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7.12.28. 20:27 수정 2017.12.28. 21:46
[한겨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우리는 왜 4차 산업혁명에 열광하는가/홍성욱 기획/휴머니스트·1만2000원
특이점의 신화-인공지능을 두려워해야 하는가/장가브리엘 가나시아 지음, 이두영 옮김/글항아리사이언스·1만5000원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치인과 관료와 학계,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는 이 유령을 자기편으로 하려는 신성한 제식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4차 산업혁명이 한국에서 열풍이라는 사실은 사례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피부로 느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2016년 1월 세계경제포럼 회장 클라우스 슈바프가 포럼의 화두로 내건 말이다. 기계와 증기기관(1차 산업혁명), 전기와 대량생산(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으로 자동화와 연결성이 극대화되는 변화를 가리킨다.
하지만 이후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유독 한국에서만 국가 핵심 사업으로 채택되는 등 과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다. <공산당 선언>을 비튼 ‘반(反) 4차 산업혁명 매니페스토’로 시작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령>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본격 비판서라 할 수 있다. 평소 과학기술을 좋게 보지 않는 철학자나 사회과학자들이 나섰나 싶겠지만, 책의 저자들은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을 제외하면 과학계에서 활발히 발언해온 홍성욱, 김우재 등 과학자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홍성욱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을 “정치적인 유행어”라고 단언한다. 1차 산업혁명은 90%의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사회를 90%의 인구가 농업 외 활동에 종사하는 산업사회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서 혁명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하지만, 이후 혁명들은 모두 산업사회라는 틀 안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생성해온 흑역사를 상기시킨다. 미국의 사회학자 해리 엘머 반스는 1948년 원자에너지와 초음속비행을 들어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학자 월트 휘트먼 로스토 역시 전자공학, 유전공학 등의 발전을 두고 4차 산업혁명이라며, 1983년 한국을 방문해선 ‘한국도 4차 산업혁명 문턱에 이르렀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 이렇게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자체는 유행어거나 부정확한 개념이라고 해도 인공지능, 생명공학, 입체(3D) 프린터, 빅데이터 등 뭔가 커다란 기술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정부를 포함해 전사회적으로 여기에 적극 대응해야 하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여기에 지은이들은 답한다. 바로 그 대응에 정말 문제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도, 그 이후에도 동일하게 기초과학 육성, 관 주도가 아닌 과학자 주도의 연구, 과학적 사고방식의 보편화가 필요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4차 산업혁명 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주도해 나가는 모습은 박정희 이래로 기초과학 육성엔 관심이 없고 과학을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부국강병의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역대 정권의 사고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매섭게 질타한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계획’,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모두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지원을 내려주는 방식에선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초파리 유전학자인 김우재 오타와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창조경제 연설문과 문 대통령의 4차 산업혁명 연설문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 “정치적인 적폐 세력인 박정희의 유산을 긴 겨울 촛불과 함께한 민중의 힘으로 몰아낸 문재인 정권의 과학기술에 대한 비전이, 사이비 종교의 교주를 국정 농단의 파트너로 삼아 국민을 우롱한 정권의 비전과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게 정상인가?”
홍성욱 교수는 박정희 시기부터 정부가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산업기술을 중점적으로 지원하던 방식이 그 유통기한을 다했음에도 여기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로 의존성'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지원해온 것은 산업기술이었으며,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된 것은 1990년대 후반 김대중 정부 들어서부터다. 2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홍 교수는 국가가 방향을 정해 기술을 발전시키면 사회도 뒤따라 변할 것이라는 ‘기술 결정론’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우리나라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발전을 가로막는 사회-경제-정치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 교수는 “결국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한국 사회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 사회의 후진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사회를 더 투명하게 만들고, 정부 및 민간 기관을 더 합리적이고 신뢰가 가는 것으로 만드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느냐는 문제”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산업기술에 밀려 홀대받아온 기초과학에 대한 독립적이고 다양한 지원을 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김우재 교수는 정부가 긴 안목으로 제대로 된 과학기술 정책을 하기 위해선 지금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기초과학 연구를 담당하는 부서를 분리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일갈한다. 그런 뒤에 정부가 10년간 기초과학 연구자 주도의 소규모 연구를 1년에 1000~2000개씩 지원하는 실험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 기초과학에서 눈부신 성과들이 나올 것이라 단언하면서. “혁명은 기초 후에야 온다. 기초가 혁명이다.”
국외에서는 4차 산업혁명보다는 인공지능을 둘러싸고 논쟁이 진행되는 모양새다. <특이점의 신화>는 오래 인공지능을 연구해온 장가브리엘 가나시아 프랑스 파리6대학 정보과학 교수가 쓴 책이다. 가나시아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는 미래의 어느 순간(특이점)을 지나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으로 발전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믿음을 비판한다. 특이점은 마치 블랙홀처럼 통상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을 말하는데, 무어의 법칙(집적회로의 트랜지스터 수는 18~24개월마다 두배가 된다)에 따라 인공지능이 특이점을 지나 계속 발전해 나간다고 가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날카롭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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