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납 베개영업·여자력...日서 '미투'가 불가능한 이유
기사입력 2021.05.22. 오전 6:02 최종수정 2021.05.22. 오전 9:25
그녀는 요구를 거절했지만 이후 시마다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2곳에서 하차당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현장에 있었던 데가와 데쓰로(57) 등 방송인 몇몇은 성상납 요구에 따를 것을 종용까지 했다며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분개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곧 소속사를 통해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마리에는 지난달 14일 일본 주간지 '주간문춘'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거짓말한 적이 없다"며 자신의 발언이 모두 사실임을 강조했다.
폭로 초기 일본 여론은 마리에에게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채 안돼 기류가 바뀌었다. SNS에는 "결국 아무 일 없었으니 피해를 본 건 없지 않은가" "방송에서 안 보이게 된 게 정말 베개영업 거절 때문인가"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증거도 없이 오래전 일을 굳이 끄집어내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비난과 함께 그녀가 최근 출간한 책 홍보를 위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말도 돌았다. 업계의 구조적이고 고전적인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고 인권과 직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여론은 냉담하기만 하다.
먼저 일본 주요 일간지들은 해당 사건이 연예계 가십거리라 뉴스 가치가 떨어진다고 본다. 이들은 "우린 차원 높은 이슈를 다룬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어 '베개영업'과 관련된 스캔들 따위는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저속해 논외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둘째, 일본 언론계 자체가 젠더 문제에 무감각하다. 때문에 연예계에 있을 법한 가십일 뿐이라는 인식에서 나아가 여성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발상에 이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추가 증언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마리에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섣불리 탐사보도에 나설 순 없다. 형사고발을 한 것도 아닌데 자칫 발을 들여놓았다가 가해자로 지목된 측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유착이 있는 데다 신문사들과 계열사 관계에 있는 일본 주요 방송국들도 사정은 별반 다를 바 없다는게 그의 분석이다.
게다가 마리에는 피해자로서 유독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복한 집안 출신인 데다 현재 성공한 사업가라는 점 때문에 약자이자 피해자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짙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가와사키 다마키는 지난 18일 '프레지던트' 기고문을 통해 일본 사회의 "집단주의적인 선택 지향성"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튀어나온 말뚝은 얻어맞는다(出た杭は打たれる)"는 일본 사회를 잘 나타내주는 속담이다. 대개 일본인들은 남들은 가만히 있는데 혼자 나서는 행동을 극히 꺼린다. 자기 권리가 침해됐더라도 신상이 공개되면서까지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려 하진 않는다.
하물며 성폭력에 관한 사안이라면 더 위축되게 마련이다. 사실관계야 어찌 됐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는 건 튀는 행동이고 분란의 소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점을 적극 시정하기보다 조용히 묻어가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마리에 사건도 굳이 오래전 일을, 더구나 야쿠자와 관련된 물의로 이미 은퇴한 방송인과의 일화를 왜 꺼내 괜한 물의를 일으키냐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일본 시중에 팔리고 있는 여자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서적들미국 출신 일본 전문가 태가트 머피 쓰쿠바대 교수에 따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일본 여성들은 항상 남성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당연시돼 왔다. 이 때문인지 일본 사회는 기본적으로 매우 남성 중심적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단적인 사례로 '여자력(女子力)'이란 단어가 유행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2009년 무렵 처음 등장해 신조어치고 오래됐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 곳곳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말이다.
사실상 전 세계에서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얼마나 여자다운지를 나타내는 척도"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여성스러운 외모와 태도, 여성 특유의 능력이나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정도를 말한다.
구직활동이나 결혼 상대를 찾을 때 여자력을 높이는 것이 유리해 이를 높이기 위한 서적이나 강좌들도 쉽게 눈에 띈다. 중학교, 대학교 같은 공식 교육기관의 팸플릿에 이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여성력을 높여준다는 게임들도 발매된다.
성역할 고착화를 부추킨다는 우려도 있지만, 일본에서 여자력이란 개념은 대체로 좋게 수용되는 분위기다.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구분될 수밖에 없는 여성만의 장점을 어필한다는 점에서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요구돼 온 관습적 여성상을 재포장한 말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다른 사회에는 없는 이런 단어가 일본 여성들로 하여금 순종하고 순응하는 역할을 암묵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성범죄에도 침묵하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기쿠치 나쓰노 나고야시립대 교수는 "여자력이란 말은 일본 사회가 여러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여성에게만 전가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WEF,UNDP 등 여러 기관의 조사결과에서 일본의 성평등 순위와 인식은 항상 아시아에서도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다 [그래픽=조보라]이 때문인지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G7에 속하는 선진국임에도 여성의 지위는 아시아 최하위를 맴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최근인 올해 3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내놓은 '2021 세계 성격차 보고'에 따르면 일본의 성평등 순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와 함께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다른 G7 국가를 비롯해 주요 선진국의 경우 모두 상위권임을 고려하면 분명 일본의 순위는 눈에 띈다.
일본의 낮은 순위는 ISSP(국제사회조사)의 '가족과 남녀 역할 변화에 관한 조사' 등 다른 기관들이 내놓은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해당 조사에서 일본 남성들은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비율이 18% 정도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저조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아시아 국가 사이에서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링크트 인 재팬'이 아시아·태평양 7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남녀 평등은 공정한 사회에 있어 중요하다"는 항목에 동의한 일본인은 50%가 채 되지 않았다. 특히 일본 남성의 경우 36%에 그쳤다. 다른 조사 대상 국민 중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평균 70%에 달한 것과 대조적이다. 성평등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인식, 특히 남성의 인식이 유독 낮다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미투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일본인 93%가 일본은 성범죄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회라고 답했다 [그래픽=조보라]한편 이번 사건을 두고 일본에서 '미투'운동이 왜 불가능한지 다시 한번 확인해준 계기였다는 지적도 있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마키노 요는 이번 스캔들을 4년 전 미투의 도화선이 됐던 미국 할리우드 성추문 사건과 비교했다.
그는 연예계 거물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했던 일이 수십 년 만에 드러났다는 점과 당시에도 결정적 증거는 없었다는 점을 들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차이점이라면 당시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몇 달에 걸친 다각적 취재를 통해 진실을 밝힌 데 반해 일본에서는 주간지나 인터넷 언론 정도에서만 다룬 반짝 화젯거리가 됐다는 것 정도다.
한국도 미국처럼 유력인사들과 관련한 미투 선언이 이어지며 최근까지 파장이 크게 일었다. 연루된 많은 이들이 처벌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해에는 전직 서울시장이 성추문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 2019년 12월 승소후 눈물을 닦고 있는 이토 시오리(좌) / 1심서 23년형을 선고받은 하비 와인스타인(우) [사진=연합뉴스]그러나 일본은 미투의 무풍지대였다. 자주 언급되는 이토 시오리 사건에서 피해자는 끈질긴 소송 끝에 이겼지만 현실과 인터넷 공간의 갖은 비난과 핍박에 시달리다 영국으로 피신하고 말았다.
당시 워싱턴포스트(WP), BBC 등 외신 보도를 보면 일본에서도 피해를 호소하는 여성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뿐이었다. 시오리 사건은 예외적으로 화제가 됐을 뿐 미투운동으로 번지지 않았다.
일본에서 유력인사가 성추행으로 크게 처벌받은 사례는 아직 없다. 마키노는 일본 주류 언론들이 피해자를 위한 대변인 역할을 못 하고 있어 미투 같은 건 발생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가만히 보면 일본 사회는 한국에도 존재하지 않는 성별에 따른 제약이 많다. 여성이 쓰는 말투가 따로 존재한다든가, 이혼 후 일정 기간 동안 여성은 재혼이 금지된다든가, 여성이 씨름판(도효)에 올라가선 안된다는 것 등이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한일 양국 사회의 여전한 온도차도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차 때문이 아니라 이 같은 뿌리 깊은 사회문화적 차이에서 일부 기인하는 건지도 모른다.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 연재코너입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 하시면 다음주 기사를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산 마스크 달라" ..불만 폭주한 일본인들, 왜? (0) | 2021.06.18 |
---|---|
세계 2위 제약강국 일본이 코로나 백신 못 만드는 이유는 (0) | 2021.06.05 |
'백신강국' 일본의 몰락..'잃어버린 30년' 만든 결정적 사건 (0) | 2021.05.21 |
동일보대지진 대피소 추악한 민낯..난민 여성 매일 성폭행 (0) | 2021.03.12 |
"상시 미사일 방어라더니.."日 신형 이지스함 年間 126日만 가동 (0) | 2021.02.1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