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입력 2021. 05. 30. 07:00 수정 2021. 05. 30. 07:21
한국이 조만간 북한 미사일 능력을 추월한다. 한국은 지난 42년간 ‘미사일 지침’에 묶였지만, 북한은 미국 본토까지 타격하는 사거리 1만㎞를 넘어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다. 이제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완성도 앞두고 있다.
역전의 기회가 왔다. 한국을 옭아맨 미사일 최대 사거리 족쇄가 풀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 지침 종료 사실을 전한다”고 밝혔다.
한국은 사실상의 핵무기 수준급 미사일 개발에 이미 성공했다. 지난해 3월 시험 발사한 현무-4(가칭)는 마하 10(시속 1만 2240㎞) 이상의 속도로 목표지점을 타격하도록 설계됐다.
지상에 떨어질 때 순간 위력이 전술핵 수준인 TNT 1㏏(1000t의 TNT를 터뜨릴 때 위력)에 이른다.
지구에 운석이 충돌할 때 만들어지는 파괴력을 생각해보자. 탄두 탑재량은 2t 정도인데 화약은 조금만 넣고 대부분을 중금속으로 채운다.
미국이 개발하다 중단한 ‘신의 지팡이’에서 단서를 얻었다. 인공위성에서 9.5t 무게의 텅스텐 막대기를 지상으로 떨어뜨려 운동 에너지로 목표를 파괴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전략무기 개발에 성공했지만, 당당하게 드러냈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방문해 “세계 최고 수준의 탄두 중량을 갖춘 탄도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언급하면서도 구체적인 미사일 명칭은 꺼내지 못했다.
이제 눈치 볼 필요 없이 미사일 개발에 나설 수 있다. 기술력은 충분히 갖췄다. 그동안 지침을 지키면서도 조용하게 내실을 다져왔다. 이젠 최대 사거리와 탄두 무게를 마음껏 늘려 개발할 수 있다.
ADD 주관으로 탄도 미사일(현무-2AㆍBㆍC)과 순항 미사일(현무-3AㆍBㆍC) 개발에 모두 성공했다. 탄도 미사일 사거리는 각각 300㎞ㆍ500㎞ㆍ800㎞, 순항 미사일은 500㎞ㆍ 1000㎞ㆍ1500㎞ 수준으로 북한지역 어디라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당장 지금이라도 발사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실전 배치도 마쳤다. 2017년 9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자 정부는 현무 미사일 시험 발사로 무력시위에 나섰다. 군 관계자는 “시험 발사한 뒤 방산 업체에 추가 미사일을 주문해 줄어든 수량을 채웠다”고 말했다.
한국의 순항 미사일 개발도 세계적인 수준급에 도달했다. 사거리 1500㎞를 넘어선 순항 미사일 개발은 한국ㆍ미국ㆍ러시아ㆍ이스라엘만 성공했다. 지상 발사뿐 아니라 해군 잠수함에도 탑재할 수 있다. 독침과 같은 은밀한 비수를 깊은 바다에 숨겨 둘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맺은 미사일 지침(Missile Guideline)은 조약은 아니지만, 원만한 동맹 관계를 위해 그동안 지켜왔다.
지침은 1979년 10월에 시작했다. ADD는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1971년 미사일 개발 극비 계획에 착수했다. 1978년 9월 한국의 첫 탄도 미사일 ‘백곰’이 하늘로 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 개발에 나설까 걱정했다. 견제를 받은 한국은 미국에서 미사일 기술을 받는 조건으로 사거리는 180㎞, 탄두 중량은 500㎏에 제한을 두는 지침에 합의했다.
주춤하던 미사일 개발은 1986년 현무 미사일 개발에 성공하며 다시 시작했다. 1987년 10월 1일 국군의 날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강산이 두 번 바뀌자 지침도 변했다. 최대 사거리는 2001년 1월 김대중 정부에서 300㎞까지 늘었다. 탄두 무게를 500㎏ 이하로 줄이면 사거리는 비례해서 더 늘리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도 적용했다. 2012년 10월 이명박 정부는 최대 사거리를 800㎞까지 늘렸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 유지하지만, 탄두 중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합의를 끌어냈다. 지난 21일 한ㆍ미는 사거리 제한도 완전히 풀었다. 미사일 지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뛰어든 시기는 한국과 비슷하다. 1970년대 후반 옛 소련의 스커드B 미사일(사거리 340㎞) 모태로 개발을 시작했다.
1981년 이집트에서 미사일을 가져와 해체한 뒤 역설계하며 기술을 확보했다. 한반도와 일본을 타격할 수 있는 화성-6형(스커드Cㆍ500㎞)ㆍ화성-7형(노동ㆍ1300㎞) 미사일 개발까지 이어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1년 12월 정권을 잡은 뒤 미사일 개발에 속도가 붙었다. 2017년 11월 최대 사거리는 10배나 늘어나 1만3000㎞까지 날아가는 화성-15형 개발에 성공했다.
플로리다를 비롯한 미국 전역이 표적에 들어온다. 북한은 ‘11월 대사변’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열병식에 ICBM을 이끈 부대가 등장하자 “열병식의 최절정”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조선의 힘을 보여주는 시간”이라며 자부심 드러냈다.
이날 기존보다 커진 신형 ICBM도 공개했다. 탄두 무게를 늘려 탄두 내부에 ‘다탄두 미사일(MIRV)’ 탑재한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은 이제 SLBM 개발 단계로 들어갔다. 지난 1월 열병식에서 신형 SLBM인 ‘북극성-5형 ㅅ’을 처음 공개했다.
석 달 앞선 지난해 10월 열병식에서 “세계 최강의 병기, 수중전략 탄도탄”이라며 소개한 중국군 JL-2(쥐랑-2, 사거리 7000~8000㎞)와 유사한 북극성-4형보다 탄두 크기를 늘렸다.
한국을 묶었던 미사일 지침 소멸은 미국도 이롭게 한다. 2019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폐기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미사일 경쟁이 다시 시작했다는 뜻이다. 협정을 맺었던 1987년 이후 국력을 키운 중국도 경쟁에 뛰어들게 됐다.
미국은 한국ㆍ일본ㆍ유럽 등 동맹국에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조심스럽게 타진했지만 어떤 동맹도 미사일을 받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미ㆍ중, 미ㆍ러가 대결하는 가운데 미국 미사일을 배치하면 그곳이 최전선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의 우회 전략이다. 한국 스스로 힘을 키우면 미국에 힘을 실어준다. 한국군 탄도 미사일 사거리를 1000㎞까지 늘리면 제주도에서 중국 베이징도 도달할 수 있다.
사거리 2000㎞ 이상이면 중국 내륙도 대응할 수 있다. 일본은 우주 로켓 개발에 앞서고 있지만, 대표적인 공격 무기인 미사일을 개발하거나 보유하진 않는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인 전략사령부(전략사) 창설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략사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유사시 북한의 지휘부와 대량살상무기(WMD)를 타격하는 임무를 맡는다.
하지만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창설 논의가 백지화됐다.
전략사는 육ㆍ해ㆍ공군에 흩어진 핵ㆍWMD 대응체계(옛 3축 체계)를 통합해 운용하는 계획이다.
공군 F-35 스텔스 전투기가 수행하는 정밀타격, 육군 미사일사령부 미사일 작전과 특전사 특임여단(참수부대) 임무, 미사일을 탑재한 해군 잠수함의 전략적 운용을 지휘 할 예정이었다.
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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