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 입력 2021. 06. 27. 06:01 수정 2021. 06. 27. 09:40
인도태평양 바다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일대 재해권을 장악해온 미국 해군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밀면서다.
막강한 경제력을 앞세운 중국은 국영 조선소를 총동원해 군함을 ‘찍어내듯’ 대량으로 건조하고 있다. 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 구축함, 잠수함 등 서방의 해군 강대국이 보유한 함정을 자체적으로 확보했다.
새롭게 건조된 함정들은 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에서 훈련을 거듭하며 전투력을 키워나가는 모양새다. 전투기와 정찰기의 활동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중국 해군의 도전이 미 해군의 벽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전력 격차가 단순히 숫자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2000년대 이후 중국 해군은 대형 함정을 잇따라 선보이며 원양 작전에 필요한 플랫폼 확보에 열을 올렸다.
세계 최대의 선박제조 능력을 갖춘 중국의 국영 조선소들은 해군력 증강의 핵심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배수량 기준으로 중국의 조선 능력은 2018년 세계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중국은 이를 통해 군함을 대량 건조하며 해군력을 팽창시키고 있다.
055형 구축함은 태평양 진출을 꾀하는 중국 해군의 핵심 전력이다. 배수량이 1만3000t에 달하는 055급 구축함은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함보다 큰 함정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전투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함교에는 중국이 자체 개발한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4기가 부착되어 있다. 기존 구축함보다 출력이 높아 먼 거리에서 낮은 고도로 날아오는 항공기나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
전자전 및 통신 안테나는 함교 위에 설치된 통합마스트에 모두 수납되어 있다. 전자파 상호 간섭을 피하면서 스텔스 능력을 높이는 통합마스트 제작에는 상당한 수준의 전자 기술이 필요하다. 한국은 2020년대 등장할 차기구축함(KDDX)에 적용할 예정이다.
스텔스 성능도 기존 중국 함정보다 향상됐다는 평가다.
공격력도 막강하다. 112개의 수직발사대를 갖춘 055형은 HHQ-9 함대공 미사일, YJ-18 대함 미사일, CJ-10 함대지 순항미사일 등을 탑재한다. 324㎜ 어뢰를 쏘는 발사관 2기, 해상작전헬기 2대를 탑재하고 있으며 130㎜ 주포 1기, HQ-10 단거리 대공미사일 발사대 1기 등을 갖추고 있다.
중국 해군은 기존의 052D형 구축함, 054형 호위함과 함께 055형을 항공모함 호위의 핵심 전력으로 운용할 전망이다.
상하이 장난조선소에서 2018년 말부터 건조중인 003형 항공모함은 중국의 해양굴기를 상징하는 함정이다.
중국이 기존에 보유한 항모 랴오닝호와 산둥호는 함수를 살짝 들어올린 스키점프대를 사용한다. 함재기인 J-15는 자체 추력에 의존해 이륙해야 하는데, J-15는 최대 중량이 33t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함재기로 불린다.
J-15가 성공적으로 이륙하려면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 연료나 무장 탑재량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
항모에서 함재기를 단기간에 대량으로 이륙시키는데 제약이 많아 운용 효율성은 미국 핵항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배수량이 8만5000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003형 항모는 이같은 문제를 개선했다. 미 해군 핵항모 제럴드 포드에서만 쓰이는 전자식 사출장치를 장착, 30t 이상의 무게를 지닌 항공기도 이륙시킬 수 있다. J-15와 함께 KJ-500 조기경보통제기 운용도 가능하다. 랴오닝호와 산둥호의 약점 중 하나인 감시정찰 능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경사갑판을 적용해 항공기 이륙과 착륙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얼핏 보면 미국이나 프랑스 해군 핵항모와 유사한 외형이다.
중국은 해상 훈련을 통해 해군의 질적 향상도 도모하고 있다. 지난달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중국 북부전구 해군과 공군은 최근 서해에서 J-15 함재기 등으로 구성된 항모 팀과 KJ-200 조기경보기, J-10A 전투기, JH-7A 전폭기가 참가한 지상기지 팀을 구성해 훈련을 실시했다.
양측 전투기는 제공권 장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으며, 공대공, 공대지, 공대함 등 다양한 전투환경을 가정한 상황에서 공격과 방어훈련을 했다.
해군 함정의 태평양 진출도 활발하다. 지난달 31일 중국 군함 3척이 일본 규슈 남단 오스미 해협을 통과해 태평양으로 향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군함이 훈련을 위해 올해 들어 오스미 해협과 쓰시마 해협, 미야코 해협을 여러 차례 통과했다고 전했다.
중국 해군 함정들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별다른 사고 없이 항해했다는 것은 대양해군 건설에 필수인 먼 바다에서의 작전능력 향상이 차근차근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형 함정을 잇따라 바다로 띄우고 있는 중국 해군은 양적 측면에서 미국을 앞서고 있다. 지난 3월 미 의회연구소(CRS)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360척의 군함을 확보해 295척에 그친 미국을 앞질렀다.
하지만 전투함정 100여 척을 보유한 한국 해군이 430여 척을 지닌 북한 해군보다 뒤떨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없는 것처럼, 중국 해군의 양적 우위만으로는 미 해군을 압도하기 어렵다.
지난 4월 26일 촬영된 위성사진은 미국과 중국 해군의 질적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세계 각지의 군함을 추적하는 트위터 계정 OSINT-1은 같은달 28일 미 구축함이 대만 동부 해안에서 동쪽으로 200여㎞ 떨어진 필리핀해에서 중국 항모 랴오닝호를 바짝 뒤쫓는 것으로 보이는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위성사진에는 미 해군 알레이버크급 이지스구축함 1척이 랴오닝호 등 5척으로 구성된 중국 항모 전단의 한가운데서 항해하는 모습이 찍혔다.
미군은 군함들이 밀집한 좁은 해역에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항해하며 중국 항모 전단 대형을 흔들었다. 반면 항모 호위에 실패한 중국 해군은 미국과의 ‘실력차’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중국 해군이 질적 격차를 만회하는 방법은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대만 해협 등 자국 연안과 가까운 곳에서 미 해군과 겨루는 것이다.
중국 공군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군수품 보급도 용이하다. 양적 우위를 극대화해 미 해군을 압박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미국으로서는 불리한 조건이다.
미국은 이같은 지정학적 열세를 동맹국으로 극복한다. 일본 요코스카와 사세보, 오키나와, 한국의 부산 등은 미 해군 함정들이 머물면서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는 핵심 지역이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으로서 유사시 미국을 지원할 수 있으며, 연합훈련 등을 통해 상호운용성을 유지하고 있다. 물자 보급은 물론 연합작전에도 나설 수 있는 셈이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 중국과 인접한 바다를 벗어나면, 중국 해군은 유사시 기항할 기지가 거의 없다.
아프리카 지부티에 기지가 있지만, 이곳에는 미군도 주둔하고 있다. 중국 군함과 함께 움직일 동맹국 해군도 없다. 중국 해군의 원양 작전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 해군이 2020년대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중인 유령함대는 중국 해군의 양적 우위를 무너뜨릴 카드로 평가받는다.
유령함대는 무인 수상함과 무인 잠수함(잠수정)으로 구성된 무인 함대다. 적 레이더를 피해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유령함대는 대형 무인함(LUSV)과 대형 무인 잠수정(XLUUV)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LUSV는 배수량 2000t, 최대 속도 시속 70㎞다. SM-2 함대공미사일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등이 장착된다.
XLUUV의 표적은 중국 해군 잠수함이다. 어뢰와 대함미사일, 토마호크 미사일 등을 장착할 수 있으며, 일반 잠수함보다 소음이 훨씬 적어 중국 해군 잠수함 근처에 소리 없이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은 항모와 상륙함, 잠수함 등을 지속적으로 건조하며 해군력 팽창 정책을 추구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높은 수준의 정예화를 달성한 미 해군을 따라잡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해양 전투 기술 축적과 더불어 유사시 중국 해군을 도울 동맹국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미 해군과의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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