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우주만물( 허수와 실수)
유토피아추천 0조회 321.06.30 13:5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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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이라고 하는 유명한 동양철학이 있습니다 여기서 음양을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허수와 실수입니다. 음양오행론이 조선초기까지 잘 사용되다가 점성술로 전락됩니다. 초고대로부터 정립된 음양론이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이탈된 이유입니다. 허수와 실수료 표현되는 음양의 개념 음의 개념에 대하여 정확한 개념정리해봅시다. 동양사회는 음양개념을 인문학이나 철학적인 용어로만 ㅛ현해서... 과학발전이 지체된 것이 아닌가합니다. 아래와같이 허수의 개념에 대하여 잘 정리한 분이 있습니다. --------------------------------------------------- 우리들은 χ²=-1의 해를 χ=±√-1=ⅰ로 쓰고, 이를 허수(虛數)로 표기한다. 즉 χ²=-1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금방 1차방정식에서 2차방정식으로 그 방정식의 형태를 바꾸어 생각하면, 바로 실수의 세계에서 허수의 세계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이 허수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이 허수는 어떤 수를 제곱했을 때, 음수(陰數)가 되는 수이다, 즉 허수는 실수가 아닌 복소수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허수는 어떤 수를 제곱했을 때 항상 음수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제곱은 어떤 수를 항상 같은 수로 곱해가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 허수의 세계, 우리는 이 허수를 어떻게 해석하여야만 하는가 우리들은 여기서 어떤 수를 항상 같은 수로 곱해간다는 말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즉 어떤 수를 항상 같은 수로 곱해간다는 것은, 바로 수(數)에 있어서 자기조직화를 급속도로 진행한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급속도로 자기 조직화되는 현상을 플랙탈(Fractal)현상이라고 한다. 플랙탈(Fractal)현상은 이렇게 자기조직화 하면서 부분과 전체가 같아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분과 전체가 같아지는 플랙탈(Fractal)현상이 음수(陰數)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바로 이 허수의 세계를 통해서, 왜 전 우주가 음수로 표현되는 어둠으로 형성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들은 허수의 역사적인 발전상을 들여다볼 필요성이 있다 바로 허수는 16세기에 이르러서야 이탈리아의 수학자 카르다노(1501~1576)에 의해서 처음으로 음수의 제곱근으로 기록이 된다. 카르다노는 이 음수(陰數)의 제곱근을 ‘가공의 수’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 후 음수의 제곱근은 ‘가상의 수’, 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수’로 많은 수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가 17세기경에 이르러서 데카르트(1596~1650)에 의해 이 가상의 수가, 바로 ‘허수’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수를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실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수이고, 허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수라고 했을 뿐, 거기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즉 카르다노와 데카르트는 허수의 실체를 수학적으로 그 의미를 풀어냈지만, 그 허수의 세계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이 허수의 세계를 바로 이해하여야만 한다. 허수의 세계란 무엇일까? 우리들이 이미 검토해보았듯이 실수(實數)는 복소수를 제외한 양 또는 음의 값을 갖는 모든 정수로서, 영, 유리수, 무리수들로 구성되는 수이며, 허수는 어떤 수를 제곱했을 때, 음수가 되는 수이다. 그리고 실수는 눈에 들어나며, 허수는 눈에 들어나지 않고 음의 세계로 숨어버린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눈에 들어남과 숨어버림, 있는 것과 없는 것과 같은 이러한 상대성들이 만들어내는 실수와 허수의 세계를 바로 이해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검토해보았듯이, 우리들은 실수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으며, 그리고 허수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다. 즉 자본민주주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본이라는 물질의 세계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이념에만 사로잡혀 살아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물질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과 같은 이분화 된 세상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허수의 허상계와 실수의 실재계가 하나로 만들어진 세상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렇게 실수와 허수의 세계를 하나로 묶어낸 사람은, 바로 수학의 왕이라 불리던 독일의 수학자 가우스(1777~1855)였다. 그는 마침내 실수와 허수를 하나의 좌표평면상에 나타낸다. 그는 바로 좌표평면상에 가로축을 만들어 그것을 실수축이라 하고, 그리고 세로축을 만들어 그것을 허수축 이라하고, 이 둘을 합쳐 하나의 복소수(z = a+bi : a:실수, b:허수) 형태로 만들어낸다. 즉 이렇게 실수와 허수의 세계가 하나의 좌표 표면상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이러한 복소평면상의 세계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복소평면상의 복수세계 ▲ 복소평면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복소평면은 복소수를 나타내는 두 개의 수직선을 실수축과 허수축으로 분류하여 이를 하나의 복소평면 상에 들어낸 것이다. 즉 복소평면 상에서 수평으로 놓인 수직선에는 실수부를, 그리고 직각으로 놓인 수직선에는 허수부를 도시한 것이다. 이처럼 복소평면은 실수부와 허수부의 결합으로 나타낸다. 이때 우리들은 실수부를(a)로, 허수부를(ib)로 나타내어, 이를 합쳐 a + ib의 형태를 띠는 복소수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실수부와 허수부의 합으로 만들어진 이러한 복소평면 상에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 놀라운 현상을 통하여 우주의 숨은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은 과연 똑 같은 사람일까?’. 물론 우리들은 똑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를 수학적인 사유로 분석해보아야만 한다. 과연 거울을 보는 자기 자신과, 그리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은 똑 같은 사람일까? 수학적인 사유로는 분명이 다른 사람이다. 우리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만 할까? 여기에 바로 복소평면의 이해가 필요하다. ▲ 거울 속에 비춰진 나의 모습, 좌측과 우측 무엇이 진짜인가 복소평면은 실수부와 허수부의 합으로 만들어진다. 이때 실수부와 허수부의 합이란 실수부의 실재계(the real)와 허수부의 상상계(the imaginary)를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자기 자신은 실수부의 실재계(the real)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자신은 허수부의 상상계(the imaginary)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친 자기와 자기 자신의 관계는 바로 실수부의 실재계와 허수부의 상상계로 이루어진 하나의 복소평면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거울을 통해서 실수부의 실재계와 허수부의 상상계가 서로 대칭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대칭관계를 형성하는 실수부와 허수부는 항상 서로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을 거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복소평면 상에서 들어나는 실수부와 허수부의 대칭관계를 어떻게 이해하여야만 할까? 더욱이 우리들은 모든 복소수 그 자체도 대칭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를 들어 복소수 z = a+ib가 있다하자. 우리들은 이미 복소수를 형성하는 실수부와 허수부가 서로 대칭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처럼 모든 복소수의 실수부와 허수부가 서로 대칭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복소수 그 자체도 그 자체와 서로 대칭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즉 복소수 z = a+ib의 대칭관계를 이루는 새로운 복소수 z = -a-ib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를 복소평면 상의 모든 좌표표면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복소수의 좌표표면상에서 1상환의 복소수(z = a + ib)는 항상 3상환의 복소수(z= -a –ib)와 서로 대칭관계를 이루며, 2상환의 복소수(z= –a +ib)는 4상환의 복소수(z = a –ib)와 서로 대칭관계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소수 그 자체가 이미 실수부와 허수부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플랙탈 구조의 열매와 눈꽃송이 우리들은 여기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실수부와 허수부의 합으로 이루어진 복소수의 그 전체적인 자체도, 이미 실수부와 허수부의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복소수의 플랙탈(Fractal)구조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플랙탈(Fractal)구조는 항상 부분과 전체가 같아지는 자기조직화의 현상이다. 그리고 복소수에는 이미 이러한 자기조직화의 성격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조직화는 진화론으로 거듭 발전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그런데 우리들은 이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표현하여야만 할까? 그것은 바로 우주의 비밀을 벗기는 상징성에 달려있다. 우리들은 이러한 우주의 상징성을 상징계로 표현할 수 있다. 즉 단순한 복소수(복소수 = 실수 + 허수, z = a + ib)의 모습이 모든 우주비밀을 밝히는 복소수의 새로운 개념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징계의 복소수(z)는 실재계의 실수세계(a)와 상상계의 허수세계(ib)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끈임 없이 자기조직화의 진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복소수의 이러한 성격을 통해서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 음과 양, 여와 야, 실재계와 허수계가 분리되지 않고 서로 하나로 작동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제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우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복소수는 바로 우리라는 우리민족의 문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은 복소수에서 나타난 이와 같이 하나로 된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과 같은 것이 무너지면, 모두가 다 죽는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몸과 마음이 분리된다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복소수의 세계를 구현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복소수의 정신을 오늘날의 다양한 문화에 적용해보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해 n차방정식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n차 방정식의 다차원 세계 우리들은 수학 하면 일단 방정식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정식을 왜 풀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방정식을 풀어야만 한다는 강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들이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알게 된 것과 알아내야만 하는 일들이 늘 상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모르는 것, 그리고 알아내야만 하는 것들을 방정식을 세워서 풀어내는 것이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방정식과 복소평면을 통해서 검토해본 것과 같이 모든 방정식들은 대칭성과 매우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 자연은 언제나 서로 대칭관계를 이루고 있다 2차방정식 : ax2+bx+c = 0 (a≠0)에 대해서 두 근을 α, β라고 할 때 두 근의 합 α + β = -b/a. 두 근의 곱 αβ = c/a 이 되어서 2차방정식에서는 2개의 근이 만들어져 나옴을 알 수 있다. 3차방정식 : ax3+bx2+cx+d=0 (a≠0) 에 대해서 세 근을 α, β, γ라고 하면 α + β + γ = - b/a. αβ + βγ + γα = c/a. αβγ = - d/a가 되어서 3차방정식에서는 3개의 근이 만들어져 나옴을 알 수 있다. ▲ 모든 수와 기하학은 항상서로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논리를 통해서 n차의 고차방정식에서는 n의 근이 만들어져 나온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n차 방정식과 n차 방정식의 근이 서로 일대일 대응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들은 이미 칸토어의 무한집합론에서 상대적으로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면, 그 집합의 기수가 서로 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는 방정식이 무한대로 증가해도 그 근은 역시 일정하게 무한대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무한대로 늘어나는 n차의 고차방정식을 통해 항상 부분과 전체가 같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부분과 전체가 같아진다는 것은 0을 기준으로 서로 대칭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이미 복소평면 상에서 실수와 허수의 세계가 보여주는 현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당신의 얼굴과 당신의 손은 항상 서로 대칭관계로 세계를 설계하고 있다 우리들은 이처럼 복소평면 상에서 이루어지는 무한대의 n차 방정식이 모두 자기조직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기조직화는 0을 기준으로 대칭성을 이루며 플랙탈 구조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우리들은 이제 n차의 고차방정식을 통해 우리들의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 양과 음, 여와 야가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어떻게 상대적인 대칭의 세계를 구현하는지를 배워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빔(空)이다. 일제 식민지시대 고독한 시인 이상이 말한 ‘인생은 일차방정식이 아니다.’ 라는 비탄의 절규는 실수만의 세계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이상은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 이를 논하지를 말라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 세상을 상대적인 대칭의 세계를 빔(空)으로 녹여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빔으로 실수의 실재계와 허수의 상상계를 녹여내는 복소수의 상징세계를 구현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마음을 비우고 이 세상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선경지명의 모든 삶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허수, 존재하지 않는수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0) | 2021.0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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