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입력 2017.07.04. 21:11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소위 '이명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 행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언론장악백서'를 4일 공개했다. 126쪽 분량의 책에 9년 동안 벌어진 모든 일을 담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정권이 언론 전반을, 더불어 각 언론사를 어떤 식으로 길들였는지 확인하는 기록으로는 손색이 없다.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언론장악 9년의 적폐, 청산을 위한 첫걸음 토론회'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공영미디어 장악과 방송 내적 자유 침해'의 발제를 맡은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연이어 집권한 보수 정권이 △공영미디어 인적 장악 △방송구조 개악과 종편 도입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 축소·탄압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 중 공영미디어 인적 장악의 경우, 규제기관이나 이사회 인적 장악을 시작으로 하는 사전작업, 낙하산 사장 투입, 친정부 방송을 도모할 간부 인사 단행, 불공정 방송에 비판적인 구성원 탄압, 정부 비판 프로그램 축소 및 폐지 등 5단계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이명박 정권 때 시작된 장악 체제가 굳어졌다. KBS이사회·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등 공영방송 이사회의 인적 구성이 보다 극우화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낙하산 사장 선임이 계속됐고, 노조를 비롯한 자사 비판 세력에 대한 탄압은 거세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은 청와대의 보도개입을 폭로했고, '국정농단' 사태를 맞아 '김영한 비망록', '안종범 수첩' 등을 통해 언론 개입 정황이 드러났다.
이어, "정권의 공영미디어 장악과 탄압이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는 반헌법적인 폭거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방송장악과 탄압의 진상규명과 부당징계자 원상회복 및 관련 부역자 퇴출은 공영미디어 정상화와 민주주의 회복과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자 필수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남표 민언련 정책실장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방송 구조 개편과 표현의 자유 억압' 발제에서 종편의 탄생이 '언론생태계 훼손'을 불러왔다고 꼬집었다.
이 실장은 종편 출범 후 일자리 2만 개가 생긴다는 장밋빛 전망이 사실과 달랐고, 신문 방송 겸영은 종편 이전에도 이미 가능한 일이었으며, 여론다양성이 더 왜곡됐다고 비판했다. 또한 종편은 황금채널 배정, 지상파와의 비대칭 규제 등 각종 특혜를 누렸고, 그 결과 전체 '파이' 확장 없이 종편의 광고 매출 상황(2015년 기준)만 나아졌다는 점을 들었다.
방송통신 공공성을 보장하고 바람직한 미디어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포부와 달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이 정권의 뜻에 휘둘렸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여야 6:3 위원회 구조 아래서 △심의를 통한 낙인효과 △프로그램 제작진의 자기 검열 심화 △표적 심의 △청부 심의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 "언론자유 무너지면 민주주의 지켜낼 수 없어"
9년 동안 줄기찬 노조 탄압으로 조직문화가 눈에 띄게 손상된 MBC에서는 최근 들어 김장겸 사장 퇴진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직종과 기수를 가리지 않고 구성원들이 김장겸 사장 퇴진을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전단지를 붙이고, 실내와 야외를 가리지 않고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진행될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에도 기대를 거는 눈치다. 노동부는 MBC를 '노사갈등 심화 사업장'으로 판단하고, 노동관계법 위반여부를 종합적으로 점검할 예정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김연국 본부장은 "2008년~2009년까지만 해도 내부에서의 직접적 통제가 심하진 않았다. 그동안 만들어졌던 제도적 장치(단협, 국장책임제, 공정방송협의회)가 있었고, 이런 전통을 함부로 무너뜨려서는 좋은 꼴 못 본다는 경영진의 학습효과가 급격한 무너짐을 방어했던 것 같다"면서도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단협 파기는 치명적이었다. 노사 동수 공방협이라는 제도적 틀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지금도 MBC에는 편성위원회가 있지만 (사측이) 거부하면 답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의 상황이) 법적·제도적 장치 미비 때문이라고 생각 안 한다"며 "언론자유 급격히 후퇴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간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은 민주주의와 언론은 항상 같이 간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자산인 공영방송을 위해 촛불을 들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고대영 사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뻗어나오고 있는 KBS에서는 제도의 '실효성'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성재호 본부장은 "백서는 (언론적폐) 청산의 첫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알아야 청산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국회에 사장 선임 구조와 이사회 구성에 대한 개선안이 올라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제작자율성과 보도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 마련도 함께 되어야 한다"며 '방송편성규약' 등 이미 있는 제도에 강제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문체부에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관련 위원회를, 환경부에서 4대강 사업 조사평가단을 구성하는 등 타 부서에서 '비정상의 정상화' 움직임이 민첩하게 이루어지는 데 비해, 언론개혁의 걸음은 더딘 편이다. 이에 김 처장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체계적인 논의 진행하고 개혁의 로드맵 공동으로 짜야 한다고 본다"며 △공영방송 정상화 작업 시작 △종편 도입이 방송시장에 미친 영향 조사 등을 제시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언론개혁 얘기하면 검찰개혁을 얘기 안할 수 없다"며 "방송사 내에 수구 어용 세력을 양산하는 한편, 이에 대해 저항하는 이들을 검찰을 앞세워 제압하고 연행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어떤 일이 있을 때 연대하고 투쟁하는 것은 좀 늦는 것이 아닌가. 언론노조, 시민단체 등이 당분간은 원탁을 만들어 최대한 공조해야 하지 않나 싶다. 평소에도 항상 공정방송 문제를 다루고, 공영방송의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문제제기를 함께하는 장이 있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민언련은 '언론장악백서' 발간과 토론회 개최를 시작으로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의 언론사(史)를 되짚는 작업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다음주 중에는 '편파보도백서'를 발간하고, 편파보도의 피해자들이 직접 나와 발언하는 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밖에도 온라인 상에서 현재 KBS-MBC 두 공영방송의 이슈를 널리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라는 설명이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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