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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전 생명체 위협한 '토바 화산 폭발'..인류는 견뎠고 살아남았다

지구환경변화

by 석천선생 2018. 3. 19.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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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범 기자 입력 2018.03.18. 22:28

[경향신문] ㆍ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 200만년간 최대 폭발 화산 영향 분석

인류가 기원한 아프리카를 떠나 아시아, 유럽, 중동 등에 살던 인류의 조상들은 약 7만4000년 전쯤 처음 겪어보는 재앙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었다. 회색 먼지가 하늘을 뒤덮어 햇빛을 가리는 날이 이어지면서 식물들은 말라죽어가고, 이를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들도 점차 굶어 죽었다. 이런 날들이 거듭되면서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동물과 역시 사냥에 의존했던 인류의 조상들도 멸종위기에 처했다. 이는 슈퍼화산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북쪽 토바 화산 폭발 이후 지구 대부분 지역에서 벌어졌을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상황에서도 남아프리카 해안가에 살던 초기 현생 인류는 화산 폭발의 영향을 이기고 생존했으며 오히려 번창하게 됐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진은 과거 200만년 동안 가장 큰 폭발이었던 토바 화산 폭발로 인한 영향을 분석해 지난 1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 슈퍼화산 폭발에도 인류는 피난처 발견

제주도만 한 크기의 토바 호수를 분출 흔적으로 남겨놓은 토바 화산을 포함해 미국 옐로스톤, 뉴질랜드 타우포 화산, 일본 규슈의 아이라 칼데라 같은 초대형 화산을 슈퍼 화산이라고 부른다. 슈퍼 화산은 보통 폭발할 때 분출하는 마그마와 화산재 등이 1000㎦ 이상으로 화산폭발지수(VEI)가 8인 경우를 말한다. 화산폭발지수는 화산이 분출한 마그마, 화산재 등의 양과 화산재가 분출되는 높이 등으로 화산의 폭발력을 측정하는 수치다. 화산폭발지수 8은 화산 분출물의 양이 1000㎦ 이상이면서 화산재 분출 높이가 25㎞ 이상인 경우이다. 슈퍼 화산이 폭발하거나 핵전쟁,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두꺼운 먼지나 대량의 화산재가 햇빛을 가리면서 지구 전체 기온이 크게 낮아져 식물이 성장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슈퍼 화산 폭발 이후의 지구 기후를 흔히 핵겨울 또는 화산겨울이라고 부른다.

연구진은 토바 화산에서 약 8937㎞ 떨어진 남아프리카 해안 피나클포인트에서 토바 화산의 흔적을 찾아냈다. 이 지역에서는 약 5만년 전부터 9만년 사이의 지층 두 곳에서 화산 분출 흔적인 미세한 유리조각이 발견됐다. 서로 떨어져 있는 지층들에서 약 7만4000~7만5000년 전의 유리조각이 발견된 것에서 연구진은 이 지역까지 토바 화산 분출의 영향이 미쳤음을 확인했다. 피나클포인트는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토바 화산의 영향이 미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이다.

아프리카 동부 케냐의 올로르게사일리에 분지에서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연구진이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의 흔적을 발굴하고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제공

토바 화산의 폭발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 위협이었다. 지구 평균 온도는 4~5도가량 낮아졌으며 오랜 기간 여름이 없는 화산겨울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럿거스대학 연구진이 2009년 발표한 논문에서는 당시 지구 평균 기온이 7도가량 낮아졌으며 해안가 이외의 지역에 거주하는 인류는 생존에 위협을 받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 바 있다.

연구진은 피나클포인트가 다른 지역에 비해 화산겨울의 영향을 덜 받았으며 비교적 온화한 기후 때문에 바다 등에 식량 자원이 풍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곳이 인류의 유일한 피난처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 피난해 집단 거주했던 인류의 생존이 가능했다. 기존 연구에서도 이 지역은 화산겨울의 영향을 덜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 바 있다.

이런 어려운 환경변화 속에서도 피난처인 남아프리카 해안에 살던 인류는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번영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지역의 지층에서는 열처리된 석기와 동물의 뼈 등 40만점이 넘는 인류의 유물과 불이 사용된 흔적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이곳에 살던 인류가 화산겨울을 견뎌내고, 수천년 동안 기술적 혁신을 이뤄내면서 번영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학계에서는 유전적 분석 결과에 따라 현생인류가 약 6만년 전 아프리카를 나온 수천명 조상들의 자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전에 아프리카를 나간 인류가 영속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과학자들은 토바 화산에 의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 아시아 등으로 퍼져나간 시기는 최근 연구에 의해 계속해서 앞당겨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이스라엘에서 인류가 약 20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떠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턱뼈 화석이 발견된 바 있다.

■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에도 기술 혁신

급격한 기후변화가 초기 현생 인류의 발전을 촉진시켰을 것이라는 연구도 최근 발표됐다. 미국 스미스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 등 국제공동연구진이 지난 15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는 현생 인류의 진화가 시작된 약 32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 지역은 환경과 생태계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것이 인류 진화를 촉진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연구진은 이 당시 환경적 요인이 인류의 조상을 압박하면서 광범위한 이주가 일어나고 교역이 시작되며, 새로운 도구를 제작하는 등 기술 혁신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이 인류 조상의 흔적을 발견한 아프리카 동부 케냐의 올로르게사일리에(Olorgesailie) 분지의 지층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은 80만년 전까지는 대부분 지역이 습한 상태와 마른 상태가 자주 반복됐던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토양 성분의 탄소동위원소를 분석한 결과 32만년 전쯤 이 지역은 광활한 초원으로 변화했다. 포유동물 종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형 포유류 가운데 코끼리나 말 등이 사라진 반면 작은 포유동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연구진은 이것이 당시의 기후변화를 나타내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급격한 기후변동으로 인해 당시 수렵·채집으로 살아갔던 인류의 조상은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 놓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인류의 조상은 장거리 이동을 하게 됐고, 정보 수집, 자원 교환 등의 사회적 교류도 시작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고고학적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연구진이 찾아낸 올로르게사일리에 분지의 인류 흔적에 따르면 이 시기 이전 인류 조상이 만든 도구는 대부분 이 분지 인근의 반경 5㎞ 범위에서 채취한 재료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약 32만년 전부터는 도구의 재료들이 수십㎞가량 떨어진 지역에서 채취한 흑요석으로 대체됐다. 연구진은 이것이 장거리 이동과 교역의 가능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기존 연구보다 호모사피엔스가 나타나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를 수만년 더 앞당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6월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발견된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은 약 30만년 전 것으로 추정된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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