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성골과 진골

참고자료·용어해설

by 석천선생 2018. 12. 3. 15:32

본문


    성골과 진골

    일반적으로 시조 박혁거세부터 진덕 여왕까지의 왕족을 성골, 무열왕 이후의 왕족을 진골이라고 구분하고 있으며, 관직 진출에 있어서 차별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6두품 역시 그 당시에는 득난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한 계급이었습니다.
    태종 무열왕 이래로 힘이 커진 신라는 진골에 기존의 왕족뿐만 아니라 정복한 지역의 왕족까지도 포함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가야의 왕족인 김유신이 진골 대접을 받은 경우나, 고구려 부흥 운동의 지도자였던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안승이 김씨 성을 하사받고 진골 대접을 받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성골과 진골을 나누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천재교육 | BY-NC-ND

    왜 통일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역사상 유일하게 여왕이 있었던 나라가 신라입니다.
    신라에만 여왕이 있었던 것은 골품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선덕 여왕은 진평왕의 맏딸이었는데, 아들이 없었던 진평왕에게 성골로 왕위를 이을 사람은 선덕 여왕뿐이었습니다. 골품제라는 신분 제도 안에서 자격을 갖춘 인물을 찾다 보니 여왕이 즉위하게 된 것입니다. 한편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딸이 왕위를 잇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