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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촛불혁명보다 선구적인 혁명이 있었다

언론과 민주주의

by 석천선생 2018. 1. 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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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입력 2018.01.06. 11:20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2011년 1월 4일, 튀니지에서 타오른 혁명의 불꽃

 

작년 이맘때 한국은 '촛불혁명' 와중에 있었다. 그로부터 6년 전인 2011년 아랍권도 그랬다. 현지 시각으로 그해 1월 4일 오후 5시 30분, 한국 시각으로 1월 5일 새벽 1시 30분, 아랍권을 재스민 혁명의 불길로 태울 불씨가 튀니지에서 타올랐다.

이집트 서쪽에 리비아가 있고, 리비아 서쪽에 튀니지가 있다. 튀니지 북쪽에는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이탈리아가 있다. 재스민은 튀니지의 나라꽃이다.  

그 시각, 경찰의 노점 단속에 항의해 불과 가솔린으로 분신을 시도한 뒤 입원 중이던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 Bouazizi)란 청년 상인이 튀니지 국민들의 관심 속에 숨을 거뒀다. 격분한 튀니지 국민들은 시민항쟁을 본격화했고, 23년간 집권 중이던 벤 알리 정권은 열흘 만인 1월 14일(현지 시각) 붕괴했다.

튀니지에서 타오른 불길은 리비아·이집트를 거치고 홍해를 건너 시리아·바레인·예맨 등으로 번져갔다(통칭 아랍의 봄). 이 불길로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하고, 리비아에서는 카다피 정권이 무너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남쪽 예맨에서도 정권이 와해됐다. 한때 김정은 만큼이나 대담하게 미국에 맞서며 42년간 정권을 지켰던 무아마르 카다피는 고향에서 시민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미국의 영향권에 속한 나라의 언론들은 재스민혁명이 갖는 민주화 측면을 집중 부각시켰지만, 이것은 민주화뿐 아니라 미국의 영향력 축소와도 관련이 있다. 이 불길이 지나간 나라들은 대체로 친미 혹은 친서방 국가들이다. 반미 국가였던 리비아도 2004년에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미국 영향권 하의 4개국 정권들이 시민혁명으로 순식간에 무너졌다는 것은 미국이 이 지역 정세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영웅 없는 시민혁명에 날개를 달아준 인터넷

 튀니지 시민집회.

 

미국의 영향력 퇴조와 더불어, 재스민혁명이 보여준 또 다른 것이 있다. 혁명의 새로운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이것은 2016년 한국 촛불혁명에서도 나타났다. 바로 '영웅 없는 혁명'이다.

고대로부터 민중은 살기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마다 영웅의 출현을 고대했다. 미륵이나 정도령 또는 메시아 등으로 불리는 영웅이 등장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갈망했다. 영웅이 나타나야 혁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혁명에서 영웅이 필요한 것은, 혁명에 필요한 조직·자금·무기·이념을 갖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 권력이 시퍼렇게 눈 뜨고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것은 용이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의 견제를 뚫고 그런 것들을 갖추는 데 성공한 지도자가 민중의 눈에 영웅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와 20세기에 교통과 통신이 급속히 발달하면서 전국적 대중조직의 건설이 쉬워졌다. 이념 전파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반정부적인 군중을 한자리에 모으는 일이 쉬워지다 보니, 군사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떨어지게 됐다. 군중의 규모만으로도 경찰력을 압도할 수 있게 되면서, 무기 쓸 일이 그만큼 적어진 것이다.

이러다 보니 '소자본'으로 혁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19세기 초반의 홍경래는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평안도 갑부들과의 관계부터 돈독히 했다. 오늘날에는 그렇게 할 필요성이 현저히 적어졌다.

이 같은 변화는 혁명에서 영웅의 필요성을 현저히 떨어트렸고, 이것은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영웅 없는 시민혁명이 빈발한 원인 중 하나였다. 옛날 같았으면 한 지역의 사건·사고로 끝났을 우발적 민중봉기가 20세기부터는 전국적 시민항쟁으로 번지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21세기 들어 확산된 인터넷과 SNS는 그런 경향을 한층 더 부추겼다. 인터넷·SNS를 통해 대중이 지식인 못지않게 정세를 파악하고 번개 모임 하듯이 군중집회를 열 수 있게 되면서, 영웅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더 떨어졌다.

옛날 혁명에서는 대중 그 자체가 조직을 이루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영웅이 이끄는 조직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SNS 시대에는 대중 자체가 하나의 조직을 이룰 수 있게 됐다. 평소엔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손 안의 스마트폰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곧바로 집회 장소에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트렌트가 2016년 한국 촛불혁명을 지배했다.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모임의 장을 마련하기는 했지만, 대다수 참가자들은 그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했다.

 

"개인이 똑똑해져 영웅이 사라진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
ⓒ 김종성
이런 트렌드는 재스민혁명에서도 나타났다. '영웅 없는 혁명' 시대가 임박했음을 예고했다는 점에서는 재스민혁명은 촛불혁명보다 선구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11년에 평화문제연구소가 발행한 <통일한국> 331권에 실린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의 기고문 '재스민 혁명 6개월, 지금 중동은?'에서는 "중동의 시민혁명은 '리더가 없는 혁명', 즉 21세기 새로운 혁명의 틀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 기고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아랍의 청년들은 현재 인터넷을 통해 현 정부의 무능과 부패 등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고 있다. 대중 간의 소통이 가능해졌고, 이것이 시위로 이어지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투브 등 소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중들의 손바닥 위에 있는 상황에서 중동의 정권들은 더 이상 과거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인터넷과 SNS가 영웅의 소멸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미래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박영숙과 제롬 글렌이 지은 <세계미래보고서 2030-2050> 제2장을 살펴보자.

"스탠퍼드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개인이 똑똑해지는 시대가 와서 영웅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인류가 불가능한 일에 부딪혔을 때, 앞장서서 불가능을 넘어선 위인이 나타났다. … 하지만 오늘날의 첨단기술이 이끄는 전쟁, 개개인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인터넷이 존재하는 시대에는 영웅이 탄생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모임에서 누군가가 "지방방송 좀 끄라!"면서 자신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이 많다. 인터넷과 SNS로 인해 앞으로는 '지방방송'이 훨씬 많아지면서 한두 명의 영웅에 대한 관심도가 더욱 낮아질 거라는 게 짐바르도의 말이다. 그는 한두 명이 이끄는 '영웅의 시대'가 사라지는 대신, 똑똑한 개인들이 저마다 영웅이 되는 '소시민 영웅들의 시대'가 미래사회에 보다 더 부합한다고 말했다.

지금 역사는 영웅의 지도 없이 대중의 자각만으로도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시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이런 경향이 강해질수록 혁명의 발생 가능성이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더욱 더 신경을 바짝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부지런을 떨어도 보수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영웅 없는 혁명의 시대에는 사회 진보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지겠지만,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웅 없는 혁명에서는 혁명주체세력의 정권 인수 가능성이 매우 낮다. 정권 인수 과정에는 소수의 조직이 필요한데, 대중이 직접 주도한 시민혁명에서는 그런 조직이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대중이 혁명 이후 상황을 주도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혁명 성공으로 기존 여당이 무너지는 순간에 최대 조직력을 보존한 야당이 최대 수혜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혁명을 성사시킨 대중은 정권을 잡은 야당이 대중의 뜻에 따라 정치를 잘해주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웅 없는 혁명의 시대에는 시민대중이 혁명 성공 뒤의 사후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 더욱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연재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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