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환 선임기자 입력 2020.07.06. 21:47
후포매리서 신라 돌방무덤 발굴
[경향신문]
4세기 후반부터 “397년(내물왕 42년) 하슬라에 흉년이 들어 죄수를 사면하고 세금을 감면해주었다”느니, “450년(눌지왕 34년) 하슬라 성주 삼직이 고구려의 변방 장수를 죽이는 바람에 분노한 고구려 장수왕이 서쪽 변경을 침범했다”(<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기록이 등장한다.
그런데 신라와 고구려 국경이 강릉에서 북단으로 35㎞(일반도로 기준) 정도 올라가는 양양이었음을 시사해주는 발굴자료가 나왔다.
강원 양양 후포매리 고분군을 발굴 중인 강원고고문화연구원은 “6세기 중엽으로 판단되는 신라의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사진)이 확인됐다”면서 “이로써 양양이 삼국시대 신라의 최북단 국경 지역 요충지임을 추정케 한다”고 6일 밝혔다.
후포매리 고분군은 해발 300m 후포매리 산성의 주변과 그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이번에 조사된 1호분은 후포매리 산성의 남동쪽 해발 203m가량의 완만한 비탈길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의 지름은 약 10m 정도로 중소형분으로 추정된다. 조사 결과 무덤방은 구릉을 ‘L’자 형태로 파고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덤방의 규모는 길이 3.3m, 너비 1.86m, 잔존 높이 1.52m가량이고, 반지상식이며 평면은 긴 네모꼴에 가깝다. 무덤 입구는 너비 92㎝가량으로 다듬지 않은 소형 돌로 쌓아 막았다.
지현병 강원고고문화연구원장은 “조사 고분 주변에는 신라 왕성인 월성의 축조기법과 같은 토석혼축(돌과 흙을 섞어 쌓은) 산성과 5세기대 무덤 조성방식인 구덩식돌덧널무덤(수혈식석곽묘) 등이 100여기 존재한다”면서 “양양지역이 5세기 중반부터 고구려와 신라를 가르는 국경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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