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기자 입력 2020.06.07. 20:27
[경향신문]
미국 할리우드 배우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2009년 개봉작 <노잉(Knowing)>은 독특한 줄거리를 담고 있다.
영화 초반,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가 빼곡히 적힌 한 장의 문서가 50년 전 한 초등학교에 묻혔다 개봉된 타임캡슐에서 발견된다.
우연히 이 문서를 손에 넣은 주인공은 암호 같은 숫자의 실체에 호기심을 느낀다.
과학자라는 자신의 직업적 감각을 이용해 분석을 해나가던 그는 숫자들이 대규모 참사가 일어난 지역의 좌표와 희생자 수를 예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모두 최후를 맞는다.
일부 어린이들만 진보된 외계의 존재에 의해 지구를 탈출한다. 개봉 당시 줄거리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미스터리와 공상과학(SF)의 만남을 시도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영화에서 지구를 파멸로 몰아넣은 실체는 태양의 이상 가열 현상이다.
과학계에선 태양이 50억년 뒤 몸집이 크게 부풀어 오르는 ‘적색 거성’ 단계로 진입해 수성과 금성, 지구 등을 집어삼킬 것으로 보지만 가까운 미래에 태양 열기가 갑자기 뜨거워져 지구에 레이저를 쏘는 일은 예상하고 있지 않다.
사실 태양 표면에선 폭발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물론 이 폭발이 지구를 갑자기 뜨겁게 달군다는 식의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폭발은 흑점 주변에서 주로 일어나며 전자나 양성자 등을 우주 공간으로 방출한다.
최근 몇 년간 인류는 이런 태양 표면 폭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흑점 개수는 11년을 주기로 늘었다가 줄어드는데, 2014년 극대기에 이른 뒤 점차 내리막길을 걸어 2019년쯤부터 현재까지 극소기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흑점은 6000도인 태양 표면보다 2000도가 낮아 검게 보이는데 최근까지 망원경으로 보이는 태양은 티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잘 재배된 오렌지를 연상케 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지난달 29일 태양 표면에서 2017년 10월 이후 가장 강력한 폭발이 관측됐다고 발표했다.
이번 폭발은 5단계로 구분되는 태양 표면 폭발 가운데 가장 센 X급 바로 아래인 M급에 해당했다.
사실 그동안 천문학계에선 거의 사라져버린 흑점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지난해 6월 NASA는 태양 활동이 200년 만에 가장 잠잠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과학계에선 흑점의 실종을 좀 더 심각하게 보는 흐름도 있었다.
추위와 연관 짓는 분석이다. 17세기 유럽은 지금보다 유독 더 추웠는데 당시 태양 흑점이 극단적으로 감소했다. 이 때문에 2015년 영국 연구진에선 십수년 뒤 지구에 추위가 닥칠 거라는 분석까지 내놨다.
하지만 지난달 태양 표면 폭발로 일단 흑점 개수는 바닥을 친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NASA는 “태양 흑점이 더 많이 생기기 시작하는 조짐일 가능성이 있다”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평가했다.
다만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기 때문에 태양 흑점 개수가 앞으로 늘어날 것인지는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NASA는 분석 기간을 6개월~1년으로 예상했다.
NASA의 분석은 이제 막 시작됐지만, 과학계에선 태양 흑점 개수가 늘어나는 방향으로 돌아섰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이번에 태양 표면 폭발을 유발한 흑점은 태양의 고위도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흑점이 고위도에서 발생해 개수가 늘어날수록 저위도로 확산하는 태양 활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정상적인 형태로 태양이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인 만큼 이변이 없다면 흑점도 점차 늘어날 거라는 뜻이다.
문제는 흑점이 늘어난다면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흑점으로 인해 태양 표면 폭발이 생기면 지구의 통신과 전력 체계를 위협하는 전자와 양성자 등이 다량으로 우주에 쏟아진다.
마치 물을 흠뻑 끼얹은 바닥에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처럼 각종 전자장치들이 태양 폭발이 만드는 입자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런 상황에선 단파통신에 장애가 일어난다. 실제로 2012년 3월 발생한 태양 폭발로 단파통신이 며칠간 원활하지 못했다.
군부대 등에선 교신을 하기가 어려워져 작전이나 훈련에 영향받을 수 있다.
극 지역을 비행하는 항공기 교신도 방해받게 되며, 승무원들의 방사선 피폭량이 늘 수도 있다.
지구 주변 인공위성 안의 전자장치와 태양전지판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수명이 짧아지거나 임무 수행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김록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은 “태양 표면 폭발과 같은 우주기상을 지속적으로 확인해 최악의 경우 인공위성의 전원을 끌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체계가 국내에도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지난달 29일 태양 표면 폭발을 유발한 흑점은 지구가 아닌 다른 먼 우주를 바라보는 방향에 있어 인류에게 피해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태양 표면 사방에 흑점이 생긴다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만큼 과학계에선 전 지구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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