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에서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을 금지할 것을 요청한 데 대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일본 NHK가 12일 보도했다.
IOC는 "경기장이 어떤 정치적 주장의 장소도 돼선 안 된다"면서도 "대회 기간 문제가 발생하면 개별적으로 판단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고 NHK는 전했다. 사실상 욱일기 금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셈이다.
앞서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일본에서 욱일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고 깃발을 게시하는 자체가 정치적 선전은 아니라고 본다"며 경기장 내 욱일기 사용을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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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와 국회,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민관이 나서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을 분위기다.
IOC는 그동안 욱일기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2012년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일본 체조대표팀이 욱일기 문양을 연상케하는 유니폼을 입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이 대회에서 한국과 일본의 남자축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일부 관중이 욱일기를 펼쳐 응원했지만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당시 한국 대표팀의 박종우 선수가 동메달 확정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일부 관중으로부터 받아 펼친 것만 문제 삼아 메달을 수여하지 않다가 심의를 거쳐 뒤늦게 돌려줬다.
IOC가 올림픽 재정에 영향력이 큰 일본의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의 최상위 등급인 'TOP'(The Olympic Partner) 기업 13개사 가운데 일본업체가 3곳(도요타·파나소닉·브리지스톤)이다.
올림픽 전문매체 '인사이드더게임스'는 "2017~2020년 TOP 총 후원액이 최대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후원사별로 나누면 일본기업이 전체의 23%를 내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욱일기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공개된 도쿄 패럴림픽 메달에도 욱일기가 연상되는 문양이 담겼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욱일기가 정치적 목적이 없다는 점을 부각하려고 마케팅 상품에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욱일기와 무관한 디자인이라고 발뺌한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1일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장관 명의의 서한을 보내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욱일기는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일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지금도 일본 내 극우단체들의 혐오시위 등에 등장하는 정치적 상징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독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는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지목돼 국제 스포츠경기 등 모든 공식행사에서 엄격하게 금지된다.
국제축구연맹(FIFA)도 경기장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는 2017년 4월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일본팀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서포터즈가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펴자 이 팀에 벌금을 부과했다.
심재현 기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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