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훈 기자 입력 2020.06.21. 06:00
[기획]'1g 폭탄' 삐라 - ②
귀순한 최승찬(1996년 7월)의 증언을 통해 월남 독려하는 삐라 /사진=e뮤지엄 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
"삐라(대북전단)를 보고 탈북 했습니다."
1999년 탈북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삐라'가 탈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증언한다.
한국전쟁부터 이어온 남북의 '삐라 심리전'에 남한이 북한에 유효타를 날린 사례다. 아직도 일부는 삐라를 '북한 주민에게 보내는 자유의 성경'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삐라 살포가 더이상 의미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0년대 들어오면서 북한 주민이 외부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아 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삐라가 역효과를 불러온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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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19일 삐라를 "세상 물정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 의식을 심어주는 '탈북자들의 무기'라고 표현했다. 그 부터가 1999년 '삐라'를 보고 탈북을 결심한 당사자다.
김 대표는 "탈북을 결심하는 데 삐라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며 "삐라를 처음 본 것은 90년대 중반 황해도에서 군복무할 때인데 눈처럼 내려와 쌓이는 삐라를 40cm짜리 쇠꼬챙이 5개에 가득 채워 소각하지 않으면 밥을 주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삐라에는 화려한 백화점, 넓고 정돈된 여의도 공원, '한국이 자가용을 한 해 1000만대씩 생산한다'는 등의 사진과 문구가 있었다"며 "'칼라풀'한 사진을 보며 '아 남조선이 북한 정권 말대로 헐벗고 굶주린 사회가 아니구나, 더 나은 사회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신세계 백화점 옥상 배경과 함께 귀순자들의 사진을 담은 한국의 삐라 /사진=e뮤지엄 전국박물관소장품검색
김 대표는 "특히 삐라에는 김정일의 출신지가 백두산이 아니라 모스크바 하바롭스크라거나 그의 러시아식 이름이 유라라는 내용이 증거 사진과 함께 적혀 있었다"며 "북한 주민들로서는 '우리가 배웠던 김씨 가문 신격화가 거짓말이구나' 알게 되기 때문에 정권의 세뇌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조영기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삐라는 여전히 북한 외부 소식을 접하는 통로가 제한돼 있는 주민들에게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실이나 비판 의식을 전달하는 소식지로 작용한다"며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탈북자 취재 결과에서도 경제난과 더불어 삐라와 대북방송도 탈북의 큰 원인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효과를 가지니 북한 정권도 '삐라를 중단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라며 "2014년 목함지뢰 사건 때도 이런 요구를 해올 만큼 북한 지도부에게는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삐라가 멀리 못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바람이나 사용한 도구 등에 따라 다르다"며 "삐라는 평양 등 다수 주민이 사는 도시에 전달돼 읽히기도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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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반박도 강하다. 삐라가 생각 만큼 넓게 퍼지지 않고, 쓰레기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보 습득의 경로가 다양해 지면서 '삐라전'의 수명이 다 했다는 주장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이탈한 주민들에게 삐라가 동력으로 작용했을 수는 있다"면서도 "2000년대, 특히 201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런 효과는 사라졌다"고 단언했다.
김 교수는 "과거와 달리 북한도 스마트폰이 상용화된 사회"라며 "이미 인터넷, 몰래 보는 드라마나 방송 등으로 한국 사회의 사정을 잘 알아 삐라를 본다고 해서 동요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북한 청년 /사진=뉴시스
김 교수는 "2004년 이전 정부가 삐라를 살포할 때에는 자본주의의 체제 우위를 강조하는 내용이 아무래도 주를 이뤘다"며 "그러나 최근 보도에도 나타나듯 민간에서 살포하는 삐라나 USB에는 특정 인물을 아주 외설적으로 묘사하는 합성 사진이나 영상 등이 아주 많이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북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체제 수호적인 사상교육을 철저히 받아 대부분이 오히려 체제 옹호적"이라며 "위와 같이 지도층을 비하하는 내용의 삐라를 보면 오히려 반감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2010년 이후 탈북자를 조사하면 '사상 전향'을 탈북 이유로 드는 사람은 줄어들고 '경제적 이유'를 드는 사람은 점점 증가했다"며 "이 또한 삐라 사상전이 먹히기 힘든 환경을 보여준다"고 했다.
정경훈 기자 straigh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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