놓고 훼방꾼(스포일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우리 정부가 더 큰 차원에서 고민했다면,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 직후에 타이밍을 잘 잡아서 문제가 깊어지기 전에 판결을 존중하는 수준에서 해법을 고민해서 진전시켰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이밍을 놓쳤다. 2018년 10월에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그해 연말까지는 일본이 청구권 협정 3조에 근거한 중재를 요구하며 기다렸던 것 같다.

 

거기에 응할 필요는 없었더라도 우리 의향을 적극적으로 전하고 다른 방향으로 진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조금 더 바란다면, 대법원 판결을 앞둔 시점에서부터 대일외교가 개시되었어야 한다.

 

사전에 일본과 대화를 하면서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다’는 식으로 적극적인 외교를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한일 화해프로세스를 아우르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대일외교의 위치를 잘 가늠해서 적시에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여우의 지혜에도 기대야 했지만, 고슴도치의 바늘에 너무 크게 의지했다”

 

―수출규제는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어떤 시사점을 찾아야 하나.

 

“수출규제 조치 이후에 드러난 것은 일본과의 긴밀한 경제·안보 협력이 필수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과 문제가 생기면 큰 일 날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잘 견뎌왔다. 역사 문제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켜도, 경제와 안보에서는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적 정합성이 이제는 없다.

 

그래서 투트랙 외교가 기능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 공동체, 기업인들을 비롯한 일상 교류의 회복, 저출생 고령화 극복을 위한 협력, 기후위기, 원전재난 등의 문제에서 더욱 양국의 협력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키려면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증명이 되었다. 안보 협력보다는 평화 협력의 상대로서 일본은 중요한 상대가 되었고 그런 점에서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우리 국민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역량을 확인하면서 우리가 일본에 양보만 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가 일본을 추격하다가 이제 추월하는 분야가 생기고 있고, 문화 발신력에 대한 자부심도 느끼고 있다. 한일관계는 장기적인 저강도, 복합 갈등의 시대로 갈 것이다. 갈등이 여러 분야에 있고, 어느 하나를 푼다고 한꺼번에 개선되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

 

양국 모두 서둘러 개선하자는 쪽으로는 안 갈 것 같다.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한일관계에서 서서히 체질을 개선해가는 ‘한방 요법’을 시도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오는 23일 도쿄올림픽이 개막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통해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도쿄 올림픽위원회가 지도에 독도를 표기한 데 대해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하는데.

 

“한국은 중견국의 선두로서 동북아를 넘어 좀 더 넓은 장에서 외교를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대통령이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꼭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양자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조급해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개막식에 초청 받으면 가는 것이고 일본이 초청하지 않으면 특별히 매달릴 필요도 없다. 대일외교에서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종합적인 국력에서 일본은 한계에 다다랐다.

 

지금의 일본은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메이지 유신 이후에 한반도를 군홧발로 밟고 대륙으로 나가려던 나라도 아니고, 1930년대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어서 맹주 역할을 하겠다는 일본도 아니다

 

. 일본의 꿈은 1920년대처럼 국제질서의 형성자로 나서겠다는 정도인데 지금 일본의 상황으로는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 대해 우리가 자신감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일본을 이끌어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즉자적으로 반응해서 일본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도 이렇게 맞대응한다는 식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일본을 향해서 식민지배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이 문제를 처리하는 모범국이 되는 것이 일본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꾸준히 얘기해야 한다.

 

올림픽을 보이콧한다면 당장은 우리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국제사회에서 독도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역효과가 있을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지법에서 강제동원 배상이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내용의 판결을 한 것을 어떻게 보는지.

 

“시대착오적이다.

 

보수적인 사람들 사이에 이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좀 암담해졌다. 아무리 한일관계가 중요하고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부담으로 여기더라도 이런 논리를 가지고 과연 설득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복잡한 심정이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아직 법리적으로는 성립하지 않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얘기를 왜 굳이 한국 법원이 해야 하나. 더구나 국제사회의 흐름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그런 변화를 모르거나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논리 구성도 엉성하고, 곳곳에 오류가 눈에 띄는 한심한 판결문이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가 1일 오후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현재 상황에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가장 합리적인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법원 판결은 판결대로 이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판결은 이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이 여기에 응하지 않는다면 강제집행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원고의 변호인들은 일본 쪽에서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일본 기업이 일단 보상금 형태로 보상하고, 위령과 기념 행사 등의 노력을 한다면 받아들이고 화해의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일본 기업이 어떤 형식으로든 응한다면,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것이 된다.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도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경위가 있다.

 

식민지 지배가 한국 국민의 뜻에 반한 것이었음을 인정한 간 나오토 담화가 그것이다. 이를 디딤돌로 삼아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일본이 인정하는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지만, 식민지 시기 발생한 문제들이 모두 불법이었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면, 앞으로도 새로운 배상 책임이 계속 발생하는 것을 일본은 두려워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가 불법이었다는 대법원 판결의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국민들이 강제동원 피해를 당할 때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서) 분명히 존재했으므로, 우리가 껴안아야 할 책임이 발생한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독자적으로 책임을 이행하는 것으로 피해자 구제를 개시할 수 있다. 나아가 배상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의 청구권 자금, 한국인 피폭자 의료비 지원, 사할린 동포 귀국 지원 등 그동안 일본이 했던 조치들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배상에 해당하는 것임을 일본 정부가 인정한다면, 이를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 불법성의 인정하고, 이에 대해 명백한 사죄를 표명하면, 그 동안 일본이 실시한 금전적 조치를 실질적 배상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나아가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부활시켜 진상을 규명하고 추가로 배상 받아야 하는 피해자들에게는 우리가 보상하는 것이 방안이다.

 

그게 한국이 성취한 국격에 어울리는 명예로운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1965년 체제’를 넘어 1998년에 시작된 ’한일 2.0’을 보완해서 ‘한일 3.0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일본의 외교전략에서 한국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있다. 일본은 이제 한국이 아닌 대만과의 협력이나 쿼드 등을 통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는 쪽으로 근본적으로 전략을 바꾼 것인가.

 

“일본 주류는 과거에 비해 한국의 중요성을 낮게 보고 있다. 과거 일본이 국익을 확보하는 공간은 아시아태평양이었고, 이 지역에서 미일동맹에 한국을 넣어 한미일 3각 안보협력 체제를 통해 이익을 확보한다는 전략이었기 때문에 미일동맹 다음에 중요한 것이 한국이었는데, 아베 정부가 인도-태평양 구상으로 가면서 미일동맹과 함께 아세안, 인도, 오스트레일리아가 중요해졌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본에서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니까 한미일 3각 관계도 다시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냉전 시기의 한미일과 지금의 한미일 3각협력은 다르다. 옛날처럼 미국이 위에 있고 일본, 한국으로 내려오는 위계적인 안보 협력이 아니라 상당히 수평적인 안보 협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과거에는 북-중-러 북방삼각형을 상대로 이를 봉쇄하는 형태로 한-미-일 남방삼각형이 만들어졌는데, 지금의 남방삼각협력은 한반도에서 북쪽으로 열려 있는 형태로 복원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이후 한미, 미일 정상회담과 외교·국방장관 회담(2+2)를 통해 한·미·일이 각자의 요구를 내놓고 주고 받았다. 미국은 한·일에 ‘대만 이슈’를 받아들이라고 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받으라고 했다. 일본은 인도-태평양을 받으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선택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한-미-일 관계가 복원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구조다. 한·미·일이 서로 주고 받는 관계이고, 한국은 충분히 협상하면서 이익을 거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우리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앞으로도 이를 지렛대로 삼아 한·미·일 관계를 우리가 관리하고 운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본은 한국을 포함해 G7을 G10으로 확대하는 데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게 좋을까.

 

“G7에 한국이 들어가 확대하는 것을 일본은 반대하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은 계속 커질 것이다. 처음으로 한국이 국제질서 형성자로서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분야에서 다자협력의 질서를 만들어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글로벌 밸류체인 재편에서도 우리가 요구받는 부분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

 

―일본이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선 듯 보이지만, 중국과의 경제 관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대중국 정책은 어떻게 진행될까.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인 측면이 분명히 있다. 중국을 적으로 삼는 것은 일본도 원치 않는 구도이다. 한국이 일본과 협력할 여지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생긴다.

 

한국과 일본 모두 중국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는 관리해야 하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에서도 한일 간의 ‘중견국 협력’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다시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신냉전 국면에서 미국과 일본이 대만 카드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관계 강화 움직임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중일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해 우호관계로 확실히 바뀌지 않는다면, 일본에서 대만과의 관계 강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도 있다.

 

경제라면 몰라도 안보에서 일본이 분명하게 대만을 선택하는 상황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없을 것 같다.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만 해협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 센카쿠(댜오위다오)로 불똥이 뛰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부분이다.

 

일본 안에서는 대만 해협 갈등에 끌려 들어갈 수 있는데, 그 경우 미국이 반드시 일본을 도와주려 할 것이냐는 의구심도 있다. 일본도 지금 굉장히 복합적인 계산을 하고 있다.

 

30년 정도 계속 가야할 ‘신냉전 질서’를 생각하면서 중국을 완전히 적대시하고 갈 수는 없다고 본다.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양안관계의 평화적인 전개’라는 말이 들어갔는데 이 부분은 일본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모두 대만 문제에 대한 입장을 요구 받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있고, 그 부분에서도 한-일이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얼마 전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인도태평양 지역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일동맹이 주도하는 질서에 유럽도 끌려들어온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일동맹을 상대화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다. 중국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오고 있지만 중국 포위망의 완성은 아니고, 오히려 대중국 전선이 복잡해지는 현상으로 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게임 안으로 들어가서 움직이는 게 낫다. 외톨이로 있다가 확 끌려가기 보다는 여러 네트워크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게 오히려 예측가능하고 중간지대를 만들 수 있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가 지난 1일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연구실에서 한일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한일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움에 부딪힌 한 원인이 되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한일이 어떤 식으로 이견을 좁히고 협력할 수 있을까.

 

”완전히 인식을 일치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일본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안보 불안이 무엇인지 우리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면 되지만, 일본은 북한 중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고 생화학 무기도 실질적 안보 위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일본과 대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중간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아베가 납치 문제와 관련해 너무 허들을 높여놓아 오히려 일본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북일관계는 없고, 일본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가 전원 생환해야 납치문제가 해결된다는 아베의 목표는 실현 불가능한, 정치적 목표였다.

 

2018~2019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되자, 일본은 이런 불가능한 목표에 얽매여 움직이기 곤란한 딜레마에 빠졌다. 일본도 교훈을 얻은 것 같다. 스가 정부에 들어와서는 이런 원칙을 굳이 강조해서 얘기하지 않는다.

 

‘아베의 대북 원칙을 계승한다’는 얘기는 하지만 스가 정부도 여차하면 북한과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본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도록 우리가 견인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핵심 주제를 가지고 일본과 진지한 대화를 한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현재 동아시아는 신냉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자칫 한미일 군사 협력 강화를 비롯해 동아시아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 군사적 긴장이 급속하게 고조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이런 안보 상황에서 한국이 지켜야할 원칙은 무엇일까.

 

“미사일방어체제 참여로 가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잘못하면 한반도가 신냉전이 오는 입구가 될 수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신냉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관측이다.

 

우리가 먼저 신냉전을 앞당겨서 가져오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냉전 형성기에 일본의 요인이 컸다. 당시 요시다 내각의 일본은 연합국의 점령 하에서 미국의 이익에 자국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것으로 일본의 국익을 확보하려 했다. 마침 시작된 미-소 경쟁의 와중에 일본은 미국 일변도를 선택했고, 그것으로 동북아 냉전이 촉발되었다. 이후 한반도가 전쟁으로 가면서 일본의 의도는 더욱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그런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일본 우익에서 신냉전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우리가 거기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 당장 감당해야 할 손해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장기적 국익을 생각하면 직접적으로 대중국 군사 대결의 전위에 서는 것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으로 한일관계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더해졌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한일관계를 한단계 위로 끌어올리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후쿠시마 주민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현지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계속 오염수를 끌어안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조건 방류를 반대하기만 하는 것 보다는 다른 해결 방법을 논의해보자는 접근도 필요하다. 결국 일본 시민들과 후쿠시마 주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바람직한 해법을 일본 정부로부터 끌어내야 하기에, 한국은 그들에게 다가가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이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방사능 수치를 모니터하는 한일 시민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려는 노력을 일본 시민사회를 상대로 전개해보면 어떨까. 이 문제를 한국과 일본의 대립구도로 가져가면 안된다. 나아가, 우리는 오염수 문제가 없는지, 한국 원전의 안전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양국 시민사회가 양국 정부에 대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촉구하여 원전에 대해 투명하고 민주적인 국제적 감시체제를 만들자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가자고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은 일본의 혐한에 어떻게 대처하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확대해 갈 수 있을까.

 

“일본의 대도시 50~60대 남성과 지방의 젊은 여성들, 청소년들의 한국 인식은 굉장히 차이가 크다. 일본 안에서 서로 융합할 수 없는 ‘두 개의 한국’이 경합하고 있다.

 

혐오의 한국과 선망의 한국이다. 근대 이래 처음으로 일본 안에서 한국을 존경하고 한국을 따라하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결코 허상이 아니다.

 

한국 문화가 그런 실력과 보편적인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지난한 근현대사를 헤쳐 오면서 만들어진 힘이 한국 문화의 보편적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최근에는 혐한보다 이것이 더 두드러진 변화다. 혐한은 오랫동안 지속돼 왔지만, 더 이상 확장성이 없고 식상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사람들 얘기대로라면 한국은 무너지고 이상한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안 그러네’하며 갸우뚱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공공외교로 살려야 한다. 예컨대 올림픽이 열리면 당당하고 자신있는 모습으로 참가해서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외교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30년째를 맞은 `위안부 운동’은 큰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 이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오는 7월14일 수요집회가 1500회를 맞고, 8월14일에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하신 지 30년이 된다.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대략 30주년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는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나 법적 배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의 젊은이가 이 문제를 공유하고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미래를 바라보며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계기로 자신의 경험이 쓰여졌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역사관, 자료관, 박물관을 국가시설로 만들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이 1993년 8월4일에 발표한 고노담화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것이다.

 

고노담화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한 역사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래로 열린 해법을 제시했다. 2015년 12.28 합의가 고노 담화를 계승해서 나온 것이라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말로 이러한 노력을 차단할 수 없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과 그들을 지원한 운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세계에서 찾아오는 이들과도 경험을 공유하면서 ‘미래를 위해 열린 해법’의 근거지로 만들면 좋겠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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