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2.23. 06:30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 후기 지리지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 독창적인 생각과 해석을 집어넣어 필사한 책이 나왔다.
향촌 지식인이 전라도·황해도·평안도·함경도에 대한 기존의 박한 평가를 뒤집고, 그 근거를 제시한 개정증보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최근 연구자 9명과 함께 이본(異本) 20여 종을 비교해 정본(定本) 택리지 번역본을 출간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는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절 가르친 제자인 황상이 주관에 따라 재편집하고 증보한 택리지를 발굴했다"고 23일 밝혔다.
조선 후기 문인 청담(淸潭) 이중환(1690∼1756)이 1751년 세상에 내놓은 택리지는 저자가 남긴 마지막 수정본이 전하지 않지만, 이본만 200여 종에 달하는 베스트셀러.
안 교수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내는 학술지 '한국문화'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치원 황상(1788∼1863)이 필사한 택리지는 개인이 소장한 치원총서의 일부다. '장자'(莊子)·'동파시집'(東坡詩集)·'문선'(文選)·'검남시'(劍南詩) 등으로 구성된 치원총서는 모두 16책이지만, 그중 1책이 전하지 않는다.
1860년대에 편찬한 치원총서 택리지는 첫 장에 '택리지권지일'(擇里志卷之一)이라고 적은 뒤 하단에 '여흥 이중환 논저(論著), 탐진 황상 절록(節錄)'이라 명기하고 도장을 찍었다. 절록은 알맞게 줄여 기록했음을 뜻한다. 치원본 택리지는 두 번째 책이 존재했다고 추정되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
안 교수는 "황상 택리지는 절록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일부를 발췌한 사본으로 예상하기 쉽지만, 3분의 1 정도는 원저작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내용으로 채웠다"며 "그 어떤 사본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구조와 내용을 지녀 황상의 독자적 저술로 간주해도 좋다"고 평가했다.
황상 택리지는 이중환 택리지와 구성이 완전히 다르다. 일반적인 택리지는 팔도론(八道論)이 앞에 나오고 복거론(卜居論)이 뒤에 등장하지만, 황상은 복거론을 먼저 쓰고 팔도론을 뒤에 붙였다.
아울러 팔도론 순서도 국토 변방에서 중심으로 서술한 이중환 체계를 부정하고, 경기도부터 외곽으로 서술해 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복거론의 네 가지 기준인 지리, 생리(生利), 인심, 산수를 지리, 생리(生理), 풍속, 천석(泉石)으로 바꾼 점도 돋보인다.
황상 택리지의 진정한 특징은 내용에 있다. 안 교수는 "황상은 당시 금과옥조처럼 인식된 택리지의 지역 평가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이중환은 전라도를 설명하면서 "풍속이 음악과 여자, 그리고 사치를 숭상하고, 경박하고 교활한 사람이 많으며 학문을 중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에 급제하여 현달한 사람이 경상도보다 적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황상은 "전라도의 풍속을 두고 세상에서는 속이고 경박하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겠다. (중략) 예로부터 절의를 지킨 선비가 많았기 때문에 그 풍속이 또 호협하고 기개를 숭상한다"고 반박했다.
안 교수는 "이중환은 호남과 대비해 영남 사람이 투박하고 도탑다고 했으나, 황상은 영남 사람이 뻣뻣하고 사나우며 남에게 돈 한 푼 내주지 않는 인색한 기질임을 폭로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중환은 스스로 전라도에 가보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그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라면서 "전라도 사람인 황상은 속속들이 파악한 자기 지역 정보와 현황, 특산물, 자랑거리를 필사 과정에서 대폭 보완했다"고 덧붙였다.
황상은 전라도뿐만 아니라 관서와 관북 지방에 대한 이중환의 저평가도 부인했다.
이중환은 팔도론 함경도에서 "관서와 관북의 함경도와 평안도 두 개 도는 살 만한 곳이 못 된다"고 했으나, 황상은 복거론에서 풍속을 다루면서 "관서와 관북 두 개 도는 오랫동안 사환(仕宦·벼슬살이를 함)이 끊겨서 400년 이래로 고관대작이 나오지 않았다. 따라서 그곳 백성들은 누구나 비분강개한다"고 적었다.
또 황상은 지리 서술에 지역 전설을 포함한 이중환과 달리 역사나 야담을 반영하는 태도를 지양하기도 했다.
황상이 필사한 택리지에서는 다산의 영향도 확인된다. 일례가 명산지를 소개하면서 추가한 은풍의 감과 양주 남일원의 밤이다.
안 교수는 "은풍 감은 조선 후기에 왕실 진상품이었으나,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정약용은 규장각에서 근무할 때 정조로부터 은풍 감을 받고 시를 지은 적이 있는데, 황상은 다산으로부터 정보를 얻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그러면서 "남양주 화도읍 금남리를 지칭하는 남일원이라는 지명을 언급한 지식인은 정약용이 거의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치원본 택리지는 이중환과 황상, 정약용이 국토지리를 보는 시각과 참신한 정보, 지식을 버무린 저술로 세 사람의 지리관을 선명하게 드러낸다"며 "이 책은 19세기 중반 인문지리학과 다산학단 지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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